“1000만원으로 빌라 사세요”… 또 꿈틀대는 ‘깡통 전세 사기’ 주의보

가격 하락기의 ‘갭 투자’로 의도치 않은 ‘가해자’ 발생…보증보험 가입 등 세입자의 현명한 선택 필요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의 한 빌라촌 모습 사진=연합뉴스


아파트 값 상승으로 빌라(다세대·연립주택) 거래가 많아지고 있다. 올해 서울에서 거래된 주택 10가구 중 7가구가 빌라와 단독·다가구 주택이다. 집값 고점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로 이자 부담까지 커지며 아파트 대비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빌라 등에 수요가 쏠리는 모습이다.

올해 1~6월 서울에서 거래된 부동산 매매는 총 2만7973건이다. 그중 아파트는 7496건, 빌라로 분류되는 연립·다세대 주택은 1만7935건, 단독·다가구 주택은 2542건 등이다.

빌라는 아파트보다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하지만 6억원 이하 주택에 적용되는 서민 주택 담보 대출인 보금자리론 등을 이용할 수 있어 지난해 1월부터 18개월째 아파트보다 많이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거래가 늘어나는 만큼 문제점도 동시에 많아지고 있다. 특히 전셋값이 매매 가격을 웃도는 역전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축 빌라를 중심으로 이러한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모양새다.

전셋값과 함께 낮은 투자금이나 무자본으로 빌라를 샀다가 전셋값이 매매 가격보다 높아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전세가율 70~80%, 깡통 전세의 시작

부동산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세가율(전셋값÷매매 가격×100)이 매매 가격의 70~80%를 넘기 시작하면 깡통 전세가 나타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세입자가 전세 계약이 끝난 후 보증금을 떼이거나 제때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방은 전세가율이 80%를 넘은 곳이 적지 않다.

한국부동산원의 5월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전세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전남 광양(85%)이다. 이어 청주 서원구(84.3%), 경기 여주(84.2%), 충남 당진(83.5%), 전남 목포(83.4%), 경북 포항(82.9%) 등의 전세가율이 80%를 넘어섰다.

이 상황에 깡통 전세로 인한 피해자들도 덩달아 늘고 있다. 갭 투자는 쉽게 말해 전세를 끼고 주택을 사는 행위를 말한다. 본인이 구매할 주택에 입주할 세입자를 먼저 구한 후 그들에게 자금을 받아 해당 주택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매매 가격이 5억원, 전셋값이 4억원인 집을 눈여겨본 매수 희망자가 있다면 4억원으로 전세를 구하는 세입자를 구해 전세금을 받고 1억원만 보태 그 집을 사는 것이다. 집주인은 본인이 사고 싶던 집의 20%만 투자해 집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 나타난다. 집주인은 5억원의 매매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했지만 만약 가격이 3억원으로 떨어졌다고 가정하자. 세입자의 전세금 4억원을 계약 기간 만료 때 돌려줘야 하는데 본인에게는 3억원으로 가격이 낮아진 집밖에 없다. 이때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기간도 길고 전세금을 온전하게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높지 않다. 결과적으로 세입자는 전세금을 날리거나 이사 갈 집을 구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깡통 전세 사기도 위와 같은 사례 등에서 발생한다. 갭 투자를 했지만 집값이 떨어져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줄 능력이 안 되는 집주인들은 이 집을 담보 삼아 대출을 받은 후 주택 소유권을 신탁회사 등에 넘기고 잠적한다.

담보 대출이 있는 이 집의 대출 이자는 전 집주인이나 신탁회사 등이 내지 않아 경매로 넘어간다. 결국 집주인이 사라져 소유권이 없는 집이 되는 것이다. 살고 있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된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기 힘들어진다.

길을 걷다 보면 ‘실입주금 1000만원으로 내집 마련’ 등의 빌라 판매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경우도 대부분 갭 투자에 해당하는데 현재처럼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를 그릴 때는 구매 여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건축주는 땅을 구매한 후 주택을 지을 때 투자한 돈을 회수하고 싶어 한다. 세입자를 찾아 적은 자금으로 빌라를 샀다가 전세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무지에서 발생하는 범죄

깡통 전세는 대부분 일반 아파트 대비 정확한 공시 가격(시세) 정보가 없는 신축 빌라에서 발생한다. 무지에서 발생하는 범죄인 셈이다. 최근 빌라 500여 채를 갭 투자 전세 사기로 183억원의 보증금을 챙긴 ‘세 모녀 투기단’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처럼 계획적으로 세입자를 괴롭히는 이들도 있지만 적은 돈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본의 아니게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사태에 맞닥뜨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주택 매매 가격과 전세 가격의 차이가 적거나 전셋값이 매매 가격보다 더 비싸면 거래에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파트보다 매물이 적어 실거래 내역이 많지 않거나 너무 과거라면 부동산 등기부등본이라도 확인해 봐야 한다. 주택 소유자와 계약하는 집주인이 일치하는지 파악하고 집주인이 집을 구매할 때 은행에서 빌린 금액인 근저당이 너무 높은지 잘 살펴야 한다.

근저당이 높다는 얘기는 집주인이 낮은 자금과 많은 대출로 주택을 구매했다는 얘기다. 집주인의 상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역이기도 하기 때문에 향후 전세 계약 만료 시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 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또한 집주인과 공인중개사가 공모해 사기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선 한 곳이 아니라 최소 2~3곳의 부동산을 찾아 계약하려고 하는 주택에 대해 꼼꼼히 살펴야 한다. 전입 신고 확정일자는 당연히 받아야 한다.

한 공인중개사는 “깡통 전세 사기로 선량한 공인중개사들도 사기꾼으로 몰리는 경우가 많다”며 “집을 구하는 실수요자는 발품을 팔아 여러 곳에서 정보를 확인한 후 계약하는 것이 좋다. 부동산 복비는 계약이 다 끝난 후 지급하는 것인 만큼 많은 곳을 둘러보고 꼼꼼히 살펴본 후 신뢰할 만한 공인중개사를 통해 계약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전세보증보험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전세 계약 종료 후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 보험 기관이 세입자에게 먼저 보증금을 돌려주고 나중에 집주인에게 돈을 받아 내는 제도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한국주택금융공사(HF)·SGI서울보증 등이 이 상품을 운영 중이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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