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정치가와 정치꾼, 그리고 청년의 삶

[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2017년 여름이었습니다. 요즘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날, 선배 두 분과 점심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차를 타고 회사 주차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오른쪽을 돌아보니 한 청년이 보였습니다. 엄청나게 큰 가방을 멘 축 처진 어깨에 한손에는 아이스 커피 한 잔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는 건물 고시원으로 올라갔습니다. 순간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리고 2~3분 후 선배들이 말했습니다.

“우리 커피 페스티벌 한번 하죠. 젊은 사람들이 와서 무료로 공연 보고 커피 마시고 책 읽다 갈 수 있는 그런 축제요.”

마침 한국경제신문이 ‘29초 영화제’를 하고 있어 구색도 맞출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 대한 마음의 빚을 덜어 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에게 단 이틀이지만 위로와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말에 선배들이 선뜻 나서 줬습니다. 그렇게 2017년 가을 1회 청춘 커피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취지에 공감한 많은 기업들도 기꺼이 참여해 줬습니다. 올가을에도 이 행사는 계속됩니다.

갑자기 청춘들의 얘기를 한 이유는 요즘도 그들의 삶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주가·코인·부동산 가격 하락, 물가 상승 등이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다뤘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그들이 택한 전략은 짜내기, 스퀴즈 전략이라고 합니다. 주가 상승기의 기대 이익을 기반으로 자신을 뽐내던 ‘플렉스(flex)’란 소비 코드는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한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의 삶이 팍팍해진 것은 숫자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숫자는 때로 스스로 스토리텔링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이 그런 때입니다.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소주 값 6000원 시대, 치킨 값 3만원 육박, 삼겹살 1인분 평균 1만7000원대, 휘발유 리터당 2200원.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연령대인 20대에게는 친구와 함께하는 가벼운 술자리도 부담스러워진 게 사실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도 숫자로 나타납니다. 6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 6%, 환율 1300원 돌파, 무역수지 3개월 연속 적자, 주가 2300선 붕괴, 외환 보유액 4300억 달러대로 감소. 경제 지표들은 이미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젊은 세대의 특성은 더욱 상황을 어렵게 만듭니다. 20대 실업률은 7%로 가장 높습니다. 물가 상승은 이들의 주머니를 털어 가고 있습니다. 주택 담보 대출 금리의 급등은 30대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30대 가구주의 부채 증가율은 전 연령대를 통틀어 1위를 기록했습니다. 뒤늦게 시작한 주식과 코인 투자는 지금까지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영끌’로 산 아파트로 인한 이자 부담은 가처분 소득을 엄청나게 갉아먹고 있습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지금 진행되는 위기의 구조와 리더십입니다. 1997년 외환 위기는 동남아와 한국에 국한돼 있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때도 시장으로서의 중국은 건재했습니다. 한국의 산업이 다시 일어설 기반은 붕괴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위기가 생기면 한국인들은 하나가 됐습니다. 외환 위기 때 김대중 대통령은 경제 관료를 정파에 관계없이 등용하는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국민은 돌반지까지 내다 팔며 나라 빚을 갚았습니다. 미국 금융 위기 때 MB 정부의 강만수 재정경제부 장관은 “환율은 국방력”이라며 환율 방어에 나서 기업들을 위기에서 구했습니다. 부동산 투자를 막았던 이전 정부의 정책 덕도 봤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20년에는 국민은 서로를, 스스로를 지켰습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 청장은 그 사령탑 역할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물가 상승과 경제난이 전 세계를 동시에 덮치고 있습니다. 협력해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전쟁과 이념은 세계를 갈라 놓았습니다. 안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 상황을 헤쳐 갈 리더십의 기본은 위기의식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에는 위기 의식이 보이지 않습니다. “세계가 다 고금리라 근본적인 대처 방법이 없다”는 말이 이를 상징합니다. 선거 때 청년 표를 받기 위해 온갖 공약을 내던졌던 정치권은 온갖 추문과 당권 쟁탈전에 여념이 없습니다.
위기의 세계적 확산, 한국 리더십의 부재는 한국 청년들의 미래의 삶까지 앗아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정치가는 국민의 삶을 걱정하고 정치꾼은 자신의 삶을 걱정한다고 합니다. 진짜 정치가를 보고 싶은 2022년 여름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