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애널리스트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입력 2022-07-16 06:00:01
수정 2022-08-03 09:50:39
[EDITOR's LETTER]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의 일입니다. 미국의 통계학자 18명이 모였습니다. 통계를 활용해 군을 지원하는 게 이들의 미션이었습니다. 어느 날 과제가 떨어졌습니다. 전투기 개선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전투에서 총 맞고 돌아온 전투기를 분석했습니다. 주로 날개와 꼬리 등에 총을 맞은 비행기였습니다. 숙제는 ‘어느 부분을 보강해야 할까’였습니다. 철갑을 둘러 보강해야 할 부분은 날개·꼬리·조종석 아니면 다른 어디일까.
이들이 제시한 답은 엔진이었습니다. 엔진에 철갑을 두르라고 했습니다. 돌아온 비행기가 아니라 돌아오지 못한 비행기로 눈을 돌린 결과였습니다. 엔진에 총을 맞은 비행기는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다는 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고래퀴즈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우영우의 대사입니다. “몸무게가 22톤인 암컷 향고래가 500kg에 달하는 대왕오징어를 먹고 6시간 뒤 1.3톤짜리 알을 낳았다면 이 암컷 향고래의 몸무게는 얼마일까요. 정답은 ‘고래는 알을 낳을 수 없다’입니다. 고래는 포유류라 알이 아닌 새끼를 낳으니까요. 무게에만 초점을 맞추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핵심을 봐야 돼요.”
두 가지 에피소드로 글을 시작한 것은 증권사 애널리스트 얘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애널리스트의 덕목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두 가지를 떠올렸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하고 핵심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널리스트의 어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ana(완전히)+ly(풀다)에서 왔다고 합니다. 완전히 풀고 나면 원래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핵심에 다가가게 되겠지요.
실제 애널리스트들은 세상의 일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합니다. 그리고 조언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밤에는 미국 시장을 보고 새벽에 나와 투자자들에게 전달한 리포트를 씁니다. 장중에는 우발적인 이슈를 해석하고 기업 탐방을 가기도 합니다. 또 기관투자가들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 설명하고 인사이트를 전달합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애널리스트와 리서치센터를 다뤘습니다. 단순히 상반기에 누가 잘했다고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부족하지만 한국 자본 시장과 함께한 그들의 역사를 다루려고 했습니다. 지난 10년간 베스트 애널리스트들의 명단을 다시 실었습니다. 오래된 애널리스트 인터뷰도 했습니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선배들에 대한 헌사도 보내 왔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애널리스트는 증권사의 꽃이었습니다. 증권사 직원들의 ‘원픽’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투자은행(IB), 채권에 이어 3위쯤 된다”고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말합니다.
머리와 몸, 감정까지 써야 하는 일이 된 지 오랩니다. 그럼에도 회사는 틈만 나면 애널리스트를 줄이려고 합니다. 돈 버는 부서가 아니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기관투자가들이 분석과 전망의 가치를 높게 쳐 주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대형 연기금들도 헐값에 분석과 전망을 사려고 합니다. 무형 자산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서 자본 시장도 예외가 아닌 셈입니다.
애널리스트의 고충은 이뿐이 아닙니다. 예측을 잘못 하거나 특정 기업에 좋지 않은 리포트를 내면 온갖 욕을 먹는 것도 이들의 몫입니다. 코스피지수나 특정 종목의 주가가 급등락하면 기자들의 전화도 받아 줘야 합니다. 언론도 공신력 때문에 애널리스트의 멘트를 활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갖 악조건에서도 애널리스트들은 매일 새로운 보고서를 쏟아냅니다. 거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담아 인사이트를 전달하려고 애씁니다. 교수나 일반 연구소 연구원들과는 다릅니다. 시장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북 스마트(book smart)와 스트리트 스마트(street smart)란 말이 있습니다. 애널리스트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굳이 표현하면 저자거리의 현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1980년대 한국에는 애널리스트란 직업이 없었습니다. 분석했지만 애널리스트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보고서는 나왔지만 필자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애널리스트 1세대, 2세대, 3세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한국 자본 시장의 기틀을 닦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활동했던 이름 없는 애널리스트들 그리고 오늘도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꿈꾸며 밤늦게 구석자리에서 무언가를 분석하고 있을 무명의 초년병들에게 한경비즈니스 기자들의 감사와 위로를 전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1942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의 일입니다. 미국의 통계학자 18명이 모였습니다. 통계를 활용해 군을 지원하는 게 이들의 미션이었습니다. 어느 날 과제가 떨어졌습니다. 전투기 개선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전투에서 총 맞고 돌아온 전투기를 분석했습니다. 주로 날개와 꼬리 등에 총을 맞은 비행기였습니다. 숙제는 ‘어느 부분을 보강해야 할까’였습니다. 철갑을 둘러 보강해야 할 부분은 날개·꼬리·조종석 아니면 다른 어디일까.
이들이 제시한 답은 엔진이었습니다. 엔진에 철갑을 두르라고 했습니다. 돌아온 비행기가 아니라 돌아오지 못한 비행기로 눈을 돌린 결과였습니다. 엔진에 총을 맞은 비행기는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다는 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고래퀴즈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우영우의 대사입니다. “몸무게가 22톤인 암컷 향고래가 500kg에 달하는 대왕오징어를 먹고 6시간 뒤 1.3톤짜리 알을 낳았다면 이 암컷 향고래의 몸무게는 얼마일까요. 정답은 ‘고래는 알을 낳을 수 없다’입니다. 고래는 포유류라 알이 아닌 새끼를 낳으니까요. 무게에만 초점을 맞추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핵심을 봐야 돼요.”
두 가지 에피소드로 글을 시작한 것은 증권사 애널리스트 얘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애널리스트의 덕목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두 가지를 떠올렸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하고 핵심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널리스트의 어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ana(완전히)+ly(풀다)에서 왔다고 합니다. 완전히 풀고 나면 원래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핵심에 다가가게 되겠지요.
실제 애널리스트들은 세상의 일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합니다. 그리고 조언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밤에는 미국 시장을 보고 새벽에 나와 투자자들에게 전달한 리포트를 씁니다. 장중에는 우발적인 이슈를 해석하고 기업 탐방을 가기도 합니다. 또 기관투자가들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 설명하고 인사이트를 전달합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애널리스트와 리서치센터를 다뤘습니다. 단순히 상반기에 누가 잘했다고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부족하지만 한국 자본 시장과 함께한 그들의 역사를 다루려고 했습니다. 지난 10년간 베스트 애널리스트들의 명단을 다시 실었습니다. 오래된 애널리스트 인터뷰도 했습니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선배들에 대한 헌사도 보내 왔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애널리스트는 증권사의 꽃이었습니다. 증권사 직원들의 ‘원픽’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투자은행(IB), 채권에 이어 3위쯤 된다”고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말합니다.
머리와 몸, 감정까지 써야 하는 일이 된 지 오랩니다. 그럼에도 회사는 틈만 나면 애널리스트를 줄이려고 합니다. 돈 버는 부서가 아니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기관투자가들이 분석과 전망의 가치를 높게 쳐 주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대형 연기금들도 헐값에 분석과 전망을 사려고 합니다. 무형 자산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서 자본 시장도 예외가 아닌 셈입니다.
애널리스트의 고충은 이뿐이 아닙니다. 예측을 잘못 하거나 특정 기업에 좋지 않은 리포트를 내면 온갖 욕을 먹는 것도 이들의 몫입니다. 코스피지수나 특정 종목의 주가가 급등락하면 기자들의 전화도 받아 줘야 합니다. 언론도 공신력 때문에 애널리스트의 멘트를 활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갖 악조건에서도 애널리스트들은 매일 새로운 보고서를 쏟아냅니다. 거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담아 인사이트를 전달하려고 애씁니다. 교수나 일반 연구소 연구원들과는 다릅니다. 시장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북 스마트(book smart)와 스트리트 스마트(street smart)란 말이 있습니다. 애널리스트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굳이 표현하면 저자거리의 현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1980년대 한국에는 애널리스트란 직업이 없었습니다. 분석했지만 애널리스트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보고서는 나왔지만 필자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애널리스트 1세대, 2세대, 3세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한국 자본 시장의 기틀을 닦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활동했던 이름 없는 애널리스트들 그리고 오늘도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꿈꾸며 밤늦게 구석자리에서 무언가를 분석하고 있을 무명의 초년병들에게 한경비즈니스 기자들의 감사와 위로를 전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