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경험 가능한 놀이터 만들어야
명문화된 비전·미션은 소구력 없어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열광하는 브랜드에는 세계관이 있다.
최근 극장가에선 ‘마동석 세계관’이 ‘마블 세계관’을 눌렀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배우 마동석이 기획·제작에 연기까지 관여한 ‘범죄도시2’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저2’보다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관이라는 말은 최근 다양한 곳에서 들을 수 있게 됐다. 게임과 판타지 등의 특정 장르에서 사용돼 온 개념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것이다.
브랜드에도 세계관이 적용되고 있다. 엄밀하게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스토리·캐릭터 등 기존 브랜드의 활동들이 세계관이라는 거대한 틀로 정리되고 있다.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가상 세계가 발전하고 초개인화 사회가 심화하며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면서 전통적으로 브랜드가 구축해 온 세계관의 영역이 더욱 확장되고 체계화돼 가고 있다.
브랜드 팬덤과 애착 형성 시작점
세계관에는 두 가지의 정의가 혼재돼 있다. 하나는 문자 그대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worldview)’이다. 다른 하나는 가상으로 설정된 ‘배경(universe)’이다. 이 둘은 사실상 상호 보완적 관계다. 배경이 되는 가상의 세계는 임의로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자의 철학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브랜드 세계관은 무엇일까. 이는 ‘세계(世界)’와 ‘관(觀)’으로 단어를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세계는 브랜드가 설정한 배경이자 그 안에서 약속된 규칙이다. 브랜드의 개성과 매력을 창출하는 역할을 하며 브랜드 팬덤과 애착 형성의 근간이 된다.
빙그레는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캐릭터와 그가 사는 빙그레 나라의 중세시대 배경, 순정 만화풍의 작화 등을 통해 브랜드만의 차별화된 개성을 보여준다. 고객 또한 빙그레우스의 세계에 빠져들며 브랜드와 애착 관계를 형성해 나가게 된다.
세계는 스토리와 캐릭터에 기반한 배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레고가 경쟁 상대로 ‘교육 시스템’을, 넷플릭스가 ‘잠’을 꼽은 것처럼 자신이 속해 있는 경쟁의 공간도 세계가 될 수 있다.
관점은 브랜드의 철학이자 태도다. 고객에게 동조·감화·공감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하며 고객 행동을 촉발한다. 나이키가 여전히 요즘 브랜드로 독보적인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인종 차별, 여성 차별 등 시대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대변하며 브랜드 액티비즘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세계관은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고 충성도를 강화해 나가며 고객의 행동을 유도하는 기존의 브랜딩 목표에 더 효과적이고 신선하게 도달하는 방법이다.
결국 브랜드 세계관은 브랜드가 어떤 세계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 제품과 기술이 평준화되고 영상과 모바일에 길들여진 고객에게 명문화된 비전과 미션은 더 이상 매력적으로 와닿지 못한다. 고객이 다양하게 브랜드를 경험하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을 때 ‘찐팬’이 된다. 이때 고객은 브랜드가 만들고자 하는 세계에 기꺼이 동참한다.
진로 두꺼비·빙그레우스 성공 사례
브랜드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에 3가지가 있다. 고유성·개방성·지속성이다. 고유성은 브랜드만의 가치나 특징이 세계관에 반영되는 것을 의미한다. 개방성은 누구든 참여해 콘텐츠를 재생산하고 확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성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고유성은 브랜드를 통해 인식하고 브랜드 전반의 활동을 관통하는 것이다. 세계관의 주제 의식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톤 앤드 매너로 전달되기도 한다. 고유성은 주요 고객이 흥미를 가지면서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브랜드 자산, 브랜드 철학, 당면 과제에서 찾을 수 있다.
브랜드 자산은 오랫동안 구축해 오고 고객에게도 인지되고 있는 것일수록 효과적이다. 하이트진로는 두꺼비라는 브랜드 자산을 캐릭터화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존 광고 모델의 자세나 CF를 패러디하기도 하고 생활용품·문구류 등의 굿즈도 론칭하는 등 노후화되는 진로의 이미지를 젊고 산뜻하게 탈바꿈시키고 활력을 불어넣었다. 존재감이 없던 두꺼비를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 진로의 브랜드까지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사례다.
브랜드 철학은 고유성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다. 카페 노티드는 최근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다. 이들이 다른 도넛 브랜드와 차별화될 수 있는 것은 도넛이 아닌 도넛을 둘러싼 콘텍스트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도넛을 먹는 순간의 경험·느낌·환경까지 생각했다. 나아가 인형·패션 등 굿즈를 통해 공간을 떠나 있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노티드에서 먹던 도넛을 떠올리게 한다. 노티드의 캐릭터들은 이러한 철학에 기반한 세계관 안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고객과 소통한다.
브랜드 세계관은 고객과의 상호적인 관계 구축에 효과적이어야 한다. 브랜드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아 축적하는 과정을 통해 고객들이 브랜드에 대한 충성을 제고할 수 있다. 특히 메타버스 환경에서 개방성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가상 세계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할 수 없거나 하기 어려운 것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객은 브랜드가 정해 놓은 가이드라인, 엄격한 매니지먼트 아래 일방적인 소통을 해 왔다.
브랜드가 고객과 진정성 있는 관계를 구축하고자 한다면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개방성은 브랜드에 대한 유연함, 상호 작용, 게이미피케이션이 갖춰질 때 강화해 나갈 수 있다.
롯데리조트는 ‘리조트 탈환 작전’이라는 세계관에 고객이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무장 괴한이 침입한 부여 리조트에 최정예 특수 대원들이 등장해 리조트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세계관을 바탕으로 롯데리조트는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로 이름을 알린 707 특수부대 출신 이진봉 씨와 함께 작전을 해결하는 군사 추리 게임 ‘강철부여’ 시리즈를 선보였다.
시청자들은 구글맵 코드 맞추기, 백제 역사 퀴즈 등을 함께 풀면서 세계관의 스토리를 진행한다. 이는 가상의 공간을 실제 경험할 수 있도록 오프라인 병영 체험 프로그램까지 이어졌다.
진정성 없는 억지 설정 금물
브랜드는 엄격한 관리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하고 고객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설계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 안의 콘텐츠는 고객이 채워줄 것이다. 단 최소한의 경계선을 설정해 주지 않으면 세계관은 브랜드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중구난방 뻗어 나갈 수도 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억지 설정을 들이미는 순간부터 세계관은 고객들의 놀이터가 아닌 관리의 대상이 되며 진정성을 잃게 된다. 브랜드 개방성은 장기적으로는 인지도 제고보다 애착도 제고에 효과가 있다.
단발적이거나 단기적인 이벤트나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이고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시리즈 형태로 연쇄성을 갖추거나 서사 규모와 메시지를 넓혀 나가야 한다. 세계관은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콘텐츠의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현재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 외에도 향후 개발할 브랜드, 나아가 협업할 수 있는 타 브랜드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속성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은 브랜드끼리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이다. 세계관을 계속 확장해 나가거나 콘텐츠를 꾸준히 개발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대신 유사한 브랜드 간에 협업하거나 공통된 콘셉트를 공유하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가미하는 등 부분적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세계관을 가장 잘 구축하는 인물로 나영석 PD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시리즈, ‘○식당’ 시리즈 등 다양한 히트 프로그램을 선보였는데 이들은 단발적인 프로그램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프로그램은 각각의 콘셉트대로 서사가 진행되면서 동시에 프로그램끼리 수평적으로도 연결되기도 한다. ‘신서유기’의 스핀오프로 윤식당 콘셉트를 차용한 ‘강식당’이 좋은 예다.
김동찬 인터브랜드 한국법인 수석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