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읽기] 배우 박은빈의 연기 내공, 책에서 왔다고?

뇌 활성화로 인간 업적의 원동력…다독가 CEO들의 경영 위기 해법은 독서
올여름 휴가철 명사들의 책 추천

[스페셜 리포트] 우영우 특집 #독서

(c)고원태, 민음사 편집부 '릿터' 제공

“‘우영우’를 소화할 배우는 지구상에서 ‘박은빈’밖에 없다”고 했던 문지원 작가의 극찬, “배우 박은빈의 캐스팅이 정해지는 순간 ‘만세’를 불렀다”는 유인식 감독의 흥분은 최근 화제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이끄는 주연 배우 박은빈에 대한 제작진의 두터운 신뢰를 가감없이 나타낸다. 제작진은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어느 하나 거슬리지 않고 잘해낼 수 있을지 두려워 여러 번 고사했다”는 배우 박은빈을 1년 이상 기다리며 박은빈 캐스팅에 공을 들였다. 작품이 주인공 우영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만큼 주연 배우의 힘에 극의 성공이 달렸기 때문이다.

박은빈은 아역부터 시작한 24년 차 배우다. 배우 본연의 매력뿐만 아니라 탄탄한 연기력으로 호평 받으며 작품의 성공을 이끌고 있다. 그의 탄탄한 연기에 대해 유인식 감독은 “분석력과 성실함을 모두 가졌다”고 평가했다. 실제 박은빈은 캐릭터를 꼼꼼히 연구하는 데 정평이 나 있다. 그리고 그 연구에 책을 활용한다. 연예계 손꼽히는 다독가다.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는 혜경궁 홍씨를 연기하면서 고전 ‘한중록’을 읽고 캐릭터 노트를 썼다. 그는 “간접 경험을 만들기 위해 책을 틈틈이 읽는다”고 했다. 실제 그의 책장에는 심리학, 철학 분야의 책이 많다. 우영우 캐릭터를 연구할 때도 영상 대신 텍스트를 읽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작 발표회에서 그는 “배우로서 처음 역할을 맞딱드리는 것은 텍스트란 대본”이라며 “영상 매체를 통해 구현된 캐릭터를 모방하고 싶지 않아 텍스트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제가 책을 읽을 때는 지식이 필요하거나 아니면 나에 대해 알고 싶을 때, 무엇인가의 이유를 찾고 싶을 때예요.” 그는 2020년 민음사가 펴낸 문학 잡지 ‘릿터’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을 탐구하고 싶을 때, 자신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찾아야 했을 때, 스스로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싶을 때 그가 선택한 것은 늘 책이었다고 말했다.독서, 인류의 기적적인 발명독서는 위대한 힘을 가진다. 배우 박은빈의 내면의 성장을 키웠듯이 간접 경험을 넓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뇌 과학자들에 따르면 독서는 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킨다. 인간의 뇌는 신경 세포를 의미하는 뉴런과 시냅스로 이뤄져 있다. 시냅스는 뉴런들의 의사소통을 위해 연결된 부분을 말한다. 어릴 때 생성된 뉴런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시냅스다. 시냅스는 외부 자극을 받아 새로 형성되기도 하고 이미 연결된 부분은 견고해지면서 뇌를 발달시킨다. 책을 통한 학습과 다양한 경험들이 뇌를 자극하면서 뇌의 시냅스 연결망이 새롭게 생성된다. 기억과 학습은 시냅스의 물리적 재편성의 결과다.

결국 독서는 우리의 뇌를 활성화하면서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뇌 분야 세계적 연구자인 매리언 울프는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인류의 기적적인 발명”이라고 말했다.

뇌 과학의 진실은 독서광의 사례에서도 입증된다. 비단 박은빈의 사례뿐만 아니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 중에서는 유난히 독서광이 많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는 여가 시간의 80%를 독서로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성공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 대신 책으로 가득 찬 자신의 서재를 보여줬다. 이 밖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이 대표적인 독서광 CEO다.

한국에도 손꼽히는 독서광이 많다. 삼성전자 반도체를 총괄하는 경계현 대표는 업계에서도 유명한 다독가다. 그런 그가 올해 초 반도체 부문 임원들에게 무제한으로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서비스 구독권을 제공하기로 했다. 임직원들이 독서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경 대표는 임직원에게 책을 추천하며 “책을 많이 읽고 리더들은 독서 토론도 하면 좋겠다”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창업자 김봉진 역시 유명한 다독가다. 스스로를 ‘과시적 독서가’라고 칭할 정도다. 1주일에 5권을 함께 읽으면서 주당 한 권은 꼭 마무리한다. 그는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2011년부터 회사에 자기 성장 도서비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책 구매비를 무제한 지원하는 것인데, 도서 기준만 충족하면 몇 권을 사도 문제없다.

‘가치 투자’로 유명한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이다. 자신을 ‘공부하는 캐피털리스트’라고 쓴 그는 책 표지를 올리고 짧은 독후감을 남긴다. 투자·인문·역사·소설 등 종류도 다양하고 방대하다. 자수성가 CEO로 유명한 하림의 김홍국 회장 역시 집무실에 독서대를 두고 틈이 나면 책을 읽는 다독가로 잘 알려져 있다.

CEO들은 ‘독서 경영’을 내세우며 경영 위기의 순간에도 책을 활용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제2의 성장을 이룬 기업 경영인의 성공 저력이 무엇인지 파헤친 책 ‘지식의 힘’에는 독서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CEO 27인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27인의 CEO들은 지독한 독서광이었고 책을 통해 보통 사람들은 생각해 내지 못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독창성을 키웠고 그것을 실현 가능하도록 구체화하는 방법을 익혔으며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동기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또한 책을 통해 얻은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중심을 잃지 않고 최선의 결단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독서의 중요성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우리는 책을 쉽게 잊고 외면한다. 통계청이 조사한 한국의 만13세 이상 독서 인구(1년간의 독서 여부, 교과서와 학습 참고서 제외)는 2013년 62.4%에서 2021년 45.6%로 매년 줄고 있다. 연간 1인당 평균 독서 권수는 7권에 불과하다. 최근 1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는 곧 문해력의 저하에 빠진다. 지난해 12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에서 한국 학생들의 읽기 영역 순위는 2009년 2~4위에서 2018년 6~11위로 하락했다. 특히 최하위 수준에 해당하는 1수준과 1수준에 미달하는 학생 비율이 2009년 5.8%에서 2018년 15.1%로 3배 정도 늘었다. 읽기 영역에서 하락 폭이 가장 큰 국가는 바로 한국이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한국의 학생들은 문장 수준의 의미 이해와 관련되는 ‘유창하게 읽기’의 정답률이 매우 낮은데 이러한 기초적 읽기 기능에 대한 성취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라며 “다양한 평가나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읽기 성취에 대한 진단과 그에 대한 대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활자 외 매체 수준이 발전함에 따라 이 같은 하락 폭은 앞으로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뇌 연구자 노규식 연세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tvN ‘미래수업’에서 “스마트폰에 중독된 뇌파는 뇌의 일부 영역만 자극하기 때문에 뇌 발달의 불균형을 가져온다”며 “감정·운동·지적 기능을 하는 전두엽과 언어 기능을 하는 측두엽의 기능은 떨어지고 시각 정보를 기억하고 처리하는 후두엽의 기능만 활성화하는 것이 뇌파 검사에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세상은 점점 덜 부담스러운 미디어에 익숙해져 가고 있지요. 이제는 독서가 오히려 마니아적인 것이 돼가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처음 읽은 책을 펴내 화제를 모았던 출판사 ‘책과함께’ 편집자의 메시지는 지금 우리 사회의 책에 대한 시각을 정확하게 짚는 대목이다.

‘지식이 필요하거나 아니면 나에 대해 알고 싶을 때, 무엇인가의 이유를 찾고 싶을 때’ 모두가 구글을 선택하는 시대에 배우 박은빈처럼 독서를 선택하는 것은 어떨까. 이 시대에 독서 행위가 보다 대중화될 수 있도록 올여름 휴가철에는 영상 콘텐츠보다 책 한 권을 추천한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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