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Play's SIGNAL] 메타버스와 뇌과학의 특별한 만남 ‘룩시드랩스’

교육부터 의료까지 넓어지는 ‘가상 공간 영토’…메타버스에 세워진 심리상담소

[FuturePlay's SIGNAL]

채용욱 룩시드랩스 대표. 사진=룩시드랩스


페이스북이 ‘메타’로 이름을 바꾼 게 지난해 10월이었다. 당장이라도 ‘메타버스’ 세상이 열릴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여전히 실제 메타버스가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는 모호하기만 하다. 가장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메타버스를 활용한 가상 오피스 공간으로의 출근이다. 몸은 집에 앉아 있지만 동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업무를 볼 수 있는 가상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메타버스는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시간과 공간을 확장해 주는 ‘새로운 영토’라고 표현할 수 있다.

VR 기반 정신 건강 코치, CES 2022 혁신상 수상

가상의 오피스뿐만이 아니다. 일상의 물리적 공간과 시간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교육과 의료 분야, 건축 현장은 물론 음악 감상, 미술 작품 감상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까지 메타버스의 세상이 점차 열려 가고 있는 중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플로레오 VR(Floreo VR)은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자폐 스펙트럼 증상을 보이거나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 증상을 보이는 어린이들의 사회성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인도의 소프트 회사인 커스맷테크놀로지(Cusmat Technology)는 메타버스를 통해 직원들의 기술과 안전 교육 등을 실시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모페는 가상 공간과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70여 분간 관객들에게 새로운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회 티켓을 판매 중이기도 하다.

뇌파를 활용한 가상현실(VR) 장비를 개발하고 있는 룩시드랩스도 메타버스의 영토를 넓혀 가고 있는 대표적인 스타트업 중 하나다. 채용욱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전산학 석사과정을 공부하며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를 연구했다. 예를 들어 연구실에 앉아 있는 사람이 뇌파 헬멧을 끼고 있으면 그 사람의 생각(뇌파)을 읽어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휴머노이드를 조종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기술이다. 채 대표는 영화 ‘아바타’를 예로 들었다. 하반신이 마비된 주인공은 캡슐에 있지만 일종의 가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외계 행성에서 돌아다니고 감정을 느낀다. 채 대표가 연구한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BCI)다.

채 대표는 “처음에는 뇌파를 읽기 위한 헬멧이 너무 무겁고 불편했기 때문에 보다 가볍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결과물이 개인의 인지 상태를 분석하는 웨어러블 헤드셋 LX-1이다. VR과 증강현실(AR)에 접목할 수 있는 시선-뇌파 기반 인터페이스(EBI : Eye-Brain Interface)로 2016년 룩시드랩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2017년 오큘러스 등 VR 시장이 급성장했고 룩시드랩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VR 기기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생체 신호를 읽고 감정을 읽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를 통한 인지 기능 훈련 또한 가능하다. 인지 훈련 등을 위한 콘텐츠 개발에 뛰어들었다.

채 대표는 “뇌파를 읽어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인지 기능을 향상 시키는 심리 상담소와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며 “현실 세계에 그런 공간을 짓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이와 비교해 가상 공간에 심리 상담소를 만든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VR 인지 기능 평가와 훈련 시스템 ‘루시’는 그렇게 탄생했다.

룩시드랩스에서 처음 개발한 루시 1.0은 VR 기기를 사용하는 이들의 뇌파를 통해 치매 등을 미리 인지하고 나아가 치매를 예방하는 등의 훈련을 제공하는 데 중점이 맞춰져 있었다. 루시 1.0을 업그레이드한 루시 2.0은 이보다 범위를 넓혔다. 치매 예방과 교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스트레스 해소나 집중력 향상을 통한 성과 증진 프로그램, 심리 상담 프로그램 등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룩시드랩스는 VR 기반의 인지 건강 관리 코치 프로그램인 ‘루시’로 지난 1월 ‘세계가전전시회(CES) 2022’에서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룩시드랩스가 운영 중인 '루시 버스'에서 참가자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게임이 끝나고 나면 '인지 건강 리포트'를 제공받게 된다. 사진=룩시드랩스

VR 체험할 수 있는 ‘메타 버스’ 운영, 게임하며 인지 기능 테스트

메타버스에서 정신 건강을 관리해 주는 프로그램인 ‘루시’는 2022년 정식 출시됐다. 룩시드랩스는 최근 더 많은 이들이 ‘루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도록 ‘루시 버스 서비스’를 시작했다. 버스 내부에는 네 명이 사용할 수 있는 VR 기기가 각각 마련돼 있다. 이 VR 기기를 통해 ‘루시’ 프로그램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이 버스는 강릉·횡성·광명과 서울 시내 어디든 간다. 주로 지방의 보건소와 같은 곳에서 많이 문의한다고 한다. 채 대표는 “이런 게 말 그대로 ‘메타 버스’”라고 장난치듯 웃으며 말한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VR 기기를 쓰고 버스에서 게임을 즐기는데 생각보다 기기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 없이 재미있어 하는 분들이 많다.

게임의 내용은 간단하다. 두더지 잡기나 과일 분류 게임 등 간단하지만 집중력을 요하는 게임이다. 서울대와 고려대 등에서 근무 중인 교수들과 함께 기획한 게임들로, 지각 능력과 기억 능력 등을 평가하거나 훈련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게임을 실컷 즐기고 나면 사용자마다 ‘인지 건강 리포트’가 제공된다. 게임을 즐기는 동안 뇌파를 읽어 인지 기능을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채 대표는 “만약 그 결과 인지 건강이 현저히 떨어졌다면 치매안심센터 등에 바로 보내 드리고 있다”며 “버스에 탄 분들에게는 이후 VR 기기와 함께 루시를 사용할 수 있는 ‘훈련용 패키지’를 제공해 사용자들이 꾸준히 인지 기능을 높일 수 있는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버스 운영을 통해 고객들의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올해 1만 건이 넘는 데이터가 모였다. 향후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루시의 인지 건강 평가와 훈련 또한 정확도가 높아질 것이다.

최근에는 해외 시장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실제로 CES 2022 이후 미국 등의 시장에서 루시에 관심을 보이는 곳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비교해 해외에서는 스트레스 해소나 성과 증진 등의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높다. 채 대표는 “한국에서는 특히 수험생들의 집중력 향상 등과 관련해 관심이 높은 편”이라며 “해외는 운동 선수나 실리콘밸리의 최고경영자(CEO) 등을 중심으로 성과 증진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이 좋다”고 말한다.

VR 기기를 사용해 3차원 공간에 들어가면 미술 치료사와 대화가 이어진다. 당신의 미션은 무엇인지, 그 미션을 수행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질문이다. 상담사의 지시에 따라 사용자는 3차원 공간에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며 상담을 받는 동시에 뇌파를 추적하고 그 결과를 사용자에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스트레스 해소 등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중력 향상과 함께 성과 또한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채 대표는 “최근 미국 출장에서 만난 글로벌 기업의 임원들 중에는 높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며 “이들이 VR 기기를 쓰고 루시 프로그램을 이용하다가 펑펑 울기도 하는 등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시간을 내 심리 상담소에 들를 수 없을 만큼 바쁜 사람들이 사무실에 앉아서 스트레스 해소와 심리 상담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메타버스 정신 건강 코치’에 대한 관심이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루시’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의 스트레스 상태와 인지 건강 등을 점검하고 관리법을 알려주는 서비스도 가능하다. 이들 글로벌 기업뿐만 아니라 VR 기기를 통해 뇌파를 읽고 인지 기능을 추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험사와 제약사 등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이는 곳이 적지 않다.

5년 뒤에는 메타버스 세상에 ‘정신 건강’과 관련한 실제 병원을 개설하는 것이 목표다. 아직은 메타버스에서 의료 행위를 하는 데 제약이 많이 따르는 게 현실이지만 앞으로 원격 진료 등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높아진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란 야심이다. 채 대표는 “정신 건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인 만큼 기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데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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