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년 전 시작된 '골드러시'부터 뉴턴까지…금에 얽힌 5가지 사실[금의 배신②]

[금의 배신②]


글로벌 경제에서 달러가 가진 힘은 절대적이다. 미국의 만성 무역적자나 31조 4000억 달러(약 4경원)에 달하는 부채에도 달러 패권은 공고하다. 미국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5000조원에 달하는 헬리콥터 머니를 살포했다. 올해는 시장에 풀었던 달러를 다시 거둬들이기 위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이어 갔다. 그 결과 최근 달러 가치는 20년 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기축 통화가 가진 힘이다.

달러가 세계 경제의 지배자가 되기 전에는 금이 그 역할을 했다. 금은 인간이 발견한 이후부터 늘 귀한 대접을 받았다. 국가와 경제의 흥망성쇠를 좌우했고 글로벌 교역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도 금은 모든 문명에서 가장 귀한 금속으로 여겨졌다.

인간이 상형 문자로 기록을 남길 수 있던 고대 문명에서도 금은 이미 그 자체로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39가지 사건으로 보는 금의 역사’를 저술한 루안총샤오는 “황금 이외에 세계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받은 금속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평가한다. 금은 인간의 문명을 발달시켰고 교역과 금융 체계를 정립했다. 금을 캐기 위해 전쟁이 일어났고 금을 발견하기 위해 대항해 시대가 열렸다.

그렇다면 금은 언제부터 화폐의 기능을 하기 시작했을까. 달러가 금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던 계기는 무엇일까.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화폐의 역할을 해 온 금에 얽힌 5가지 사실로 금의 역사를 풀었다. 1. 금은 기원전 2600년쯤에도 ‘금값’이었다. 금값이 떨어지든 오르든 금은 오랜 역사 속에서 그 자체로 성공·부·권력의 상징이 됐다. 기원전 2600년께 이집트 상형 문자에도 황금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기원전 1500년쯤의 미라에서 발견된 황금 가면과 황금띠는 이미 고대 이집트의 금 제련 기술이 어느 정도로 발달했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기원전 1320년의 파피루스 지도에는 나일강과 홍해 사이의 금광 위치가 나온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 그려진 보물 지도다. 금광 지도는 고대 이집트가 광범위한 지역에서 체계적으로 금광을 채굴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집트는 금광 채굴을 위해 전쟁을 일삼고 식민지를 거느렸다. 뮤지컬 ‘아이다’의 주인공인 아이다는 이집트가 금광 채굴을 위해 식민지로 삼았던 누비아의 공주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도 금이 가진 가치는 절대적으로 묘사된다. 트로이 전쟁의 불씨를 당긴 ‘황금 사과’ 이야기나 미다스 국왕이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손이 닿는것마다 모두 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고 청한 이야기를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도 황금이 가진 지위를 알 수 있다. 성경에는 금에 대한 언급이 400여 차례나 나온다. 2. 기원전 600년께 금 주화가 법정 화폐로 통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튀르키예(구 터키)는 수많은 문화가 탄생한 지역이다. 로마·비잔틴·오스만까지 수많은 세계사가 쓰였다. 금이 화폐로 탄생한 기록도 오늘날 튀르키예 북서부 지역에 있던 리디아 왕국에서 시작됐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기원전 485~425년)의 ‘역사’에 따르면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는 사금이 풍부한 땅이었다. 리디아는 주변 산에서 빗물에 쓸려 내려온 사금이 왕국 내 모든 강으로 흘러 들어갔다. 리디아가 최초의 금화를 주조한 배경은 이 같은 지리적 이점이었다. 동서양을 연결해 온 리디아인들은 ‘상인의 DNA’를 가지고 있었다. 화폐 제도는 리디아의 무역을 발전시키고 동양과 서양의 물자 유통을 촉진했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600년께에도 리디아에서 금 주화가 사용됐다. 특히 리디아의 마지막 국왕이자 전성기를 이끌었던 크로이소스 국왕은 금 주화를 규격화하고 순도가 낮은 금과 은을 제련하고 불순물을 걸러내는 금 제련소를 인류 최초로 만들었다.

리디아의 화폐였던 ‘사자 주화’는 대략 금 54%와 은 46%로 만들어진 합금이고 중량은 4.74g, 지름은 11mm다. 리디아는 화폐의 성분·중량·크기의 규격을 정해 화폐의 신용을 보장했다 3. ‘금의 저주?’ 강대국 스페인이 망한 이유
엠마누엘 로이체가 그린 '여왕 앞에 선 콜럼버스'

“물밀듯이 들어온 황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루안총샤오가 스페인이 힘을 잃게 된 과정을 설명한 문장이다. 스페인이 해상 강국으로 떠오른 것은 16세기다. 황금에 대한 열망으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항해 시대를 열면서 스페인의 힘은 강해졌다. 콜럼버스는 생전 편지에서 황금에 대한 열망을 가감없이 나타냈다. 콜럼버스 일기에는 황금이 무려 65차례나 언급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스페인은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차지한다. ‘금의 역사’에 따르면 1521년부터 1544년 사이 스페인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연평균 2900kg의 황금과 3만700g의 은을 운반해 갔다.

1545년부터 1560년 사이 수량이 급증해 연평균 황금은 5500kg, 은은 24만6000kg을 가져갔다. 16세기 말이 되자 세계 금·은 생산량 중 83%를 스페인이 점유했다. 16세기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지만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였다. 황금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스페인으로 계속 유입됐지만 이는 다른 유럽 국가나 아시아로 쉴 새 없이 흘러나갔다.

서유럽이나 북유럽과 달리 스페인에서는 변혁 운동이나 화폐 개혁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페인으로 흘러들어온 황금과 은은 스페인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자극했고 적극적인 생산 활동을 가로막는 역할을 했다. 막스 베버에 따르면 당시 스페인은 국가수입의 70%를 전쟁비용으로 썼다고 한다. 스페인 의회는 당시 ‘황금은 점점 많이 유입되는데 스페인 국왕에게 오는 양은 점점 적어진다. 우리는 금과 은이 아메리카에서 다른 나라로 가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생산력 부족과 무역 적자는 스페인의 부를 유출시켰다. 프랑스와 오스만제국 등과 벌인 전쟁 비용으로 자금이 유출되면서 스페인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4. ‘만유인력’ 뉴턴의 또 다른 명함은 ‘조폐국장’
아이작 뉴턴

금 이후 세계 최초로 기축 통화 역할을 한 화폐는 영국 파운드다. 1717년 영국이 금 본위제를 도입하면서 파운드는 기축 통화 지위를 가졌다. 영국은 금융 체계가 가장 먼저 정립된 나라다. 1694년 설립된 영국은행이 중앙은행 기능을 수행하며 일찌감치 화폐 체계가 자리 잡혔다. 이런 영국 화폐를 최고 지위에 올려놓은 것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다.

1696년 뉴턴은 절친한 친구였던 찰스 몬태규 재무대신의 권유로 영국 조폐국에서 감독관으로 일한다. 뉴턴은 숫자와 논리에 뛰어난 자질을 살려 3년 만에 조폐국장에 오른다. 특히 주조의 정확도를 강조하고 1기니 금화는 은 21실링으로 교환하도록 결정했다. 영국에서 금 본위제가 탄생한 배경이다. 그 결과 파운드는 안정적인 화폐로 인정받으면서 1860~1914년 동안 세계 교역 결제 통화의 60%를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영국을 중심으로 한 금 본위제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흔들린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이 세계 대전 전쟁 비용과 이후 복구를 위해 미국에 막대한 채무를 지면서 미국이 전 세계 금을 빨아들였다. 결국 영국은 금이 부족해 1931년 금 본위제를 포기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패권을 쥔 미국의 주도로 1944년 브레튼 우즈 지역에 모인 44개 연합국 대표들은 금 1온스당 35달러로 하는 고정 환율제도를 채택했다. 미국의 금 본위제가 탄생한 배경이다. 1971년 경상 수지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달러를 금과 일정 비율로 교환하는 금태환을 정지한다고 발표하면서 브레튼 우즈 체제는 막을 내렸다. 5. 금 채굴 1위는 미국·남아공 아닌 중국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황금이 발견되면서 이후 15년 동안 400만 명의 외국인이 미국에 유입됐다. 미국 ‘골드러시’의 시작이다. 1850년대 호주 대륙에서도 금광이 발견되면서 죄수 유배지였던 호주의 운명이 바뀌었다.

1851년 11월 호주에서 런던으로 운반된 황금은 253온스였지만 6개월 뒤 0.5톤으로 늘었다. 인류 최초의 자원 전쟁이었던 ‘보어전쟁’은 영국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금광맥을 차지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다. 이처럼 금의 발견은 사람들의 열망과 피를 불렀다.

오늘날 가장 많은 금을 생산하는 나라는 미국·호주·남아공이 아니다. 세계 생산량의 11%를 차지하는 중국이다. 중국은 2020년 기준 368톤을 생산했다. 그 뒤를 2020년 한 해 동안 333톤을 생산한 러시아가 잇는다. 금은 러시아의 든든한 ‘뒷배’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가 서방의 고강도 경제 제재에도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를 피하며 버틸 수 있는 것은 대량으로 보유 중인 금 덕분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러시아 중앙은행(CBR)의 금 보유액은 약 16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러시아의 금 보유량은 미국(8133톤), 독일(3359톤), 이탈리아(2452톤), 프랑스(2436톤)에 이어 세계 5위에 해당한다. G7은 최근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기 위해 러시아 금 수입 금지 카드를 꺼내 들기도 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