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금의 배신과 연금술사들이 남긴 메시지
입력 2022-08-01 06:00:12
수정 2022-08-03 09:48:38
[EDITOR's LETTER]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몇 주 전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온몸을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느낌, 열대야가 시작됐지만 피부를 파고드는 차가운 기운. 그동안 잘 피해 다녔지만 여기까지란 생각이 스쳤습니다. 있는 약 없는 약을 마구 입에 넣고 전기장판을 켜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목 천장을 정으로 깨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이틀 후 조금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봤습니다. 누구한테 옮았을까. 여러 명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범인’을 지목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다시 복기하다 결국 문제는 스스로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개인적·업무적 스트레스로 정신적·육체적으로 정상이 아닌 시간이 몇 달간 지속됐기 때문입니다.
왜 코로나19와 싸우는 데 면역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분비시킵니다. 물론 코르티솔도 진화의 산물입니다. 초원에서 맹수를 만나는 등 위험에 처했을 때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으면 흘러나오는 조기 경보 시스템입니다. 빠르게 도망칠 수 있게 만들어 주지요. 그래서 위협이 사라지면 함께 없어집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코르티솔은 계속 몸 안에 남아 있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계속 받는다는 얘기는 맹수를 만나 도망갈 준비를 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로 매일 생활을 하는 셈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뇌가 그리 똑똑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체가 순식간에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에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기능을 꺼버립니다. 그때 꺼버리는 기능 중 하나가 면역 기능이라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면역을 떨어뜨리는 구조입니다. 주변에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이 코로나19에 잘 걸리지 않는 것도 호르몬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수면은 코르티솔 분비를 억제해 면역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는 게 의사들의 얘기입니다.
물론 이번 주 칼럼의 주제는 건강이 아닙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스트레스 얘기를 하면 요즘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투자자들입니다. 주식·부동산·코인까지 달러를 제외한 모든 자산의 가격이 하락하니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그 자산 가운데 금에 대해 다뤘습니다. 금 투자자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더 클 것입니다. 금은 인플레이션에 강하고 위기가 오면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아 가치가 더 올라간다는 게 상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식은 상식일 뿐, 이번 위기에는 달랐습니다. 강달러에 금값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꼭 금이 위기에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내용과 금이 경제에 미친 역사적 사건들도 담았습니다.
금은 현실적으로도 한국인들의 생활 속에 있었습니다. 돌이면 금반지를 선물했고 연인들은 커플링으로 금반지를 나눠 끼기도 했습니다. 남자들도 책상 서랍 어딘가에 젊었을 때 차고 다니던 금목걸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합니다. 10년, 20년 근무하면 금 몇 돈을 준다는 얘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금이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1998년 외환 위기 때였습니다. 금값이 뻔히 올라갈 줄 알면서도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겠다고 집에 있던 금을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그때 모인 금이 220톤이 넘었습니다. 4개월간 351만 명이 돌반지·결혼반지·트로피를 내놓았습니다. 당시 네 집 중 한 집이 참여했다고 하지요. 한 집당 평균 65g, 돈으로 따지면 17돈이 넘게 내놓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물론 국가가 하는 짓이 항상 그렇듯 이렇게 모인 금을 국제 시장에서 싸게 팔아 실질적으로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게 이 감동적인 스토리의 씁쓸한 중간 결말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했던 금. 이 금을 제조하려고 나섰던 용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연금술사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금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지만 인이라는 화학 물질을 발견하는 등 수많은 현대 과학의 씨를 뿌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연금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금술은 아들에게 과수원 어딘가에 금을 묻어 두었다고 유언한 아버지에 비유할 수 있다. 아들은 금을 찾기 위해 온 밭을 헤쳐 보았지만 어디서도 금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과나무 뿌리를 파헤쳐 놓아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연금술사들은 금을 만드는 데 실패했지만 유용한 기구와 실험 방법, 물질을 발견·발명해 인류에게 큰 혜택을 줬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연금술은 정통 과학에 밀려 지하로 들어갔지만 그 정신을 높이 사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이를 증언하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 나오는 문장으로 글을 닫습니다.
“이게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이지.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그들은 보여주는 거지.”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몇 주 전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온몸을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느낌, 열대야가 시작됐지만 피부를 파고드는 차가운 기운. 그동안 잘 피해 다녔지만 여기까지란 생각이 스쳤습니다. 있는 약 없는 약을 마구 입에 넣고 전기장판을 켜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목 천장을 정으로 깨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이틀 후 조금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봤습니다. 누구한테 옮았을까. 여러 명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범인’을 지목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다시 복기하다 결국 문제는 스스로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개인적·업무적 스트레스로 정신적·육체적으로 정상이 아닌 시간이 몇 달간 지속됐기 때문입니다.
왜 코로나19와 싸우는 데 면역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분비시킵니다. 물론 코르티솔도 진화의 산물입니다. 초원에서 맹수를 만나는 등 위험에 처했을 때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으면 흘러나오는 조기 경보 시스템입니다. 빠르게 도망칠 수 있게 만들어 주지요. 그래서 위협이 사라지면 함께 없어집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코르티솔은 계속 몸 안에 남아 있게 됩니다. 스트레스를 계속 받는다는 얘기는 맹수를 만나 도망갈 준비를 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로 매일 생활을 하는 셈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뇌가 그리 똑똑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체가 순식간에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에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기능을 꺼버립니다. 그때 꺼버리는 기능 중 하나가 면역 기능이라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면역을 떨어뜨리는 구조입니다. 주변에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이 코로나19에 잘 걸리지 않는 것도 호르몬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수면은 코르티솔 분비를 억제해 면역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는 게 의사들의 얘기입니다.
물론 이번 주 칼럼의 주제는 건강이 아닙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스트레스 얘기를 하면 요즘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투자자들입니다. 주식·부동산·코인까지 달러를 제외한 모든 자산의 가격이 하락하니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그 자산 가운데 금에 대해 다뤘습니다. 금 투자자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더 클 것입니다. 금은 인플레이션에 강하고 위기가 오면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아 가치가 더 올라간다는 게 상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식은 상식일 뿐, 이번 위기에는 달랐습니다. 강달러에 금값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꼭 금이 위기에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내용과 금이 경제에 미친 역사적 사건들도 담았습니다.
금은 현실적으로도 한국인들의 생활 속에 있었습니다. 돌이면 금반지를 선물했고 연인들은 커플링으로 금반지를 나눠 끼기도 했습니다. 남자들도 책상 서랍 어딘가에 젊었을 때 차고 다니던 금목걸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합니다. 10년, 20년 근무하면 금 몇 돈을 준다는 얘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금이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1998년 외환 위기 때였습니다. 금값이 뻔히 올라갈 줄 알면서도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겠다고 집에 있던 금을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그때 모인 금이 220톤이 넘었습니다. 4개월간 351만 명이 돌반지·결혼반지·트로피를 내놓았습니다. 당시 네 집 중 한 집이 참여했다고 하지요. 한 집당 평균 65g, 돈으로 따지면 17돈이 넘게 내놓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물론 국가가 하는 짓이 항상 그렇듯 이렇게 모인 금을 국제 시장에서 싸게 팔아 실질적으로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게 이 감동적인 스토리의 씁쓸한 중간 결말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했던 금. 이 금을 제조하려고 나섰던 용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연금술사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금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지만 인이라는 화학 물질을 발견하는 등 수많은 현대 과학의 씨를 뿌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연금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금술은 아들에게 과수원 어딘가에 금을 묻어 두었다고 유언한 아버지에 비유할 수 있다. 아들은 금을 찾기 위해 온 밭을 헤쳐 보았지만 어디서도 금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과나무 뿌리를 파헤쳐 놓아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연금술사들은 금을 만드는 데 실패했지만 유용한 기구와 실험 방법, 물질을 발견·발명해 인류에게 큰 혜택을 줬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연금술은 정통 과학에 밀려 지하로 들어갔지만 그 정신을 높이 사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이를 증언하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 나오는 문장으로 글을 닫습니다.
“이게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이지.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그들은 보여주는 거지.”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