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절벽’ 기정사실화 된 일본, 기업들은 미래 수요 확보하는 것에 중점
[글로벌 현장]도쿄 3대 민영 전철 가운데 하나인 오다큐선은 올해 3월 12일부터 초등학생 요금을 전 구간 50엔(교통카드 이용 시)으로 대폭 인하했다. 최근 환율(100엔당 950원)을 적용하면 475원이다. 지금까지는 성인 요금의 반값이었다.
오다큐선은 신주쿠에서 가나가와현의 유서 깊은 해안 도시인 오다와라까지 82.5km를 달리는 노선이다. 일본의 지하철 요금도 거리에 비례한다. 어린이가 신주쿠에서 오다와라까지 가려면 445엔이 들었다. 하지만 3월부터는 시점부터 종점까지 달려도 50엔이다. 요금이 90% 내려간 셈이다.
서울 지하철의 초등학생 기본 요금은 450원이다. 서울 지하철로 똑같이 82km를 달리면 1050원이 든다. 오다큐선의 어린이 요금이 서울의 반값인 셈이다.
도쿄 지하철 어린이 요금, 서울보다 싸졌다
오다큐는 어린이 요금 인하로 연간 2억5000만 엔의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철도는 코로나19 피해를 가장 크게 받은 업종이다. 대규모 적자를 낸 민간 철도 회사들은 역 주변 쇼핑몰과 호텔 자산을 팔아 근근이 버티고 있다.
한 푼이 아쉬운 때 오다큐가 연간 25억원의 손실 감수를 결정한 것은 인구 감소가 코로나19 사태보다 더 무섭기 때문이다. 오다큐선은 1일 유동 인구가 일본 1위인 신주쿠와 도쿄에 이어 인구가 둘째로 많은 광역 지방자치단체인 가나가와현을 연결하는 수도권 알짜 노선이다.
노선 주변의 인구가 매년 증가해 인구 감소는 남의 일 같아 보였다. 하지만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와 공동 연구 결과 2020년 518만 명까지 늘었던 노선 주변 인구가 5년 내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5년이면 주변 인구가 502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오다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일시적인 이용자 감소보다 노선 주변 인구의 감소를 더 심각한 문제로 봤다. 3년 전부터 태스크포스팀(TFT)을 만들어 대책을 마련한 결과물이 ‘초등학생 요금 일률 50엔’이다.
초등학생 요금 인하 전략의 핵심은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미래의 수요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도쿄와 수도권도 조만간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일찌감치 어린이 고객을 선점해 성인이 됐을 때도 오다큐 노선 주변에 계속 거주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오도록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오다큐 관계자는 산케이신문에 “어릴 때부터 노선 주변에 살았던 어린이들은 오다큐선에 대한 애착이 크다. 커서 가정을 이룰 때 다시 이 지역에 돌아와 정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에서 철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지역 노선에 대한 애착이 강한 일본의 문화를 반영한 ‘미래에의 포석’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오다큐는 일률 50엔 제도를 실시하기 전에 초등학생을 100엔에 무제한 탑승할 수 있는 실험을 해봤다. 그랬더니 전체 승차권 판매 수가 1.7배 늘었다. 아이를 데리고 가는 성인 승객까지 늘었기 때문이었다. 오다큐 관계자는 “승객이 늘면서 오다큐그룹의 역 주변 상업 시설 매출도 늘었다. 집객 효과가 가격 인하에 따른 수입 감소보다 크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인구 1억 명 목표 ‘비현실적’
오다큐선의 사례처럼 인구 구조와 소비 패턴의 변화를 매일 체감하는 일본 기업들은 인구 절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일찌감치 대비하고 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일본 인구 1억 명 사수’를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2021년 10월 1일 일본의 인구는 1억2550만 명으로 1년 만에 사상 최대인 64만 명 줄었다. 신생아 수도 84만232명으로 5년 연속 사상 최저치를 이어 갔다. 일본 정부 예상보다 3년 빨리 신생아 수가 84만 명대에 진입했다.
많은 일본인들은 아직 2500만 명 여유가 있으니 지금이라도 저출산 대책을 충실히 하면 1억 명 선을 방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전문가들은 2030~2040년 출생률을 2.07명까지 늘리지 못하면 인구 감소를 멈출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일본 정부의 계획은 출생률을 2020년 1.6명, 2030년 1.8명, 2040년 2.07명으로 늘리는 것이다. 목표와 달리 2021년 일본의 실제 출생률은 1.30명으로 6년 연속 하락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020년 결혼 건수가 12.3% 급감해 출생률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낙관적인 전망은 인구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위기감을 잃어버리게 하는 요인”이라며 “비현실적인 인구 1억 명 목표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구 감소는 교도소의 풍경마저 바꾸고 있다. 형벌 제도는 교도소에 갇혀 지내면서 강제 노역을 하는 징역형과 노역을 하지 않는 금고형으로 나뉜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지난 3월 징역형과 금고형으로 나뉘어 있던 수감 제도를 구금형으로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의 형벌 제도가 바뀌는 것은 1908년 형법 제정 이후 114년 만에 처음이다.
구금형으로 통합되면 3년 후부터 일본의 모든 수감자들은 노역 대신 일종의 신체 재활 훈련을 받게 된다. 죄 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는 대신 재활 훈련을 시켜 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강제 노역을 시키기엔 수감자들이 너무 늙어 버렸다. 전체 수감자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1989년 2.1%에서 2020년 22.8%로 10배 높아졌다. 수감자 4명 가운데 1명이 고령자이다 보니 일반적인 노역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교정 당국은 하소연한다. 그래도 강제 노역을 시켜야 하니 궁여지책으로 고령 수감자들에게는 종이접기 같은 단순 작업을 시키는 실정이다.
반대로 금고형을 받은 수감자들은 노역 의무가 없다 보니 신체와 인지 능력이 급격히 쇠퇴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금고형 수감자 대부분이 자원해 단순 노역 작업을 하는 형편이다.
사람만 늙는 게 아니다. 일본의 국토와 인프라의 노후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의 2016~2020년 조사에서 전체 터널 가운데 36%, 교량의 9%, 도로표지와 조명 등 도로 부속물의 14%가 조기 보수 공사를 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2012년에는 야마나시현 주오고속도로의 사사고터널 일부가 무너져 9명이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인프라의 수명을 50년으로 본다. 2033년이면 일본 전역의 자동차용 교량 가운데 63%, 수문 등 하천 관리 시설의 62%, 터널의 42%가 수명에 다다른다. ‘도쿄의 뼈대’로 불리며 하루에 100만 대의 차량이 지나는 수도고속도로는 2040년 전체 구간의 65%가 50년 이상의 노후 도로가 된다. 문제는 예산과 인력 부족 때문에 보수 공사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8년 5조2000억 엔(약 51조7702억원)이었던 인프라 보수 비용이 2050년이면 연간 12조3000억 엔으로 2배 이상 늘어난다. 앞으로 30년간 보수 공사에 280조 엔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이 넘는 액수다. 네모토 유지 도요대 교수는 “시설이 노후화하는 속도를 보수 공사가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인프라 유지 체제가 붕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모든 게 늙어 가는 일본에서는 삼림마저 고령화에 신음하고 있다. 임야청에 따르면 일본의 인공림 면적의 절반이 수령 50년을 넘었다. 나무는 수령 30~40년일 때 가장 왕성하게 광합성을 하면서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한다.
삼림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2019년 일본의 삼림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양이 정점이었던 2014년보다 20% 줄었다. 2020년 일본의 온실가스 배출량 11억5000만 톤 가운데 3.5%에 달하는 4050만 톤을 삼림이 흡수했다. 삼림의 고령화로 인한 이산화탄소 흡수량 감소는 2050년 탈석탄 사회 실현을 목표로 내건 일본 정부의 또다른 고민거리다.
도쿄(일본)=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