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결국 여권 전체에 ‘핵폭탄’ 던진 ‘윤핵관’

권성동 세 번 헛발질에 장제원과 권력 갈등까지…尹 대통령·여당 지지율 추락 ‘1등 공신’

[홍영식의 정치판]

그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1등 공신들은 있기 마련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박정희 정권의 2인자는 김종필 전 총리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권위를 위협할 만한 2인자를 용인하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공신들끼리 견제시키며 충성 경쟁을 유도했다. 결국 공신 반란에 정권은 무너졌다. 전두환 정권에선 ‘3허(허삼수·허화평·허문도)’ 등이, 노태우 정권 때는 사조직 월계수회를 이끈 박철언 전 장관이 각각 실세 불렸다.

김영삼 정부 때는 ‘좌동영(김동영 전 정무 제1장관)-우형우(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가, 김대중 정부 때는 동교동계 중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실세 중 실세로 꼽혔다. 노무현 정권 탄생 1등 공신은 ‘좌희정(안희정 전 충남지사)-우광재(이광재 전 의원)’였던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핵관(핵심 관계자)’의 원조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다. 그는 민감한 현안 브리핑 때 익명을 요청하면서 그런 별칭을 얻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출마 전후부터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이 정치권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윤핵관’ 탄생의 발단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대통령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993년 수원지검에서 마주쳤다. 당시 윤 대통령은 검사 시보로 수원지검에 연수를 왔고 사시 6기 선배인 권 원내대표는 검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합창하듯 “어 강릉?”이라고 외쳤다. 윤 대통령은 어릴 때 방학만 되면 강릉 외갓집에 놀러갔고 외조모의 소개로 권 대행과 동갑내기 친구로 지낸 이후 이렇게 우연히 재회한 것이다.
대선 때 ‘무소불위’…의견 수렴 통로 막혀 위기 초래
이준석 대표 징계로 인한 당 지도체제 문제로 불화설이 불거졌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장제원 의원이 지난 7월 15일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나 대화하는 모습. 그러나 이후 두 사람은 대통령실 사적채용 문제를 놓고 갈등 구도를 연출했다. 김병언 한경 기자


그 뒤 두 사람은 인연을 이어 왔다. 익히 알려졌듯이 권 대행은 지난해 윤 대통령이 대선판에 나오는데 적극 역할을 했다. 지난해 3월 검찰총장직을 그만둔 윤 대통령이 5월 강릉을 방문해 권 원내대표와 만나 정치 입문을 논의하고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권 원내대표는 ‘원조 윤핵관’이란 타이틀을 얻게 됐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도 ‘윤핵관’의 한 축이다. 윤 대통령과 장 의원의 관계는 악연으로 시작됐다. 장 의원은 2018년 10월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윤 대통령의 장모를 둘러싼 의혹을 놓고 윤 대통령(당시 서울지검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국감이 끝난 뒤 윤 대통령이 장 의원을 찾아가 “장 의원님을 평소에 좋아했다. 소주 한잔하자”고 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한다. 검찰총장 시절 윤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를 놓고 여당의 집중적 공세를 받던 2019년 국감에서 장 의원은 “(이전에) 쓴소리도 많이 했고 전투력도 활활 타올랐는데 오늘 서초동(대검찰청)으로 오면서 ‘총장님 얼마나 힘들까’ 짠한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장 의원은 이후 권 원내대표와 함께 윤 대통령이 대선판에 뛰어드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장 의원은 윤 대통령과 라면을 같이 먹는 사이로까지 친밀해졌고 윤석열 대선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윤 대통령은 장 의원에 대해 “제가 정치에 처음 발을 들여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저를 가르쳐 주고 이끌어 줘 우리 국민의힘의 대선후보가 될 수 있도록 해줬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아들 문제로 실장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안철수 후보 측과 대선 후보 단일화 작업을 장 의원에게 맡기면서 실세임이 증명됐다.

권 원내대표와 장 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형님, 아우 하면서 궁합을 맞췄다. 여기에 더해 이철규 의원과 홍준표계였다가 말을 갈아 탄 윤한홍 의원까지 가세하면서 지난 대선 때 ‘윤핵관’은 말 그대로 ‘무소불위’가 됐다. 힘이 커지면 부작용을 낳는 법. 대선 전략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 수렴 통로가 막혔다는 불만들이 많았다. 사사건건 이준석 대표와 충돌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대표가 대선 선대위원장에서 사퇴한 것도 ‘윤핵관’들의 ‘대표 패싱’ 등 견제 때문이었다.

선대위가 당의 공조직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윤 후보 측근 그룹에 의해 ‘농단’되고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불만이었다. 윤 대통령(당시 대선 후보) 측 조수진 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장이 이 대표에게 대든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다 보니 윤 대통령의 처가 의혹 등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툭하면 당무를 보이콧하고 지방으로 내려간 이 대표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윤핵관’들의 독주가 선거 전략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대선 승리 뒤 권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에 무난하게 당선됐고 장 의원은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날개를 달았다. 공신들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사고를 치기 마련인가. 특히 권 원내대표가 그랬다. 그는 7월 8일 이준석 대표가 징계를 받은 뒤 당내 많은 반대에도 지도 체제를 원내대표 대행으로 밀어붙여 스스로 대표 대행과 원내대표를 겸하는 막강한 지위를 가졌다.

지난 4월 말 당내 의견 수렴도 없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에 덜컥 합의하는 ‘독주’를 했다가 반발이 커지자 합의를 번복하고 사과했다. 더욱 논란이 컸던 것은 자신의 지역구인 강릉시 선거관리위원의 아들이 대통령실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밝혀진 데 대해 “대통령실에 압력을 가했다. 7급에 넣어줄 줄 알았더니 9급에 넣었더라. 최저임금을 받고 서울에서 어떻게 사냐. 강릉 촌놈이”라는 등의 발언은 공정과 상식을 추구한다는 윤석열 정부에 치명상을 안겼다. 그는 또 한 번 사과했지만 이미 여론은 돌아섰다.
권성동, 세 번 사과 불구 등 돌리는 민심 막지 못해

윤 대통령과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공개는 여권 전체에 큰 치명상을 안겼다. 윤 대통령이 징계를 받은 이 대표를 겨냥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당이) 달라졌습니다”라는 내용이 알려진 것이다. “당무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내부 총질’이란 거친 표현을 써가며 당권 싸움에 개입하는 듯한 윤 대통령의 처신도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더 한심한 것은 권 원내대표가 국회 대정부 질문이 한창인 시간에 휴대전화로 ‘문자질’하다가 들통났다는 사실이다.

대표 대행 겸 원내대표로서 대정부 질문 전략을 지휘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그가 총리와 장관들이 야당 의원들에게 매를 맞는 시간에 엉뚱한 일을 한 것이다. 그는 90도로 숙여 세 번째 사과를 했지만 당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대표 대행을 내려놓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시켰다. 이 사태는 대통령 지지율 20%대로 추락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한 몸으로 뭉친 공신들도 대업을 이룬 뒤에는 잿밥을 놓고 다투기 마련인가. 형, 아우 하던 권 원내대표와 장 의원은 권 원내대표의 ‘7급 공무원 압력’ 발언에 대해 “말씀이 무척 거칠다”고 정면 비판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두 사람은 이미 지도 체제 문제를 두고 충돌한 바 있다. 장 의원은 ‘민들레’ 모임 결성을 주도하면서 세력 확산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고 물러선 바 있다.

결국 ‘윤핵관’의 헛발질과 충돌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을 끌어내리는 핵폭탄 역할을 했다. 힘이 한쪽으로 너무 쏠리면 줄서기, 눈치 보기, 의사 소통 과정과 의견 수렴 과정의 배타성으로 인한 조직 무기력, 소외된 반대파들의 거센 공격으로 인한 극심한 내홍 등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지금 여권이 바로 그런 꼴이다. 이쯤 되면 ‘윤핵관’은 2선 후퇴를 선언하는 게 ‘주군’을 도와주는 길일 것이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및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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