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우영우’에서 찾은 한국 콘텐츠의 성공 비밀[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섬세하고 정교한 ‘감정의 세분화’…한국 시청자 만족이 모두의 만족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넷플릭스가 한국 드라마로 또 한 번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오징어 게임’에 이은 성공을 거둘지도 모른다.”

미국 매체 CNN비즈니스는 7월 20일(현지 시간) 이렇게 보도했다. 기사의 제목은 ‘제2의 오징어 게임?’이었다. 지난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오징어 게임’의 열기가 아직 채 가시지도 않았다. 이 상황에서 CNN이 또 다른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인기를 예상한 것. 처음엔 ‘정말 가능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기사가 지목한 작품의 제목을 보고 금세 고개가 끄덕여졌다. 채널 ENA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 얘기였다.

이 드라마는 이미 한국 드라마 시장을 뒤집어 놓았다. 올해 최고 성공작이자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CNN의 기대처럼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3위까지 올라섰다. 주간 시청 시간으로는 2395만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비영어권 작품 1위를 기록했다. 한국 콘텐츠 가운데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니라 단순 방영작이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영우’가 방영되기 전 작품의 성공을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채널 이름이 생소한 것은 물론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이야기라는 소재는 낯설었다. 하지만 회차가 거듭되며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매료되고 열광했다.

‘우영우’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섬세한 시선이다. 사회적으로도 민감한 주제인 장애와 차별을 다루는 만큼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접근한다. 이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관점과 문제도 조심스럽게, 정교하게 담아낸다.

이 섬세함은 한국 드라마만의 강점인 ‘감정의 세분화’와 연결된다. 미국과 영국 등 콘텐츠 강국은 엄청난 스케일, 극도의 긴장감, 반전 등을 내세운 장르물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어 왔다. 하지만 쏟아지는 장르물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꼈다.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도 역부족이었다. 히어로가 나오든, 빌런이 나오든 그들만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 시청자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 드라마는 이 틈을 파고들었다. 다른 나라 콘텐츠와 달리 한국 작품에선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웃고 있지만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어렴풋이 희망의 실루엣이 느껴진다. 선과 악의 구분도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착하기만 한 캔디도, 나쁘기만 한 빌런도 없다. 빌런처럼 보인 인물이라도 평소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오히려 공감하게 되기도 한다. 이 같은 감정의 세분화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드라마와 현실, 캐릭터와 개별 시청자의 간극을 최소화해 극도의 감정 이입을 이끌어 낸다.

한국 드라마는 이런 특기를 발휘해 해외 장르물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하고 재탄생시키도 한다. K-콘텐츠 열풍을 이끄는 하나의 중심축이 된 좀비물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킹덤’과 ‘지금 우리 학교는’은 ‘K-좀비물’이란 용어까지 만들어 낼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들은 해외에서 보던 좀비물과는 확연히 달랐다. ‘킹덤’은 좀비물에 사극을 접목해 참신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10대와 학교라는 소재를 더해 세대와 공간의 확장을 이뤄냈다.

단순히 새로운 요소를 결합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물이란 장르적 특성을 최대한 부각하면서도 그 안에 10대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깊이 있게 녹여 냈다. 학교 폭력과 진로 등에 대한 고민과 갈등, 그럼에도 함께 의지하고 다독이며 나누는 우정과 사랑의 감정이다. 동시에 경찰·군인·정치인 등 사회에 존재하는 각계 각층의 이해 관계와 첨예한 갈등도 심도 깊게 다뤘다. 이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펼쳐 보이며 새로운 좀비물의 탄생과 발전 가능성을 알렸다.
해외에서 봐도 ‘내 이야기’
감정의 세분화는 한국 드라마가 보편성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비단 드라마에 국한되지 않는다. 드라마와 영화를 불문하고 한국 콘텐츠를 본 해외 현지인 다수는 ‘내 이야기’라고 느낀다.

이는 한국의 특수한 사정과도 연결된다. 한국은 지난 100년간 다이내믹한 경험을 했다. 계속되는 침입과 전쟁, 극한의 가난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에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고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그 압축된 경험은 다양한 감성을 함께 쌓아 줬다. 뼈를 깎는 듯한 인고의 시간 그리고 다시 일어서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과 가능성도 보았다. 이토록 복잡 미묘한 양가적인 감정은 한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도, 오스카를 제패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윤여정 배우의 ‘미나리’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오늘날에도 고통과 희망은 우리 안에 함께 흐르고 있다. 최근엔 경기 침체와 전염병 확산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닥칠지 예측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지난한 시간을 또다시 묵묵히 견디며 한 발씩 나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한국의 콘텐츠는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경유하며 카메라에 최대한 정교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또한 먹고살기 급급하고 앞만 보고 가느라 놓쳤던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도 시작했다. ‘우영우’는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 어떻게 이를 풀어가고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성찰이 함께 녹아 있다.

그렇다면 한국 콘텐츠는 어떻게 탁월한 심리 전달 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 한류 열풍에 주목하는 여러 나라에서도 이 질문을 던지며 연구하고 있다. 한국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 과정 등을 면밀히 조사하고 각종 다큐멘터리를 만들 정도다.

핵심 비결 가운데 하나로 콘텐츠 시장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시청자들을 꼽을 수 있다. 창작자들에게 한류 열풍의 비결을 물어도 어김없이 시청자들의 힘을 꼽을 정도다.

한국인들의 K-콘텐츠에 대한 애정은 유별나다. 자국 드라마뿐만 아니라 자국 영화를 이토록 열심히 보는 국민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툭하면 인구의 4분의 1이 보는 1000만 영화가 등장하니 말이다.

양적 팽창은 질적 변화로 이어진다. 콘텐츠를 많이 접한 한국인들의 눈높이는 엄청나게 높아졌다. 아무리 제작비를 많이 들여도, 시각적으로 화려해도 쉽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스타 배우, 인기 작가가 총출동해도 마찬가지다. 스토리가 빈약하고 PPL을 남발하는 순간 차갑게 돌아서 버린다.

‘우영우’가 호평을 받은 이유 중 하나도 PPL을 남발하지 않고 스토리텔링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가 지상파에서 방영됐다면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김밥집과 샌드위치 가게 등이 등장했을 것이라는 말까지 한다. 이런 시청자들 앞에서 창작진은 더욱 조심스럽고 겸허한 태도로 작품을 만들게 된다. 최근엔 할리우드 영화사들도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을 잇달아 결정하고 있다. 한국을 ‘테스트베드(시험 공간)’로 여기고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먼저 살펴 글로벌 시장의 흥행 여부를 예측하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드라마 '킹덤'
왈츠를 추듯 글로벌 ‘회전문’을 통과하다
제품을 만들고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는 일도 물론 어렵다. 하지만 콘텐츠를 만들어 해외에 파는 것엔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문화와 일상 자체가 국경을 넘어 확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각국의 문화가 녹아든 현지 콘텐츠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문화를 판매한 경험을 가진 나라가 극히 드문 이유다. 프랑스의 문화 비평가 기 소르망도 “상품과 문화를 동시에 수출해 본 나라는 미국·프랑스·독일·일본·한국뿐”이라고 했다.

문화 영역에서 글로벌 시장은 ‘우영우’에 나오는 크고 빠른 ‘회전문’에 비유할 수 있다. 걸음을 맞춰 잘 통과하고 나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회전문과 같이 너무도 빨리 트렌드가 바뀌었고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막강한 자본력과 인력·네트워크를 가진 글로벌 콘텐츠 기업만이 그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마침내 영우처럼 길을 찾아냈다. ‘쿵짝짝’하고 우리만의 박자를 만들어 높은 장벽처럼 느껴졌던 회전문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달라질 것 같다.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을 내세운 콘텐츠들로 글로벌 회전문을 우리만의 왈츠 무대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김희경 한국경제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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