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어젠다의 실종, 과거와 싸우느라 미래를 잃어버리는 정부
입력 2022-08-06 07:33:53
수정 2022-08-06 07:33:53
[EDITOR's LETTER]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10년 안에 달에 갈 것이고 다른 일들도 할 것입니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1962년 9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라이스대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연설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시작은 위기감이었습니다. 1957년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성공합니다.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불립니다. 미국은 충격에 빠집니다. 하지만 곧 반격에 나섭니다. 1961년 대통령에 취임한 케네디는 ‘문(Moon) 프로젝트’를 준비합니다. ‘아폴로 프로젝트’로 이름 붙여진 사업이었습니다. “달에 가겠다”는 어젠다는 세상을 미국을 움직였습니다. 젊은 과학자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아폴로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겠다고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NASA 직원뿐만 아니라 보잉 등 주요 군사·항공 기업의 엔지니어들도 아폴로 프로젝트에 인생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250억 달러가 들어간 이 프로젝트는 케네디가 암살된 1963년 이후에도 10년간 지속됩니다. 결국 인간을 달에 착륙시킵니다. 미국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성과를 올립니다. 냉전 체제에서 자유주의 종주국의 위상을 회복했습니다. 우주 개척이라는 인류의 새로운 가능성도 열었습니다. 이때 사용된 로켓·궤도 계산·통신·도킹 등 우주 기술은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 아폴로 11호가 가져온 돌과 흙은 달 연구의 기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리더의 어젠다는 그런 것입니다. 국가 또는 기업이 미래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분명히 가리킵니다. 국민들의 열정을 자극하고 사회의 자원을 그쪽으로 배분합니다.
전략 전문가들은 각국 최고 정치 지도자의 어젠다를 전략의 정점에 있다고 말합니다. 좋은 전략은 세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 이를 해결할 구체적 방안, 마지막은 지속적 실행입니다. 소련에 뒤처진 우주 경쟁이라는 문제, 이를 단번에 극복하는 방안으로서의 달 착륙 그리고 10년 넘게 지속된 아폴로호 발사란 면에서 케네디의 우주 프로젝트는 성공한 전략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각국의 리더들은 이런 어젠다를 제시하고 이끌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역사가 좋게 기록하고 실패했어도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이런 어젠다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정체성은 그 원천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2006년 대통령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부인 미셸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반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냈습니다. 12월 어느 날 미셸과 마주 앉아 말했습니다. “나 대통령에 출마해야겠어.” 한국에서는 창업하거나 정치를 하겠다면 “이혼해”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을 것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미셸은 인내하며 말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 대통령의 자식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 봐”라고 간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어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거지?” 오바마는 잠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내가 대통령 선서를 하는 순간 수많은 다른 피부색을 가진 미국인들이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할 거야.”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만으로도 미국 사회에서 유색 인종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이어 갔습니다. “세상이 바뀌는 날이 될 거야. 내가 선서를 하는 순간 전 세계가 미국을 다시 보게 될 거야.” 흑인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격이 있는 나라,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아메리칸 드림’이 이뤄지는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란 얘기였습니다. 미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왜’라는 질문에 오바마는 답했습니다. 그리고 집권 기간에는 미국인들이 가장 고통받고 있는 의료보험 문제, 오바마 케어를 자신의 어젠다로 삼고 밀고 나갔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국가 지도자들의 어젠다를 다뤘습니다. 출범한 지 3개월도 안 된 현 정부의 낮은 지지율에 주목했습니다. 많은 요인 중 ‘어젠다의 실종’을 다루는 것은 경제 언론의 임무라고 판단했습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도 “어젠다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잘 살아보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계화’, 대통령 후보는 안 됐지만 손학규 씨의 ‘저녁이 있는 삶’이란 어젠다는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깝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균형 발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창조 경제론’, 급전직하하던 지지율을 반등시킨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녹색 성장’,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등도 성과 여부를 떠나 당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고자 했던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왜 이번 정부에서는 어젠다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정권 교체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도 윤석열 대통령은 정권 교체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정권 교체가 수단이자 목표였던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겠지요. 어젠다 실종은 단순한 지지율 문제가 아니라 5년간 한국 사회가 어디로 달려가야 하는지 방향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미래를 보여 달라는 국민들에게 과거와 싸우는 모습으로는 지지율 회복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10년 안에 달에 갈 것이고 다른 일들도 할 것입니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1962년 9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라이스대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연설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시작은 위기감이었습니다. 1957년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성공합니다.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불립니다. 미국은 충격에 빠집니다. 하지만 곧 반격에 나섭니다. 1961년 대통령에 취임한 케네디는 ‘문(Moon) 프로젝트’를 준비합니다. ‘아폴로 프로젝트’로 이름 붙여진 사업이었습니다. “달에 가겠다”는 어젠다는 세상을 미국을 움직였습니다. 젊은 과학자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아폴로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겠다고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NASA 직원뿐만 아니라 보잉 등 주요 군사·항공 기업의 엔지니어들도 아폴로 프로젝트에 인생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250억 달러가 들어간 이 프로젝트는 케네디가 암살된 1963년 이후에도 10년간 지속됩니다. 결국 인간을 달에 착륙시킵니다. 미국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성과를 올립니다. 냉전 체제에서 자유주의 종주국의 위상을 회복했습니다. 우주 개척이라는 인류의 새로운 가능성도 열었습니다. 이때 사용된 로켓·궤도 계산·통신·도킹 등 우주 기술은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 아폴로 11호가 가져온 돌과 흙은 달 연구의 기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리더의 어젠다는 그런 것입니다. 국가 또는 기업이 미래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분명히 가리킵니다. 국민들의 열정을 자극하고 사회의 자원을 그쪽으로 배분합니다.
전략 전문가들은 각국 최고 정치 지도자의 어젠다를 전략의 정점에 있다고 말합니다. 좋은 전략은 세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 이를 해결할 구체적 방안, 마지막은 지속적 실행입니다. 소련에 뒤처진 우주 경쟁이라는 문제, 이를 단번에 극복하는 방안으로서의 달 착륙 그리고 10년 넘게 지속된 아폴로호 발사란 면에서 케네디의 우주 프로젝트는 성공한 전략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각국의 리더들은 이런 어젠다를 제시하고 이끌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역사가 좋게 기록하고 실패했어도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이런 어젠다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정체성은 그 원천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2006년 대통령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부인 미셸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반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냈습니다. 12월 어느 날 미셸과 마주 앉아 말했습니다. “나 대통령에 출마해야겠어.” 한국에서는 창업하거나 정치를 하겠다면 “이혼해”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을 것 같은 장면이었습니다. 미셸은 인내하며 말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 대통령의 자식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 봐”라고 간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어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거지?” 오바마는 잠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내가 대통령 선서를 하는 순간 수많은 다른 피부색을 가진 미국인들이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할 거야.”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만으로도 미국 사회에서 유색 인종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이어 갔습니다. “세상이 바뀌는 날이 될 거야. 내가 선서를 하는 순간 전 세계가 미국을 다시 보게 될 거야.” 흑인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격이 있는 나라,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아메리칸 드림’이 이뤄지는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란 얘기였습니다. 미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왜’라는 질문에 오바마는 답했습니다. 그리고 집권 기간에는 미국인들이 가장 고통받고 있는 의료보험 문제, 오바마 케어를 자신의 어젠다로 삼고 밀고 나갔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국가 지도자들의 어젠다를 다뤘습니다. 출범한 지 3개월도 안 된 현 정부의 낮은 지지율에 주목했습니다. 많은 요인 중 ‘어젠다의 실종’을 다루는 것은 경제 언론의 임무라고 판단했습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도 “어젠다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잘 살아보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계화’, 대통령 후보는 안 됐지만 손학규 씨의 ‘저녁이 있는 삶’이란 어젠다는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깝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균형 발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창조 경제론’, 급전직하하던 지지율을 반등시킨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녹색 성장’,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등도 성과 여부를 떠나 당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고자 했던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왜 이번 정부에서는 어젠다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정권 교체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도 윤석열 대통령은 정권 교체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정권 교체가 수단이자 목표였던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겠지요. 어젠다 실종은 단순한 지지율 문제가 아니라 5년간 한국 사회가 어디로 달려가야 하는지 방향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미래를 보여 달라는 국민들에게 과거와 싸우는 모습으로는 지지율 회복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