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이재명의 화법…‘가십화’와 ‘안면몰수’ [홍영식의 정치판]

디코이·간장 한 사발·나즈굴과 골룸·三姓家奴…국기 문란·무당 나라·침탈 루트·수박

[홍영식의 정치판]


정치인의 말은 곧 경쟁력이다. 복잡한 상황을 아주 조리있게 한두 단어로 잘 정리해 대중의 뇌리 속에 각인시킬 수 있는 능력은 큰 정치인의 기본 조건이다. 우리 정치판은 어떨까.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같이 어려움에 처한 국민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데 이런 능력을 발휘하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될까. 불행하게도 아니다. ‘옳지, 잘 걸려들었다’는 듯 날이 서고 조롱 섞인 말들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면서 정치를 가십화하기 일쑤다. 포연만 가득할 뿐 진지한 토론과 진중하고 무게 있는 말들은 찾기 힘들다.

예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대표직에서 강제 퇴출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부터 돌아보자. 그는 당 대표 시절 대표가 아니라 정치 평론가 같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수시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낸다. 이견이 있고 할 말이 있으면 상대와 마주 앉아 토론을 통해 타협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당연하고도 일반적인 모습이어야 한다. 물론 의사소통 수단이 다양화된 요즘 시대에 매번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6월 당 대표가 된 이후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SNS 등을 활용, 외곽에서 포를 때리는 형식을 취해 왔다.

자극적인 단어로 상대를 비아냥거리는 것들이 적지 않다. 젊은 당 대표의 톡톡 튀는 감각적 언어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감정적인 단어 몇 개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당 대표로서 바람직한 태도인지에 대해선 의문 부호가 따라다닌다. 자신이 이끈 당을 외곽에서 조롱 섞인 말로 때려 정치를 희화화·가십화한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그는 지난 6월 페이스북에 “디코이(decoy : 유인용 미끼)를 안 물었더니 드디어 직접 쏘기 시작하네요. 다음 주 내내 ‘간장 한 사발’ 할 거 같다”고 썼다. 정적 장제원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이게 대통령을 도와주는 정당이냐”고 자신을 공격한데 대한 반박이었다. ‘간장 한 사발’ 단어는 단골 메뉴였다. 장 의원의 성을 딴 조롱성 메시지다. 또 ‘간철수(간보는 안철수 의원)’와 장 의원을 묶어 공격한 단어이기도 하다. 인격 모독적 요소도 다분하다.
개소리·싸가지·나쁜 술수 등 온갖 험한 말 주고받아

그는 정진석 의원과 ‘개소리’, ‘싸가지’, ‘나쁜 술수’ 등 온갖 험한 말들을 뱉어 내며 싸움하면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보낸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당이) 달라졌습니다’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공개되자 그 스스로 권력 다툼의 희생양으로 삼을 반전의 기회를 잡은 듯했다. 윤 대통령과 권 원내대표 등 ‘윤핵관’을 겨냥해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양두구육’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의힘 지도부를 향해 ‘저자들’로 칭하며 “당권 탐욕에 제정신 못 차리는 나즈굴과 골룸(탐욕적인 ‘반지의 제왕’ 캐릭터)”이라고 비하했다.

윤핵관을 향해선 ‘삼성가노(三姓家奴)’라고 조롱했다. 윤 대통령은 그를 향해 ‘내부 총질’한다고 했는데, 그는 외곽을 돌며 당을 향해 ‘내부 총질’하는 데 열을 올린 것이다. 그의 정치 감각과 언변은 잘만 활용한다면 큰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이렇게 온통 정적을 공격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 스스로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재명 의원의 말은 현란하다. 불리할 것 같으면 갈라치기에 남 탓, 언론 탓으로 돌리고 발뺌하고 ‘침소봉대’라며 역공하기 일쑤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강심장’ 또는 ‘안면 몰수’ 화법이다. 예컨대 이 의원이 성남시장 시절 설계했다는 대장동 개발 의혹을 두고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했다. 대장동 의혹 관련 인물들이 대부분 이 의원과 엮여 있는 사람들인데 반복적으로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하면서 상황을 반전시켜려고 했다.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 1처장이 지난해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이 의원은 성남시장 시절 그와 11일간 호주·뉴질랜드 출장까지 같이 다녀왔고 함께 찍은 사진들이 공개됐는데도 “(김문기와 출장 간 사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의원 부인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으로 조사 받다 숨진 A 씨에 대해선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을 특정인에게 엮지 않나. 무당의 나라가 됐다”라고 했다. 하지만 A 씨는 대선 경선 캠프 기간 급여를 받으며 운전사로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의원 측은 A 씨는 김 씨가 탄 차량의 선행 차량 운전사였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한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 수사에 대해 “대놓고 정치에 개입하겠다는 것”이라며 “심각한 국기 문란”이라고 한 것도 ‘안면 몰수’ 화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의원은 성남 대장동·백현동 개발 비리와 성남FC 후원금 불법 모금, 변호사비 대납,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분당 수내동 옆집 선거 사무실 설치 등 의혹에 대해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정부 때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미뤄 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구체적 정황 증거들과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국기 문란’을 거론하며 피해자임을 부각하고 있다.

특히 부인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일부 수사에 대해 경찰이 8·28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완료하겠다고 하자 이 의원은 “대놓고 정치 개입을 한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 말 자체가 대표 출마를 ‘방패막이’로 삼으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의원이 기소되더라도 대표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한다’는 내용의 당헌 80조 개정 추진에 대해선 검찰권 남용으로 여당과 정부의 ‘야당 침탈 루트’가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정당화했다.
전형적인 갈라치기 전략에 피해자 이미지 부각

그가 “고학력·고소득자 등 소위 부자라고 하는 분들은 우리(더불어민주당) 지지자가 더 많다. 저학력에 저소득층이 국힘(국민의힘) 지지가 많다. 안타까운 현실인데, 언론 환경 때문에 그렇다”고 한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다. 저학력·저소득층은 언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쉽게 휘둘린다는 뜻으로 들려 이들에 대한 인격 모독이 아닐 수 없다. 계급 배반 투표를 한다는 것인데, 전형적인 편 가르기 전략이다. 이 의원의 주된 지지 연령층인 40대는 활발하게 소득을 올리는 연령대이고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주력 지지층인 60대 이상은 은퇴해 소득이 적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의원의 주장은 어폐가 있다.

그는 플랫폼을 만들어 욕하고 싶은 의원을 비난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가 거센 비판이 일자 “재미있으라고 과장한 게 문제가 됐다”고 했다. 건전한 비판과 당 발전 방안 건의 등을 위한 플랫폼이라면 환영할 일이지만 누가 욕을 많이 먹는지 점검하겠다고 하면 의원들은 팬덤 확보 경쟁에 나서게 되고 이는 자칫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고 포퓰리즘과 중우정치를 낳을 수 있다. 이 주장 자체도 문제이지만 아니면 말고식 무책임한 발언은 더 문제다. 이 의원을 비판했다가 자칫 ‘수박(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으로 찍힐까봐 두려워하는 지경이 된 게 지금 민주당의 모습이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및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