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매각설’ 휩싸인 왓챠, 쉽지 않았던 ‘다윗’의 도전

프리 IPO 실패로 향후 계획 모두 ‘올스톱’…경쟁OTT 및 유니콘기업 인수 후보로 거론

[비즈니스 포커스]

OTT 왓챠의 메인 화면. (사진=한국경제신문)


토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왓챠’의 매각설이 끊이지 않는다. 왓챠와 인수 후보들 모두 일단은 손사래를 치지만 시장에서는 매각 외에 대안을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왓챠를 인수할 후보자들로는 경쟁 OTT인 웨이브와 쿠팡플레이, 콘텐츠 기업 리디 등이 거론된다. 인수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OTT 시장의 성장세가 한풀 꺾인 시점에서 왓챠가 과연 원하는 만큼의 ‘몸값’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정점 찍고 내려오는 OTT 시장은 ‘변수’ 왓챠의 매각설이 불거진 것은 7월 말이다.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왓챠가 게임업계 등에 인수·합병(M&A)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설은 올해 들어 왓챠에서 프로듀서(PD) 등 콘텐츠 제작 인력이 잇따라 퇴사하면서 구체화됐다. 왓챠를 떠난 인력만 해도 전체 200여 명 중 두 자릿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왓챠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108만 명으로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OTT 중 7위다. 모바일인덱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6월 기준 넷플릭스가 1117만 명으로 1위를 기록했고 웨이브 423만 명, 티빙 401만 명, 쿠팡플레이 373만 명으로 뒤를 이었다. 사실상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OTT 중에서 왓챠의 가입자 수는 가장 적은 편으로 분류된다.

가입자 수를 늘리는 것은 OTT의 수익과 직결된다. 하지만 한국 OTT 시장의 사용자 수는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주요 OTT의 월 사용자 수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왓챠 이용자도 올해 1월 129만 명에서 6월 108만 명으로 꾸준히 줄어들었다. 전반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OTT 산업이 크게 성장한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한몫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OTT 이용자 수가 크게 늘었다. 2019년 이후 한국 지상파는 물론 정보기술(IT) 기업 등이 너도나도 OTT에 뛰어들었다.

‘붐’을 타고 설립된 다른 OTT보다 왓챠의 행보는 한 발 더 빨랐다. ‘공대 출신’의 게임 개발자였던 박태훈 왓챠 대표는 ‘개인의 취향 찾기’에서 창업 아이템을 찾았고 2012년 사람들이 재미있게 본 영화를 서로 추천하고 영화에 대해 토론하는 ‘왓챠 피디아’를 론칭했다. 다만 왓챠 피디아는 영화 마니아들에게 적합한 플랫폼이었다. 박 대표는 보다 대중적인 서비스를 위해 2016년 OTT 플랫폼 ‘왓챠 플레이’를 선보였다.

초창기 왓챠가 입소문을 탄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왓챠 피디아를 시작으로 확보한 6억5000만 건에 달하는 이용자들의 평점 데이터다. 왓챠는 이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해 줬고 추천 콘텐츠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자신의 취향을 ‘저격’한 콘텐츠들을 선보인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둘째는 방대한 영화 콘텐츠다. 한국에서 쉽게 보기 힘든 외국 영화나 예술 영화, 독립 영화를 입점시키면서 왓챠는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 박 대표를 비롯한 왓챠 관계자들 역시 ‘영화 발굴’에 적극적이었다. 2019년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표는 “외국 영화 중에서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수익을 내기 어려운 작품’에 주목하고 있다”며 왓챠가 ‘온라인 영화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충성도 높은 유저들을 보유하던 왓챠는 2019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거대한 경쟁자들을 만나게 된다.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 등이 한국에 들어오고 CJ ENM의 ‘티빙’, 지상파 3사와 SK텔레콤이 손잡은 ‘웨이브’, KT의 시즌, 쿠팡플레이 등이 연이어 서비스에 나섰다. OTT 시장은 포화 상태가 됐다.

‘마니아층’ 사로잡은 콘텐츠, 장점이자 단점 다양한 작품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왓챠의 강점은 뚜렷했다. ‘설마 이 작품이 있을까’ 하며 검색해 보면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왓챠다. 아시아권 영화와 드라마에 특화됐다는 장점도 있다. 이 때문에 왓챠의 매각설이 불거지면서 한때 ‘왓챠 지지마’라는 해시태그가 소셜 미디어에 등장하기도 했다.

유저들이 OTT를 구독하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볼 만한 콘텐츠’가 있으면 된다. 특히 특정 OTT에서만 볼 수 있는 독점 콘텐츠는 가입자 수를 늘리는 ‘정공법’이다.

왓챠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였다. 최고의 히트작으로 꼽히는 것은 웹드라마 ‘시멘틱 에러’다. 동명의 웹소설을 바탕으로 드라마화한 이 작품은 2월 16일 처음 공개된 후 왓챠 내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소셜 미디어 트위터에서는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110만 번 이상 언급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은 남성 간 멜로를 다룬 BL 장르로, 드라마화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높은 싱크로율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드라마 인기도 급격히 상승했다. ‘시멘틱 에러’의 성공 이후 연이은 BL 콘텐츠의 제작 소식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파급력에서는 물음표가 여전히 붙는다. 우선 ‘시멘틱 에러’는 BL 장르로, 다양한 시청자층을 포섭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장르라는 평을 듣는다. 장르의 ‘벽’이 있다 보니 특정 유저층에게는 높은 인기를 누릴 수 있지만 확장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투자금에서도 타사에 규모가 한참 밀린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세계 각국의 오리지널 작품 투자에 올해만 170억 달러(약 22조2428억원)를 쓸 것으로 추정된다. CJ ENM과 티빙도 OTT 콘텐츠에 2023년까지 4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웨이브는 지난해에만 2200억원을 투자했다. 설립 11년 차를 맞은 왓챠는 올해 2월 기준으로 누적 투자액 590억원을 기록했다.

초창기 왓챠는 ‘독점 공개’를 통해 해외에서 호평 받은 드라마를 한국에 공급했다. BBC의 ‘킬링이브’, HBO의 ‘체르노빌’이 왓챠를 통해 한국 관객들과 처음 만난 작품이다. 하지만 OTT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독점 공개 콘텐츠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시장에 들어오면서 디즈니 작품이 다른 OTT에서 모두 빠졌다. 여기에 HBO맥스와 파라마운트+가 한국에 들어오는 대신 웨이브·티빙과 독점 제휴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앞으로 공급할 수 있는 해외 콘텐츠 숫자가 더욱 줄어들었다.

3년 전 박 대표는 “미디어는 승자 독식의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 시장으로, 좋은 콘텐츠만 있으면 시청자들은 기꺼이 여러 미디어를 동시에 시청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플랫폼이 유저를 독식하기보다 여러 OTT를 번갈아 사용하는 소비자층이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었다.

이러한 박 대표의 예상은 절반은 틀리고 절반은 맞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최근 이용자들은 OTT 중 2~3개를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는 일정 기간 ‘절독’하는 식으로 구매 패턴을 바꾸고 있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시청자들은 여러 미디어를 동시에 시청하지만 3개 이상으로 늘리지는 않았다. 결국 왓챠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러 OTT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야 하는 것인데, 그 문턱을 넘는 게 쉽지 않았다.

올해 2월만 해도 기자 간담회에서 왓챠는 웹툰과 음악으로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왓챠 2.0’ 계획안을 발표하며 의지를 다졌다. 일본에 이어 글로벌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기업공개(IPO)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복수의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프리 IPO는 실패로 돌아갔다. 상장 전 투자 유치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왓챠 2.0’ 계획은 한없이 미뤄진 상태다.

왓챠와 인수 후보자들은 매각과 인수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왓챠를 둘러싼 매각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왓챠가 매력적인 플랫폼이지만 자금력에는 의문 부호가 붙기 때문이다. 지난해 왓챠는 매출 708억원, 영업 손실 248억원을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회수를 원하는 상황이다. ‘다윗’ 왓챠가 앞으로도 독자 노선을 걸을지, 매각이라는 선택지를 택할지는 ‘숫자’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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