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가진 본질적 가치 정확히 알아야…비기술 인력의 전문성 포용도 필요
[경영 전략]디지털은 아날로그에 대치되는 신호 방식에서 출발해 이제는 사회 전반의 생활 양식 자체가 됐다. 디지털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시대의 모습은 계속 바뀌고 있다. 웹은 정보 제공 단계에서 참여와 공유의 플랫폼 단계로 진화했고 어느덧 블록체인,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등의 기술에 기반해 탈중앙화와 투명성을 기치로 하는 웹3.0으로 접어들고 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디지털 키오스크가 등장하나 싶더니 지금은 마트, 프랜차이즈 매장 등에서 흔하게 만나게 되고 영화관은 무인화됐다.
이런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는 젊은 세대도, 전문가도 벅차다. 서점에 들러보면 디지털 트렌드를 쫓아가며 지식 격차를 좁히려는 수요가 쉽게 눈에 들어온다. 인공지능(AI)을 봐도 일반 독자를 겨냥한 책, 비즈니스 실무자에게 맞춘 책, 전문 기술 서적 등으로 세분화됐다.
최근엔 NFT와 메타버스 관련 서적들이 눈에 많이 띈다. 기술 전문가인 정보기술(IT) 엔지니어, 데이터 엔지니어라도 새로운 개발 언어, 개발 환경, AI 알고리즘을 부단히 배워야 하는 세상이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디지털 전환이 화두이지만 이를 추진할 디지털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IT·데이터 기술 인력들은 귀한 몸이 됐다. 하지만 디지털이 기술 자체를 넘어 사회적 현상이고 새로운 시장과 공간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므로 기술 인력을 채용하고 비기술 인력(영업·운영·재무 등)에게 기술 교육을 해도 디지털 기술 역량 차이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디지털 기술 확보와 인력 채용, 솔루션 구입 등을 하기에 앞서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해 비즈니스 성과로 실현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내부 역량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임직원 각자가 디지털을 ‘어떤 기술인지’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주는지’로 명확히 인식해 본질적 가치가 오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기술 인력과 비기술 인력의 개별적인 전문성을 조직 차원에서 결합해 실제 성과가 일어나도록 하는 관리적 역량을 내재화해야 한다.
팬데믹 이후 가속화되는 디지털 전환2016년 알파고 쇼크 이후로 많은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추진됐고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을 거치며 가속화됐다.
‘ABCD(AI·블록체인·클라우드·빅데이터)’로 대표되는 기술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들의 성장,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에 크게 일조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전통 기업의 현장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과정이 쉽지 않고 투자한 비용에 비해 실제적인 비즈니스 성과를 달성했는지 의문이 생기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왜 그럴까.
전통 기업들은 이미 현장에 세부적으로 조율되고 안정화된 기술과 프로세스가 정착돼 있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당위성에 압도돼 ABCD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도입을 진행하면 맞지 않는 옷을 입게 될 수 있다.
먼저 이들 기술이 왜 중요한지, 어떤 이유로 트랜스포메이션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인지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클라우드도, 기업의 자체 데이터센터도 하드웨어·소프트웨어·네트워크로 구성된다는 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클라우드는 IT를 소유하지 않고 구독한다는 새로운 관점이다. ‘구독’이 갖는 가치를 우리 기업과 조직에 흡수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를 장기간 개발하는 대신 최신 품질의 소프트웨어를 바로 사용할 수 있고 하드웨어를 필요한 만큼만 빌릴 수 있고 전문 인력을 스스로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테스트할 때 초기부터 대규모 IT 투자를 하지 않고도 빠르게 시작할 수 있고 기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만약 현행 비즈니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미션이 우선인 핵심 업무 시스템에 무리하게 적용하며 비용 절감만을 목표로 한다면 구독의 가치와는 거리가 생길 수 있다.
AI 비서를 도입할 때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자동화된 채널을 하나 더 추가하고 내부 인력을 대체하겠다는 관점보다 우리 회사는 24시간 동안 고객을 묵묵히 기다리면서 고객이 부르면 바로 돕기 위해 AI를 활용한다는 접근일 때 본말이 전도되지 않을 것이다.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 Robotics Process Automation)’는 직원들이 귀찮고 지루한 일을 하는 대신에 신나는 일,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주는 보조자로 인식될 때 조직에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스며들 것이다.
숫자로 된 정형적인 데이터뿐만 아니라 음성(전화 녹음)·이미지·텍스트 등의 비정형 데이터를 저장하고 분석하는 기술이 이미 보편화됐고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기술의 제약으로 들여다보기 어렵고 대량으로 계산할 수 없었을 뿐 고객이 기업에 전하고 싶은 말은 이미 그 속에 담겨 있었다.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첨단의 시스템이 없어도 최고경영진은 언제든 고객의 전화 녹음을 들어볼 수 있다. 빅데이터를 저장하고 분석하는 기술을 도입하더라도 고객이 남긴 데이터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노력은 긴 여정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프로젝트 관리자 양성에도 힘써야디지털 기술이 주는 가치를 이해했다고 해도 실제로 기업 현장에서 구현해 성과를 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기술은 가능성을 제공할 뿐 고유한 비즈니스에서 기회를 발굴해 기술을 써먹게 하는 것은 조직 구성원의 역할이다.
기업들은 디지털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조직 구성원에게 신기술 트렌드 교육, 데이터 분석 교육, 디지털 기업 사례 교육 등을 시행하고 있다. 비기술 인력은 기술 용어를 이해하고 기술 인력과 수월하게 대화하면서 기술 인력의 도움 없이도 데이터를 자유롭게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이미 익숙한 업무에 몰두한 상태에서는 혁신적인 생각을 하기 어렵고 동기 부여도 쉽지 않다. 기술 인력도 기술 지식을 연마하기에도 바쁘다.
기업은 비즈니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동시에 수많은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혁신해 가는 유기체다. 프로젝트는 일상의 반복 업무에서 유지해야 하는 핵심성과지표(KPI)와 달리 특정한 목표 결과물을 얻기 위해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가시화해 손에 만져지는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현장이다.
특히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에서는 기존의 업무 방식에 파괴적인 균열을 내고 새로운 지점을 찾아가기 위해 전사의 다양한 부서로부터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경합하고 조정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때가 디지털 역량을 개별 기술, 지식이 아닌 전사 차원의 변화 역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기회다.
이런 화학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개별적인 전문성을 통합하는 관리의 영역이다. 예를 들어 제품 담당자, 프로세스 분석가, 디자이너, AI 모델러, 데이터 엔지니어, IT 엔지니어가 필요한 프로젝트에서 특정 전문가는 외부에서 조달할 수 있지만 일하는 방식을 조직하고 협업을 통한 시너지를 체득하게 해 내부 DNA로 변환하는 것은 잘 설계되고 효과적인 프로젝트 관리를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특정 기술이나 업무 전문성을 확보하는 노력에 비해 프로젝트 관리자의 양성은 소홀한 경향이 있다. 정형화된 업무, 기술을 적용하는 프로젝트는 비즈니스 책임자와 기술 책임자의 역할이 비교적 나눠지지만 테크 기업이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되는 시대가 되면서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는 기술과 비기술의 경계가 모호해져 프로젝트 관리자는 비즈니스·기술을 모두 이해하고 실체적 결과를 만들어 내고 현장에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막중한 자리가 됐다.
외부에서 적합한 인력을 구할 수가 없고 내부에서도 준비된 인력을 찾기가 어렵다. 전통 기업들은 디지털 네이티브해지고 싶어한다. 하지만 기술 자체가 우리를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시켜 주지 않고 전문 기술 인력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경영진과 조직 구성원이 디지털 기술이 내포한 본질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전제돼야 하고 기술이 계속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유연하게 변화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프로젝트 관리 역량을 내재화해야 한다.
이용수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