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주호영 국민의힘 비대위, ‘웰빙’ 체질부터 바꿔라

침몰 직전인데 절박감 실종…‘잿밥 다툼’에 품격 사라지고 집권당 정책적 뒷받침도 못해

홍영식의 정치판


정치권에 비상대책위원회 전성시대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주호영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도 비대위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원내 1·2·3당 모두 비대위 체제를 운영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희한한 광경이다.

비대위 가동은 정당이 정상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때 동원되는, 말 그대로 비상 수단이다. 그런데 원내 1·2·3당 모두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 것은 우리 정치가 얼마나 파행적이고 비상식적인지 여실히 말해 준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3월 대선에서 패배하자 윤호중·박지현 공동 위원장으로 한 비대위를 가동하다 6·1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하면서 우상호 비대위를 운영해 왔다. 8·28 전당대회에서 새 대표가 뽑히면 5개월 만에 정상 체제로 복귀한다. 정의당은 지방선거에서 패하자 여영국 대표가 물러나고 이은주 비대위를 구성했다.

국민의힘은 비대위 만능 정당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2010년 이후 12년 동안 모두 9차례 비대위를 꾸렸다. 김무성→정의화→박근혜→이완구→김희옥→인명진→김병준→김종인→주호영 비대위 체제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2016년 12월 이후 5년 8개월 동안 2년 반 정도 비대위 또는 권한 대행 체제였다. 비상이 일상이 된 형국이다.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지만 성공적으로 운영된 경우는 별로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당의 리더십에 구멍이 뚫렸고 체질이 허약할 대로 허약해졌다.
선거 3연승했는데 비대위 구성 ‘전무후무’한 일

더욱 희한한 것은 국민의힘이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3연승을 기록했는데도 비대위를 꾸렸다는 점이다. 보통 선거에 진 정당에서 비대위를 가동하는데 세 번의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구성한 것은 전례가 없다.

국민의힘은 이미 목도하고 있듯이 난파 직전에 몰려 있다. 배에 큰 구멍이 나 가라앉고 있는 데도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권력에 취해 서로 배의 주인이 되려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당은 침몰 일보 직전인데 유력 당권 주자들은 전당대회 시점을 놓고 유불리 계산에 따른 힘 겨루기에 열중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이긴 것도 문재인 정부 실정에 따른 반사 이익이 큰데 마치 자기들이 잘한 때문으로 보는 것 같다. 대선도 겨우 0.73%포인트 차로 신승했는데 압도적으로 이긴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윤핵관과 이준석 전 대표의 싸움박질은 1년 넘게 지겨울 정도로 봐 왔고 국민은 이제 제발 좀 그만하라고 경고 메시지를 보냈는데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당 대표 신분을 유지하고 있던 사람이 자기 당을 상대로 “끝까지 싸우겠다”며 소송전에 들어간 전대미문의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품격도, 진지함도 없다. 이 전 대표는 대통령과 그가 정적으로 삼은 윤핵관, 자기 당을 향해 “흑화(黑化)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엄포를 놓는가 하면 ‘디코이(decoy : 유인용 미끼)’, ‘간장 한 사발’, ‘나즈굴과 골룸’, ‘삼성가노(三姓家奴)’, ‘용피셜’ 등 온통 자극적인 조롱으로 정치를 가십화·희화화하고 있다.

물론 ‘윤핵관’들도 이런 조롱을 받아도 싸다는 지적을 받는 것을 보면 이들이 국민의힘에 끼친 해악도 크다. 그러나 아무리 성상납 의혹과 관련한 사법적 판단이 없는데도 징계부터 받으니 억울하다고 하더라도 대표가 친정을 향해 온갖 비수와 조롱으로 무차별 공격한 것은 우리 정당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 지도력의 위기”라고 했지만 그 자신도 지난 1년여간 대표를 하면서 어떤 비전도, 제대로 된 혁신의 아이콘도 보여주지 못했다. 보여준 것은 1년 내내 스스로 이름 지은 ‘윤핵관’ 등과 싸운 것밖에 없다. 이게 기대를 걸었던 젊은 보수 정치인의 민낯이다. 이 전 대표가 사생 결단을 외친 만큼 싸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싸움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주호영 위원장은 윤핵관과 친윤계 인사들을 2선으로 물려야 한다. 힘이 한쪽에 쏠리면 줄서기, 눈치 보기, 의사소통 과정과 의견 수렴 과정의 배타성으로 인한 조직 무기력, 소외된 반대파들의 거센 공격으로 인한 극심한 내홍 등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 전 대표가 반기를 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한 실마리를 윤핵관 2선 후퇴에서 찾아야 한다.

주호영 비대위 체제가 국민의힘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선 급선무로 해야 할 일은 웰빙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국민의힘 위기의 본질은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구심점 없이 모래알처럼 이리저리 흩어지고 웰빙 체질이 만성화된 데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주 위원장이 비대위를 꾸리는 데 애를 태운 사정을 보면 이게 집권 여당인가 싶다. 일부 초·재선 의원들은 비대위원 참여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신 차기 당권 주자에게 붙으려는 의원들은 줄을 섰다. 차기 대표와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관리가 비대위의 주요 임무다. 비대위에 참여하면 당권 주자를 돕지 못하게 된다. 차기 대표는 2024년 총선 공천권을 가지는 만큼 비대위원으로 참여하는 것보다 유력 당권 주자를 지원하는 게 정치적으로 더 얻을 게 많다고 본 것이다. 의원 총회보다 당권 주자 모임에 참석한 의원 숫자가 더 많은 게 국민의힘이 처한 현주소다. 당이야 어떻게 되든 나 하나만 살면 그만이다.

수해 복구 현장에서 김성원 의원의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는 망언도 그냥 나온 게 아니다. 평시라도 이런 유형의 발언은 제정신이라면 있을 수 없다. 더욱이 지금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 아닌가. 의식 속에 절박함·절실함이 없다는 방증이다. 이런 해이함은 비단 김 의원 만이 아니라 당내에 만연돼 있다는 게 문제다. 진흙탕 속에 쳐박혀 있는 당을 빼내려면 모두 손에 흙을 묻혀야 정상인데 아무도 그럴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미 무사안일함이 체질화돼 있다.
野, 툭하면 대통령 탄핵 주장해도 대응 한 번 안 해

집권 여당이라면 정권의 주요 정책을 뒷받침하고 내각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든든한 방어막이 돼 줘야 한다. 대통령과 당이 코너에 몰렸는데도 국민의힘은 뒤로 숨기 급급하다.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설치 문제만 해도 그렇다. 행안부가 사전 의견 수렴 등을 제대로 거치지 않는 등 사전 절차적으로 미흡한 부분은 비판 받을 만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민정수석실을 폐지하면서 경찰을 통제할 새 체제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총을 가진 조직이 단체 행동까지 하고 야당은 이상민 장관에게 뭇매를 가했지만 여당은 꿀 먹은 벙어리였다.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문제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토론 과정 없이 발표한 박순애 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두둔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은 나라 미래를 위해 적어도 공론화할 필요성과 가치가 있다는 견해도 많았다. 하지만 추진 과정의 미숙함이란 이유 하나로 박 전 부총리가 광야에 홀로 서서 야당과 여론의 뭇매를 맞을 동안 여당은 모두 팔짱만 끼고 있었다.

야당은 툭하면 대통령 탄핵, 국정 조사를 입에 올리는데 여당에선 누구 하나 나서 방어막이 돼 주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내분을 벌이더라도 대여 공세 땐 한몸이다. 야당은 미사일과 대포를 쏘는데 여당은 지휘관도 없이 소총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한심하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거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여당을 얕잡아 보고 여당의 내분에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 아닌가. 주호영 비대위가 이런 웰빙 체질을 벗기 위한 작업에 착수만 해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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