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직장인 마음의 병,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입력 2022-08-20 06:00:09
수정 2022-08-20 06:00:09
[EDITOR's LETTER]
“여기 필라테스 회원님 대부분이 이 건물에 있는 정신과에 다니더군요.”
지난 주 회의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한 기자가 필라테스 강사가 한 말을 전했습니다. 필라테스와 정신과 의원 동시 회원 가입이라!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궁금하면 숫자를 찾아보는 게 경제 기자의 속성입니다. 검색에 들어갔습니다. 우선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블라인드 애플리케이션. 검색어 ‘우울증’을 넣었습니다. 9685건의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다음은 스트레스. 9999+였습니다. 1만 건이 넘으면 숫자가 저렇게 표시됩니다. 이 밖에 정신과는 5114건이었고 마음의 병, 상사 스트레스, 공황장애 등의 제목을 단 글도 1000건이 넘었습니다.
다음은 공신력 있는 통계를 찾아볼 차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발표 자료가 최근 자료였습니다. 2017년 이후 5년간 우울증과 정신 불안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급증했습니다. 그중 10~30대의 증가율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상담 치료를 받거나 치료 받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과거 삼성에서 있었던 일도 생각났습니다. 몇 해 전 그룹은 임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진단을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일부 임원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진단을 피했습니다. 한 임원은 “취지는 좋지만 결과가 또라이로 나오면 앞으로 어떻게 되겠어”라고 했습니다. 중·장년층 다수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봐야겠지요.
병원에 가지 않고 스스로 치료(?)하며 버티고 있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직장인은 훨씬 많을 것이란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한경비즈니스가 직장인 마음의 병, 우울증과 정신 불안을 다루기로 한 과정입니다. 직원들의 정신 건강은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많은 기업들은 이를 무시합니다. 숫자로 표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업에서 직원들의 정서, 마음 관리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또 다른 배경입니다.
어느 대목에서인가 사내 정치와 기업 문화도 고개를 불쑥 내밉니다. 가정과 비교해 볼까요. 가족 중 한 명이 아프면 그 집 분위기는 가라앉습니다. 집안의 활력도 떨어집니다. 직장은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비슷하지만 나타나는 양상은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한 부서에서 누군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도 모른 체하기 일쑤입니다. 당사자는 하소연할 사람도 없습니다. 담당 부장 또는 임원은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오는 것을 피하고 싶어 무시합니다. 아픈 사람은 회사에 가는 일이 두렵기만 합니다. 출근길부터 불안이 엄습합니다. 출구는 퇴직 또는 이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산성이 높아질 리 없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동료의 아픔을 무시하고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직원은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다른 조직원들은 침묵을 택합니다. 아니면 사내 정치를 시작합니다. 조직이 정글이 되는 순간입니다.
누군가는 “경쟁 사회에서 당연한 일 아닌가요”라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들은 이런 반문을 반박합니다. 대표적인 게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입니다. 구글은 몇 년 전 가장 혁신적이고 생산적인 팀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혁신적인 팀은 최고의 과학자들로 이뤄진 팀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평범한 인재들로 이뤄진 팀이었습니다. 이 팀들의 특성은 평등·공감·감성 지능 등의 키워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서적 안전’이었다고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조직이 안전하다고 느끼면 뭐가 달라질까요. 조직이나 동료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면 구성원들은 외부 위험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고 큰 기회를 포착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다행스러운 분위기도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아픔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병원에 갑니다. 상담과 치료를 받습니다. 부끄러워 숨길 일이 아니라 그냥 다른 상처처럼 다룬다는 얘기입니다. 좋은 선택입니다. 위험을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불만과 스트레스는 심근경색 위험을 2.67배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흡연과 비슷하고 당뇨 고혈압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갑자기 한숨이 나옵니다. ‘스트레스도 많고 담배까지 피우는데 쩝.’
경영 구루로 불리는 톰 피터스가 최근 ‘탁월한 기업의 조건’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줄기차게 강조합니다. 그는 어떤 기자가 계속 사람을 강조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겠다고 합니다. “젠장 그것 말고 할 이야기가 뭐가 있겠소.” 그리고 말합니다. “비즈니스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 마지막도 사람 우선이어야 한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여기 필라테스 회원님 대부분이 이 건물에 있는 정신과에 다니더군요.”
지난 주 회의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한 기자가 필라테스 강사가 한 말을 전했습니다. 필라테스와 정신과 의원 동시 회원 가입이라!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궁금하면 숫자를 찾아보는 게 경제 기자의 속성입니다. 검색에 들어갔습니다. 우선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블라인드 애플리케이션. 검색어 ‘우울증’을 넣었습니다. 9685건의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다음은 스트레스. 9999+였습니다. 1만 건이 넘으면 숫자가 저렇게 표시됩니다. 이 밖에 정신과는 5114건이었고 마음의 병, 상사 스트레스, 공황장애 등의 제목을 단 글도 1000건이 넘었습니다.
다음은 공신력 있는 통계를 찾아볼 차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발표 자료가 최근 자료였습니다. 2017년 이후 5년간 우울증과 정신 불안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급증했습니다. 그중 10~30대의 증가율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상담 치료를 받거나 치료 받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과거 삼성에서 있었던 일도 생각났습니다. 몇 해 전 그룹은 임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진단을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일부 임원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진단을 피했습니다. 한 임원은 “취지는 좋지만 결과가 또라이로 나오면 앞으로 어떻게 되겠어”라고 했습니다. 중·장년층 다수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봐야겠지요.
병원에 가지 않고 스스로 치료(?)하며 버티고 있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직장인은 훨씬 많을 것이란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한경비즈니스가 직장인 마음의 병, 우울증과 정신 불안을 다루기로 한 과정입니다. 직원들의 정신 건강은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많은 기업들은 이를 무시합니다. 숫자로 표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업에서 직원들의 정서, 마음 관리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또 다른 배경입니다.
어느 대목에서인가 사내 정치와 기업 문화도 고개를 불쑥 내밉니다. 가정과 비교해 볼까요. 가족 중 한 명이 아프면 그 집 분위기는 가라앉습니다. 집안의 활력도 떨어집니다. 직장은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비슷하지만 나타나는 양상은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한 부서에서 누군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도 모른 체하기 일쑤입니다. 당사자는 하소연할 사람도 없습니다. 담당 부장 또는 임원은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오는 것을 피하고 싶어 무시합니다. 아픈 사람은 회사에 가는 일이 두렵기만 합니다. 출근길부터 불안이 엄습합니다. 출구는 퇴직 또는 이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산성이 높아질 리 없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동료의 아픔을 무시하고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직원은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다른 조직원들은 침묵을 택합니다. 아니면 사내 정치를 시작합니다. 조직이 정글이 되는 순간입니다.
누군가는 “경쟁 사회에서 당연한 일 아닌가요”라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들은 이런 반문을 반박합니다. 대표적인 게 구글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입니다. 구글은 몇 년 전 가장 혁신적이고 생산적인 팀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혁신적인 팀은 최고의 과학자들로 이뤄진 팀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평범한 인재들로 이뤄진 팀이었습니다. 이 팀들의 특성은 평등·공감·감성 지능 등의 키워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서적 안전’이었다고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조직이 안전하다고 느끼면 뭐가 달라질까요. 조직이나 동료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면 구성원들은 외부 위험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고 큰 기회를 포착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다행스러운 분위기도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아픔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병원에 갑니다. 상담과 치료를 받습니다. 부끄러워 숨길 일이 아니라 그냥 다른 상처처럼 다룬다는 얘기입니다. 좋은 선택입니다. 위험을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불만과 스트레스는 심근경색 위험을 2.67배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흡연과 비슷하고 당뇨 고혈압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갑자기 한숨이 나옵니다. ‘스트레스도 많고 담배까지 피우는데 쩝.’
경영 구루로 불리는 톰 피터스가 최근 ‘탁월한 기업의 조건’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줄기차게 강조합니다. 그는 어떤 기자가 계속 사람을 강조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겠다고 합니다. “젠장 그것 말고 할 이야기가 뭐가 있겠소.” 그리고 말합니다. “비즈니스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 마지막도 사람 우선이어야 한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