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세계관 전성시대

아이언맨, 토르 등을 만든 마블 코믹스는 MCU라는 마블의 세계관을 만들었고, 이는 세계관 유행의 시초가 되었다.


그야말로 세계관 전성시대다. 문화 콘텐츠는 말할 것도 없고 제품, 캐릭터 등 요즘 뜬다는 브랜드에는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세계관이 존재한다. 산업,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상을 넘어 하나의 신드롬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세계관. 그 세계는 왜 존재하고, 사람들은 허구의 가상 세계에 왜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문화 콘텐츠의 필수 조건, 세계관 형성하기
세계관은 독일어 벨탄샤우웅(세계에 관한 직관)에서 비롯한 철학 용어다. 영어로 월드 뷰(World View)로도 해석되는 이 말은 일반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통용된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가 1790년 출간한 자신의 책 <판단력 비판>에서 처음 거론했고, 이후 여러 철학자의 입을 거치며 ‘세상에 대한 성찰’이란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산업, 문화, 예술 등 분야를 막론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용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는 그리고 세계관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는 모두 철학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일까?

요즘 우리가 말하는 세계관은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칸트의 발언 이후 종교와 철학에서만 사용하던 ‘세계관’이라는 용어는 19세기를 거치면서 세계상이나 삶의 방식을 포괄하는 의미로 확대되었고, 20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서사’, ‘연속성 있는 배경 스토리’를 지닌, 의도적으로 조작한 허상의 세계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의미의 세계관이 형성된 데는 문화 콘텐츠가 큰 역할을 했다.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소설과 만화 및 드라마와 영화가 시리즈 형태로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통일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게 된 것. 여기에 가상현실 속에 만들어진, 이른바 ‘스토리가 있는 게임’까지 인기를 끌면서 각각의 서사가 있는 독창적 세계관은 문화 콘텐츠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세계관 유행의 포문을 연 문화 콘텐츠는 MCU다. 아이언맨, 토르 등 마블 히어로 캐릭터로 이루어진 MCU는 영화 제작사 마블 스튜디오가 만들어낸 마블의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 안의 영웅들은 각각 다른 세계에 살지만, 큰 그림에선 하나의 세계 안에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촘촘하게 짜인 서사로 구축된 마블 세계는 엄청난 몰입도를 만들어냈고, 수많은 마니아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무한한 세계는 지금도 끝없이 뻗어나가고 있다.
대중의 흥미와 함께 확장하는 세계관
세계관은 확장성을 바탕으로 한다. 물리적 한계가 없는 허구 공간 안에서 공간의 확장, 시간의 확장, 이야기의 확장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BTS는 &lt;화양연화&gt;, 등 주요 앨범 시리즈에서 BU라고 이르는 그들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세계관 속에서 점점 더 촘촘해지는 서사는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세계관이 산업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BTS가 만들어낸 세계관 BU(BTS Universe)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BTS는 <화양연화>, 등 주요 앨범 시리즈에서 BU라고 이르는 그들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멤버 각자의 본명을 딴 캐릭터들이 불우한 가정·질병·가난 등의 문제와 싸우며 성장의 아픔을 겪는다는 설정인데, 그중 한 캐릭터가 시간 여행을 통해 이들의 비극을 막으려 한다는 이야기가 세계관의 주요서사다. 그리고 이 세계관 속 이야기는 굿즈부터 웹툰, 소설,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활용된다.

세계관이라 하면 그 안의 모든 콘텐츠를 소화하고 해석해야 세계관 전반이 그려지기에 BTS의 팬클럽인 아미는 파편화된 콘텐츠를 퍼즐 조각 맞추듯이 끼워 맞추고 함께 토론한다. 그러는 과정을 거치며 BU 속 세상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팬덤은 더욱 열정적이며 견고해진다. 세계관은 하나의 거대한 집단 서사라 할 수 있다. 대중은 세계관 속 여러 콘텐츠 간의 관계성을 즐기고, 일명 힌트와도 같은 ‘떡밥’을 찾으면서 재미를 느끼고 열광한다. 그리고 이는 곧 아티스트나 브랜드, 기업의 세계관에 대한 대중의 충성도로 연결된다. 기업의 철학이 곧 세계관이자 브랜드
어느 날부터인가 문화 콘텐츠 안에서만 사용하던 세계관이라는 말을 브랜드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스토리텔링, 캐릭터 커뮤니케이션 등 기업이 브랜드 가치관을 녹여내기 위해 해온 다양한 마케팅 방법이 세계관이라는 틀 안에 담기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브랜드 가치관을 녹여내기 위해 해온 다양한 마케팅 방법이 세계관이라는 틀 안에 담기고 있다.


고유의 세계관으로 주목받고 있는 브랜드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빙그레다. 빙그레는 빙그레 왕국의 후계자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라는 가상 캐릭터를 개발하고 빙그레 왕국이라는 세계관을 만들었다. 이후 빙그레의 공식 인스타그램은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가 SNS 계정을 운영하는 콘셉트를 유지하는데, SNS 속 그는 빙그레 대표 제품으로 의상과 소품을 스타일링하고, 왕국의 주변인으로 분한 여러 빙그레 상품을 소개하며 서사를 쌓아가고 있다.

B급 웃음 코드를 장착한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의 탄생은 MZ세대를 중심으로 폭발적 팬덤을 만들어냈고, 이 캐릭터의 등장 이후 빙그레 공식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4개월간 4만 명 이상이 늘었다.

빙그레의 성공 이후 브랜드들은 세계관을 구성할 때 캐릭터를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다. 써브웨이는 “넵넵”만 말하는 워커홀릭카도 등 총 일곱 가지 ‘카도(써브웨이 자사 캐릭터)’가 사는 써브웨이의 세계관 ‘썹시티’를 만들었고, 롯데월드는 올해로 입사 32년 차가 된 직장인 ‘로티롯데월드의 캐릭터’의 세상을 구현해냈다. 브랜드의 세계관 속에서 탄생한 캐릭터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32년 동안 늘 웃으며 우리를 맞이하던 로티도, “넵넵”만 말하는 직장인 워커홀릭카도도 사회생활에서 고단함을 느끼는 우리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것. 공감을 이끌어내는 서사는 이것이 가상 세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현존하는 것처럼 소비자로 하여금 그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다.

브랜드가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방법은 캐릭터 말고도 다양하다. 스타벅스는 로고에서 ‘커피’라는 단어를 빼며 카페가 아닌 ‘제3의 공간’을 지향하는 스타벅스만의 세계관을 드러냈고, 미국의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의류 기업임에도 환경을 위해 옷을 사지말라는 광고를 제작하는 등 ‘튼튼하고 오래 입는 옷을 만들어 버려지는 옷을 최소화하자’는 자신들만의 철학을 세계관에 담았다.
메타버스와 세계관의 만남
최근 SM엔터테인먼트는 세계관을 접목한 메타버스 버전의 팬 커뮤니티 ‘광야 클럽’을 오픈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브랜드가 표현하는 세계관의 모습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와 그림으로만 만든 세계관이 아닌, 메타버스 같은 실제 가상공간에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SM엔터테인먼트는 최근 메타버스 브랜드 ‘광야(Kwangya)’의 첫 번째 서비스인 팬 커뮤니티 ‘광야 클럽(Kwangya Club)’을 오픈했다. 광야는 SM엔터테인먼트의 세계관 ‘SMCU(SM Culture Universe)’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최근 NCT드림, 에스파 등 SM 소속 그룹의 노래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 용어다. SM엔터테인먼트는 세계관을 메타버스 안으로 가져와 팬들이 본격적으로 ‘덕질’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것이다.

세계관 마케팅에서 주 타깃은 MZ세대다. SNS 활용과 게임을 쉽게 다루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MZ세대는 세계관을 기반으로 기획한 가상과 현실의 룰에 익숙하고, 그 간극 역시 충분히 즐기며 넘나들 수 있는 세대다.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등 가상현실 게임과 그 밖에 다양한 메타버스 세상을 경험하는 세대인 만큼 메타버스 안에 만들어진 다양한 세계관도 어렵지않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세계관 역시 한때의 트렌드로 흘러갈 수도 있다. 그러나 한때의 트렌드로 여기기에는 세계관이 너무나 깊은 사회·경제·과학 · 기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BU 속에 등장하는 나약한 인물들이 어려움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서사를 통해 얻는 공감과 연대, 양자역학 이론에 기반한 마블 시리즈물 <닥터 스트레인저>의 다중 우주 세계관 등은 세계관이 흘러가는 한때의 트렌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그렇다고 너무 세계관에 빠져드는 것은 곤란하다. 무엇이든 균형은 필요한 법이니까. 앞으로 세계관은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까? 흥미로운 변화를 즐기는 마음으로 지켜보자.

글. 신형덕(홍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

정혜영 기자 hy541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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