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주인들이 직접 말하는 동네 서점의 마력

책 향한 '덕심'으로 과감한 창업 결정...스페인 전문 서점부터 독립서적 모아둔 곳까지 '각양각색'

[스페셜 리포트]

대형 서점들도 존폐를 걱정하는 시점에서 과감하게 동네 서점의 문을 연 이들이 있다. 책을 향한 ‘덕심’으로 과감히 창업을 결정했다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과연 지금의 동네 서점들은 잘되고 있을까. 이제 막 문을 연 책방부터 4년 차를 넘긴 책방까지 서울 도심 곳곳에 자리 잡은 책방 대표들을 만나 봤다.

마포구의 독립서점 '독서관'.(사진=독서관)
마포구 독서관
“독립 출판물의 ‘도서관’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
‘독서관’이 자리 잡은 홍대의 골목길은 번화가를 찾은 젊은이들부터 오랫동안 이곳에 거주한 마포 주민들이 혼재하는 곳이다. 오래된 빌라와 인스타그램에서 본 듯한 가게들이 공존하는 골목길 속에서 ‘독서관’이 5개월 전 문을 열었다.

전세환 독서관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이 일어나기 전에 소셜 살롱 모임에 나갔다가 독립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기록을 남긴다는 느낌이 좋아 독립 출판 작가로 활동해 볼까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이 생각이 서점을 차리자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독립 출판에서 출발한 창업이기 때문에 주로 취급하는 책도 독립 출판물이다. 독립 출판물이라면 별도의 기준 없이 입고하고 있다. “‘독서관’의 문을 열면서 지향했던 부분은 독립 출판물로 이뤄진 도서관 같은 공간을 만드는 거예요. 독립 서점과 도서관의 중간 지점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이름도 ‘독서관’이라고 지었죠.”

'독서관'에서는 다양한 독서 모임도 운영하고 있다.(사진=독서관)


전 대표는 책을 대여해 줌으로써 타 서점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기존 독립 서점들은 확보한 책의 수가 워낙 적다 보니 훼손을 우려해 대여는 잘 시도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대여’ 시스템은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5개월간 매장을 운영해 보니 대여가 많이 된 책일수록 잘 팔리는 경향이 뚜렷했다. 대여가 구매를 이끄는 셈이다.

2030세대가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독서관을 찾는 마포 토박이들도 다수다. 40대부터 50대까지 중년층을 포함해 어린이 책을 빌려 가는 가족 고객도 많다는 후문이다. 홍대에 놀러온 젊은이들은 물론 직장인들의 방문도 잦다.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5개월 차 초보 사장은 아직은 큐레이션을 한정 짓지 않았다. 전 대표는 우선 도서관처럼 책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두고 더 많이 쌓였을 때 큐레이션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틀을 규정 짓지는 않았지만 ‘수익화’를 고민하는 것은 자영업자의 숙명이다. “운영 시간은 7시 30분까지인데 그 이후에는 글쓰기 모임이나 독서 모임을 하고 있어요. 애초에 서점만 해서는 수익을 올릴 수 없어요.” 독립 서점들은 대부분 오프라인 모임 등 부가 가치 수익을 고려해야 한다. 독서관도 일단 더 많은 회원을 모집하는 것을 목표로 지금 공간에서 여러 가지를 테스트해 보고 있다.

전 대표는 출판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춰 독립 출판이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는 것을 꿈꾸고 있다. “마포구 근처에 중고등학교들이 많아 학생들도 자주 와요. 학교들과 제휴해 ‘일기장 출판 프로젝트’라고 자신의 일기장을 직접 출판해 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해요. 학생들이 가볍게 출판을 경험해 본다면 출판에 대한 관심이 생길 것 같아요.”
충무로 스페인책방
“스페인에 갈 수 없다면 사는 곳을 스페인으로 만들면 되죠”
스페인과 중남미 관련 서적을 주로 취급하는 충무로의 '스페인 책방'.(사진=이명지 기자)


흔히 책방 창업자들 사이에서는 2년이 고비라는 말이 나온다. 1년은 열정으로 버티는 시기, 또 1년은 그간 확보한 자금으로 버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충무로 ‘스페인책방’은 4년 차를 넘겼다.

‘5층이지만 603호입니다.’ 3층 쯤 계단을 올랐을 때 이러한 푯말이 보였다. 문을 열자 어두운 건물과는 대조되는 환한 책방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걸린 스페인 국기와 책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줬다.

스페인책방의 에바(활동명) 대표는 독립 출판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을 시작으로 책방 사업에 뛰어들었다. 취미로 찍었던 사진을 묶은 사진집을 독립 출판물로 출간한 경험이 있다. 아주 ‘애독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책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다.

왜 스페인일까. 이러한 질문에 에바 대표는 “스페인에서 살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으니 사는 곳을 스페인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운명 같기도 한데 서점에서 건축가 가우디에 관한 책을 재밌게 읽었어요. 그러다가 스페인 여행을 가게 됐는데 직접 본 건물들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죠. 또 날씨도 유독 좋았어요. 스페인의 장점은 날씨에서 오는 생동감과 다채로움이라고 생각해요. 이베리아반도에서 다양한 민족들이 살았고 땅도 넓고…. 그러한 ‘다채로움’ 때문에 스페인에 푹 빠졌어요.”

스페인 책방은 다양한 스페인어 원서와 굿즈 등을 큐레이션했다.(사진=이명지 기자)


이렇게 탄생한 스페인책방은 이름처럼 스페인과 관련한 서적들이 주를 이룬다. 일단 스페인 또는 중남미와 관련된 책들이 다수다. 한글 책도 많고 스페인어 원서 책도 있다. 그 외에 책들은 대표가 그때그때 관심이 있는 책들을 들여놓는다. 에세이나 예술과 관련된 서적이 많고 독립 출판물도 있다. “테마 자체가 뚜렷하다 보니 스페인과 중남미 관련 책들은 꼭 입고하려고 해요. 굿즈도 스페인과 중남미와 관련한 것들이 많아요.”

이처럼 테마가 뚜렷하다 보니 스페인책방을 찾는 고객층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스페인을 비롯한 중남미 국가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 둘째는 작은 책방을 좋아하는 고객들이다. 주로 20대에서 40대 여성들이고 SNS에서 작은 책방들을 찾아 온다고 한다.

아무리 창업 4년 차를 넘겼어도 책만 팔아서는 수익을 유지하기 힘들다. “경제적인 게 가장 큰 고민이죠. 그래서 다양한 모임이나 대관에 문을 열어 두고 있어요. 인건비도 최소한으로 지출하기 위해 대표인 제가 모든 것을 챙기죠.” 스페인책방은 초창기에도 활발하게 모임을 열었고 코로나19 시기엔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모임을 시작했다. 북토크부터 드로잉, 책 만들기 창작 클래스 등 콘텐츠는 다양하다. 책방의 특색에 맞게 스페인 문화를 소개하는 모임, 하몽파티와 플라멩코 공연, 스페인 예술이나 여행 이야기 콘텐츠도 있다. 팟 캐스트도 운영 중이다. 이러한 콘텐츠 기획이나 섭외는 모두 대표의 손길을 거친다.
서촌 살롱텍스트북
“직장인에게 ‘친구’가 되는 공간 만들고 싶어”
서촌에 위치한 살롱텍스트북은 비즈니스맨을 위한 책방이다.(사진=이명지 기자)

참여정부의 춘추관장,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유민영 플랫폼 9와 4분의3 대표가 최근 책방 경영에 도전장을 냈다. 지난 10개월간 시범 운영으로 대관 사업을 하다가 지난 7월부터 ‘살롱텍스트북’의 문을 열었다. 요새 한창 뜨는 서촌 한복판이다.

유 대표의 ‘주업’인 컨설팅과 헤드헌팅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하는 직종이다. 연구는 일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은 절대로 게을리해선 안 된다. 주업이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졌다. “컨설팅은 위기 관리나 정책 설계, 전략 기획, 최고경영자(CEO) 브랜딩이 주 업무인데 이런 책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이 있었으면 했어요. 또 헤드헌팅사를 운영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삶과 일의 전략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는 공간도 필요했죠.”

이제 막 개방한 살롱 텍스트북의 주 고객층은 비즈니스맨이다. 최근에는 광화문이나 서촌의 초가을을 느끼기 위해 방문하는 유동 인구들도 늘어났다.

살롱 텍스트북은 각 단어에 맞는 주제로 책을 큐레이션했다. ‘공부’ 코너에는 유 대표가 운영하는 컨설팅사와 헤드헌팅사 연구원들이 주 업무를 수행할 때 참고한 책들이 놓였다. 이 밖에 ‘인물’, ‘전략’, ‘습관’ 등 각 키워드에 어울리는 책들이 진열돼 있다. 특히 공을 들인 코너는 ‘인생’이다. 명사부터 비즈니스맨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인생 책’이 놓일 예정이다. “10월에는 ‘인생 서점’이라는 이벤트를 계획 중이에요. 명사들에게 자신의 인생 책들을 추천 받아 그 책들로만 공간을 꾸미는 것이죠. 이렇게 추천받은 책들을 ‘인생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콘텐츠화하려고 합니다.”

살롱텍스트북은 다양한 주제에 맞는 책들을 큐레이션했다.(사진=이명지 기자)


큐레이션 역시 회사의 전 직원들이 함께 상의해 참여했다. 사내에서는 별도로 텍스트북을 운영하는 팀을 꾸렸다. 새로운 규칙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재미가 있다고 유 대표는 말한다. 책방 상주 인력으로는 ‘요일 매니저’ 제도를 도입했다. 이들은 단순한 아르바이트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참여자들로, 서점에 관심이 많은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직업군도 다양하다.

유 대표는 약 10년 전부터 전 세계의 작은 서점들을 다니면서 보고 듣는 시간을 가졌다. 10년간 품었던 꿈을 ‘살롱 텍스트북’으로 현실화한 셈이다. “우리가 하는 비즈니스를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어요.” 유 대표는 책이 주는 힘이 크다고 확신한다. 이는 그간 대관 등 시범 사업을 하면서 증명됐다. 대관을 통해 살롱 텍스트북을 방문한 비즈니스맨들은 공간에 대해 ‘호평’한다. 곳곳에 놓인 책들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는 후기도 있었다.

가장 인기 있는 책들은 ‘위로’와 ‘우정’ 코너의 책들이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느꼈던 점은 요새 직장인들이 ‘친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하더군요. ‘살롱 텍스트북’이 이러한 니즈를 충족시켜 주는 공간이 됐으면 해요.”
당신은 왜 책방을 찾습니까 책방의 존재 이유는 결국 고객이다. 책방 주인들은 책을 사랑하는 것은 물론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없으면 이 업을 이어 갈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게 온라인으로 가능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책방을 찾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책방을 사랑하는 고객들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 에디터 조예원 씨는 책방의 매력에 대해 “주인의 취향이 반영돼 있는 다양한 특색을 가진 공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녁부터 밤까지 문을 여는 ‘야간 서점’과 혼자 앉아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은 서점, 술을 마시면서 책을 즐길 수 있는 곳 등 고객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서점들이 즐비하다. 조 씨는 “모든 게 온라인 세상 속에서 가능해진 요즘, 공간이 주는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게 독립 서점을 찾는 이유”라고 말한다.

연남동의 한 책방에서 만난 직장인 박유미 씨는 이제 막 독립 서점의 매력에 눈을 뜬 ‘초보 책방러’다. 주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정보를 얻는다는 박 씨는 추리 소설과 SF 소설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된 책방들을 투어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다만 박 씨는 “독립 서점들은 예상보다 보유한 책 종류가 많지 않고 SNS에서 본 것보다 공간도 작아 책을 편하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동네 책방을 사랑하는 고객들이 말하는 공통점은 자신과 취향이 맞는 책방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쾌감’이다. 평소 자신이 관심이 있었지만 찾지 못했던 책들이 서가에 꽂혀 있을 때 진정한 책방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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