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소송’ 10년 만에 일단락…정부, 약 2900억원 배상 판정 받아

정부, “피같은 세금 걸렸다…끝까지 다툴 것” 이의 제기 검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31일 오후 경기도 과천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대한민국 정부와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간 초유의 소송이 10년 만에 일단락됐다.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재판부는 미국 현지 시간 8월 30일 밤 8시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1650만 달러(약 2900억원)를 배상하라는 최종 판정을 내렸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요구한 46억7950만 달러(약 6조1000억원) 중 4.6%만 인정한 금액이다. 배상금 비율을 보면 ‘선방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법무부는 “대한민국 정부의 피같은 세금이 단 한 푼도 유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의 제기를 검토하기로 했다. 산업자본으로 은행 인수, "부실기업이라 승인" 정부와 론스타의 악연은 20년 전인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외환은행의 지분 51%를 1조3834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부채를 포함한 외환은행의 자산은 62조원대였어서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다. 외환은행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경영난에 시달려 자본 확충이 필요한 상태였다.

론스타는 1989년 미국 텍사스 주에서 설립된 부동산 투자 전문 사모펀드다. 론스타가 당시 외환은행을 인수하려고 하자 은행의 공익성을 해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며 잡음이 일었다. 자격 논란도 이어졌다. 론스타는 당시 일본에 골프장·예식장 등 산업 자본 계열 회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은행법에 따라 산업 자본은 한국 은행을 인수할 수 없었다.

이에 금융 당국은 외환은행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8% 밑으로 떨어져 부실이 예상된다며 은행법 시행령상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등 특별한 사유’를 인정해 론스타의 인수를 승인했다.

론스타는 와환은행이 어느 정도 정상화되자 다시 매각에 나섰다. 2006년 1월 재매각을 공식화한 뒤 이듬해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5조9000억원대의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과 관련한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외환은행 재매각을 승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2008년 매각이 무산됐고 론스타는 2012년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에 넘겼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로 거둔 매각 차익과 수익은 4조6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론스타는 막대한 수익을 거뒀음에도 2012년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의 방해 때문에 HSBC에 비싸게 팔 기회를 놓쳤고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하는 과정도 지연돼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이번 판정에서 중재판정부는 론스타와 하나은행 간 외환은행 매각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우리 금융 당국이 승인을 지연한 행위는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 보장 협정상 공정·공평 대우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또 다른 쟁점은 부당 과세 여부였다. 정부는 외환은행 매각 후 론스타가 이 거래를 통해 얻은 차익과 한국 부동산 등에 투자해 거둔 수익금 약 4조6000억원에 대해 세금 8500억원을 부과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거래 주체인 벨기에 법인은 한국·벨기에 이중 과세 방지 협정에 따른 면세 혜택을 받는데도 한국 정부가 부당한 조치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판정이 나온 당일 브리핑을 열고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할 당시 정부는 승인 심사 과정에서 국제 법규와 조약에 따라 차별 없이 공정하게 대응했다는 게 일관된 방침”이라며 “비록 론스타 청구액보다 많이 감액됐지만 정부는 이번 판정부 판정에 대해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재판정부 소수 의견은 론스타의 주가 조작 검찰 수사가 유죄로 확정되는 등 금융 당국의 승인 심사가 정당했고 론스타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한국 정부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소수 의견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배상액은 0원이다. 중재판정부 다수 의견에 따라 2 대 1로 론스타 청구액 중 약 2800억원, 4.6%만 인용됐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취소 신청 등 후속 절차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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