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꿈은 비주류의 특권…동네 서점의 꿈을 응원하며

[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스타벅스에는 진동벨이 없습니다. 번호와 이름을 부릅니다. 이는 브랜드의 시작 및 철학과 관련이 있습니다.

창업자 하워드 슐츠는 이탈리아 카페에서 미국과는 다른 풍경을 봤습니다.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려 주며 손님의 이름을 부르고 커피에 대해 설명하고 얘기하고 웃는 모습…. 휴먼 터치가 살아 있는 이 모델을 슐츠는 미국으로 가져갔습니다. 스타벅스의 시작이었습니다. 커피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 문화를 파는 기업이란 발상이었습니다. 진동벨을 쓰는 순간 기계가 사람을 대치하게 된다는 게 그들의 생각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습니다. 스타벅스 바리스타와 대화는커녕 줄 서서 커피 한잔 마시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철학이고 뭐고 진동벨을 주는 게 고객을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일까. 스타벅스나 커피빈 등에 앉아 있을 때와 집 근처 커피집에 앉아 있을 때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대형 커피 전문점에서는 진짜 혼자입니다. 노트북을 두고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신경이 쓰입니다. 하지만 동네 커피집에서는 왠지 주변과 가까운 느낌이 듭니다. 단골이 되면 커피에 과자도 한두 개 얹어 줍니다. 스타벅스 단골이라는 것은 애플리케이션이 알지만 동네 커피집 단골손님은 주인이 아는 차이랄까.

서점도 비슷합니다. 교보문고에 뻔질나게 가도 기계만이 알 뿐입니다. 동네 책방은 자주 가면 누군가가 웃어주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래도 교보 등 대형 서점에 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말만 되면 광화문 교보문고는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책도 보고 쇼핑도 하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공간, 그곳을 연령대 구분없이 찾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이 잘 보이지 않을 때, 머리가 비어간다고 느낄 때 교보를 찾습니다.

그렇다면 책 몇 권 없는 동네 책방에는 왜 갈까요. 알 것도 같았지만 오래전 경험밖에 없어 베스트셀러였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란 책을 뒤적였습니다. 이혼하고 커피를 파는 서점을 낸 영주, 명문대를 나왔지만 취업을 못한 아르바이트생 민준, 로스팅 업체 대표, 단골손님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사는 얘기였습니다. 경영 서적을 읽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읽던 것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 공간은 어디일까’, ‘인생에 정답이 있을까’, ‘지금 자신을 소외시키며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 소설 속 인물들이 던진 생각의 파편들입니다.

동네 책방을 가는 사람들은 소설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위로를 받고 설명하기 힘든 안락함을 느끼겠구나 싶었습니다. 사람 냄새가 나 가능한 일이겠지요.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동네 책방을 다뤘습니다. 10년전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점점 늘어난 동네 책방. 다른 자영업처럼 생겼다 없어지는 게 다반사지만 연남동 거리를 걷다가 잇따라 만난 동네 책방은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이 책방들이 위로와 휴식, 충전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며 이번 호를 제작했습니다.

오래전 생각도 났습니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닐 때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독립 서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회과학 서점이 각 대학교 앞에 있었습니다. 서울대 그날이 오면, 연세대 오늘의 책, 고려대 장백서원, 성균관대 풀무질, 이화여대 다락방 등…. 이 서점들은 시대가 필요로 하는 비판적 사고의 근거지 역할도 했지만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기능도 있었습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서점 앞 게시판은 각종 약속을 적어 놓은 메모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근석아 5시까지 종로분식으로 와.” 뭐 이런 메모들이었습니다. 때로는 약속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동네 책방이 생긴 지 10년, 급속히 늘어난 지 약 6~7년쯤 됩니다. 이 책방들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한곳을 향해 달려가는 구심력 사회가 막을 내리고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는 원심력 사회로의 전환입니다. 직장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누군가는 자신의 취향을 담은 책방을 열고 직장과 일상에 지친 누군가는 그곳에 쭈뼛거리며 들어갑니다. 대화를 하고, 모임을 만들고, 취향을 공유하고, 지적 경험을 쌓아 갑니다. 공장에서 찍어 내고 사무실 조직도에 그려져 있는 관계가 아닌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꿈은 비주류의 특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각기 다른 사연이 있는 동네 책방의 꿈을 응원합니다. 가을 저녁 선선한 바람을 몸에 감고 동네 책방 한 군데 정도를 찾아가 볼까 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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