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대가 아니라 1대와 0.77대가 돼야 한다[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불합리한 선착순 아파트 주차장…사회적 낭비 피하려면 제도 정비 필요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얼마 전 흥미로운 기사가 보도됐다.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어떤 사람이 킥보드를 세워 놓고 그것을 옮기면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문을 써 붙인 것이다. 이 사람이 사는 아파트는 주차 공간이 가구당 1.77대나 되지만 업무 특성상 매일 늦게 귀가해 주차할 공간을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한 집당 자동차가 한 대씩이라면 주차 공간이 남겠지만 한 집당 두 대 이상 보유한 가구가 늘어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물론 기사와 같이 킥보드를 주차장에 세워 놓은 것은 극단적인 경우다. 하지만 이 사람의 주장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아파트를 취득했다는 것은 건물 전용 면적에 대한 대금만 지급한 것이 아니라 대지 지분, 더 나아가 본인 지분만큼의 공용 면적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어떤 아파트에 같은 평형의 100가구가 있다면 그 단지의 1%는 각 아파트 소유자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취지로 보면 킥보드의 주인은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파트 구입은 땅 소유권도 사는 것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주차장 공간은 재산이 아니라 이웃과 나눠 쓰는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면서 킥보드 주인과 같이 재산권을 주장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보면 주차장의 지분을 소유한 사람은 본인의 지분 내에서는 주차 공간을 언제든 이용할 당연한 권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빈 공간을 먼저 본 사람이 먼저 주차하는 선착순 방식이 아니라 본인의 주차 공간이 지정되는 전용 주차장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100가구가 사는 단지이고 주차 공간이 가구당 1.77대라고 하면 177대의 주차 공간이 있기 때문에 그 중 100대는 전용 주차 공간으로 할당하고 나머지 77대는 공유 주차 공간으로 할당해 방문객이나 자동차가 여러 대 있는 사람이 사용하게 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기사에 나온 킥보드 주인과 같이 늦게 귀가하는 사람도 주차 스트레스 없이 주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생뚱맞은 것이 아니라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보편화된 제도다. 미국에도 단독 주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가 있는데 주차 공간이 많지 않은 단지라면 이런 전용 주차장제를 실시하고 있다. 본인에게 할당된 지역에만 주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전용 주차장 제도를 도입하면 주차 시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크게 두 가지 장점이 더 있다.

첫째 장점은 전기 자동차 시대를 맞아 효율적인 충전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 자동차는 친환경 자동차다. 이에 따라 한국도 서울에서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의 신규 등록을 금지한다.

문제는 전기 자동차의 보급이 늘어날수록 충전 문제가 불거진다는 것이다. 전기 자동차는 충전 시간이 길고 충전소가 주유소만큼 흔하지 않기 때문에 충전을 가장 불편한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기존의 자동차를 주유소에서만 주유하던 것처럼) 전기 자동차 충전을 전용 충전소에서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 때문이지 충전은 전기 자동차의 또 다른 장점이다.

다시 말해 굳이 충전소까지 갈 필요없이 (집에서 휴대전화 충전하듯이) 전기 콘센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바로 충전할 수 있다. 문제는 단독 주택이 대부분인 선진국에서는 전용 차고가 있어 자기 집에서 충전하면 되지만 아파트가 대부분인 한국에서는 이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용 주차장 제도가 있는 다른 나라에서는 아파트에서도 충전이 가능하다. 본인의 전기 콘센트에서 충전하면 된다. 본인의 콘센트에서 해야 하는 이유는 전기 요금 문제도 있지만 본인이 원하는 시간만큼 자유롭게 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파트마다 전기차 충전 시설을 도입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자동차가 전기 자동차로 바뀌는 20년 후쯤에는 본인의 전용 공간에서 충전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전용 주차장 제도 도입으로 얻을 수 있는 둘째 장점은 주차 공간의 효율적 운영이다. 현재 아파트 주차장은 밤에 꽉 차 있다가 낮에 썰물처럼 차가 빠지면서 빈 공간이 남아돈다.
그런데 이 주차 공간을 비워 두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고 비효율적이다. 이 빈 공간을 주차 공간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대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공서나 큰 업무 시설 근처에 있는 아파트 단지는 오전 9시부터 (이미 출근했기에 남아도는 아파트 주차 공간을) 인근에 방문하는 사람에게 유료로 개방할 수 있다. 또는 역세권에 있는 아파트라면 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와 역세권 아파트 주차장의 빈 공간에 주차하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소실되는 많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남는 공간 활용으로 부수입 발생 가능
문제는 이렇게 하려면 아파트의 빈 공간을 유료로 빌려줄 수 있도록 관련 법이 개정돼야 하고 아파트 내부적으로도 전용 주차장 제도가 안착돼야 한다. 아파트의 빈 공간을 빌려주는 것에 대해 기존 아파트 주민이 반대하는 이유는 주차장이 혼잡해진다는 것이다. 다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마구 주차하게 되면 본인이 주차할 공간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용 주차장 제도가 확립되면 본인의 공간을 대여하겠다고 신청한 사람의 주차 공간만 개방되기 때문에 이런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아주 쉽게 생각하면 남는 주차 공간을 필요한 사람에게 월세를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존 단지는 전용 주차장 제도를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툼이 있고 전용 주차장 제도를 불편해 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로 분양하는 단지부터 점차 시행하는 것이 제도 안착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법과 관련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도 지하 주차장이 있는 단지와 그렇지 않은 단지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갈리듯이 앞으로는 전용 주차장이 있는 단지와 그렇지 않은 단지에 대한 실수요자의 선호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다.

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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