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손 꼭 잡은 현대차와 한국타이어

전기차 아이오닉6에 한국타이어 제품 공급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센터에도 협력 강화 예상

[비즈니스 포커스]

9월 7일 충남 태안에서 열린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개관식에서 관계자들이 오프닝 세리머니 후 박수치고 있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회장(왼쪽부터), 김태흠 충남도지사, 정의선 현대차그룹회장, 국민의힘 성일종 국회의원, 가세로 태안군수.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9월 7일 충남 태안의 한 행사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한국타이어 지주사) 회장이 참석했다. 그동안 소원한 것으로 알려졌던 양 사의 수장이 한자리에 모이며 관심은 더 높아졌다.

행사는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센터’ 개관식이다. 현대차·기아·제네시스 차량을 타고 최고 속도 시속 250km 이상을 질주할 수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센터가 태안에 문을 연 것이다. 이 센터는 현대차그룹과 한국타이어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한국타이어가 태안에 타이어 테스트 트랙 ‘한국테크노링 주행시험장’을 준공했고 그 안에 현대차그룹이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센터’를 마련했다.

9월 15일 정식 출시된 현대차의 신형 전기차 ‘아이오닉6’에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의 전기차 전용 제품이 탑재된다. 앞선 모델인 아이오닉5엔 글로벌 메이저 타이어 업체인 미쉐린의 제품을 달았지만 아이오닉6에는 국산 전기차 전용 타이어를 쓴 것이다.

최근 일련의 협력으로 그간 서먹서먹했던 현대차그룹과 한국타이어의 관계 변화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한국타이어는 지난 5월 조현범 회장으로의 승계를 완전히 마무리했다. 현대차그룹과의 관계 회복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차 타이어 시장에서 점점 제외
과거 현대차는 자동차에 반드시 들어가는 타이어를 일정 부분 한국타이어 제품을 쓰며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2015년을 기점으로 이상 기류가 감지됐고 2016년 한국타이어가 현대차그룹의 신차용 타이어(OE) 공급을 잇달아 놓쳤다.

현대차그룹의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는 2015년 말 플래그십 세단 EQ900(현 G90)을 출시했는데 타이어 공급 업체로 외국산 콘티넨탈을 낙점했다. 앞서 제네시스 1‧2세대 모델에 제품을 공급한 한국타이어로선 체면을 구긴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현대차가 출시한 친환경 전용차 아이오닉 하이브리드는 미쉐린 타이어를 OE로 택했다. 2000만원대의 저가 차량에도 고급 브랜드인 미쉐린 제품이 장착되면서 한국타이어에 비상등이 켜졌다. 당시 한국타이어는 궁여지책으로 수입차 업체들과 협력 관계를 강화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이후 상황은 더 악화됐다. 현대차그룹은 OE로 외국산 제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기아가 2020년 3월 출시한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쏘렌토에 독일 콘티넨탈 타이어를, 2019년 3월 내보인 8세대 쏘나타에 미국 굿이어, 이탈리아 피렐리, 프랑스 미쉐린을 썼다. 2018년 말 선보인 팰리세이드에도 미쉐린과 일본 브리지스톤 타이어를 낙점했다. 제네시스는 모든 차량에 미쉐린·콘티넨탈 등 외국산 타이어를 장착하고 있다.

3~4년 전부터 ‘후진하는 국산 타이어’, ‘국내 타이어 3사, 국산차업계 외면에 해외 판로 개척’ 등의 뉴스가 연일 올라온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현대차 고급화 전략과 한국타이어 신뢰 하락
현대차그룹과 한국타이어가 소원해진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현대차그룹이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고급화 전략을 펼치기 시작했다. 2015년 제네시스 브랜드를 독립 출범시킨 현대차그룹은 일부 고급차뿐만 아니라 다른 차종들도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수입 타이어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에서 타이어는 차량 맨 겉부분에 나타난다. 이 때문에 차 전체의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다음은 신뢰 문제다. 수입 타이어로 노선을 바꾼 현대차그룹의 결정은 2014년 발생한 한국타이어 품질 논란 문제가 영향을 줬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당시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출시했는데 타이어 편마모에 따른 진동·소음 문제가 발생해 4만3000대 규모의 리콜을 시행했다. 이때부터 한국타이어가 사실상 현대차와 기아의 OE 납품처에서 제외된 것이다.

여기에 2015년 한국타이어가 한앤컴퍼니와 공동으로 한라비스테온공조(현 한온시스템) 인수전에 참여했는데 이때부터 두 그룹의 거리가 확연히 멀어졌다. 당시 한국타이어는 미래 먹거리를 위해 몸집 부풀리기를 시도했다. 한국타이어가 한라비스테온을 인수해 부품업까지 영위하면 대형 부품사가 탄생하게 된다. 현대차에는 ‘슈퍼 을’이 나타나게 되는 셈이다. 한국타이어의 한라비스테온 인수가 달갑지 않았을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관계 개선 후 전기차 선점?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2020년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그룹 회장직에 올랐고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한국타이어는 2022년 조현범 회장 체제를 공식화했다.

또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한앤컴퍼니와 함께 한온시스템을 매각한다고 밝혔다. 한국타이어는 한앤컴퍼니가 최대 주주 지분을 매각할 때 이를 우선적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지만 이를 행사하는 대신 보유 지분을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타이어가 현대차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눈치를 봤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한온시스템의 매각전은 아직 진행 중이다.

여기에 한국타이어가 전기차 시장을 본격 공략하고 있다. 미래 차이기도 하고 이윤 측면에서도 전기차용 타이어가 일반 타이어보다 15~20% 정도 비싸다. 한국타이어는 전기차 시장 규모가 커지기 전부터 전용 타이어 개발에 집중해 왔다. 전기차는 탑재한 배터리 때문에 내연기관차보다 무거워 타이어가 쉽게 마모될 수 있기 때문에 내구성이 중요하다. 또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내기 때문에 마찰에도 쉽게 닳지 않는 힘이 필요하다.

한국타이어는 올해 전기차 전용 타이어 브랜 아이온(iON)을 한국에 출시하며 본격적인 영업에 나선다. 아이온은 프리미엄 전기차를 타깃으로 연구·개발된 교체용 타이어 브랜드다. 전기차의 낮은 회전 저항, 저소음, 고하중 지지, 빠른 응답성과 높은 토크 대응 같은 특성에도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도록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지난 5월 유럽 시장에서 먼저 출시돼 현지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글로벌 7개 브랜드의 전기차에 벤투스 S1 에보3 EV 등 신차용 타이어도 공급하고 있다. 포르쉐(타이칸), 폭스바겐(ID.3‧ID.4‧ID.4 GTX), BMW(i4), 아우디(e-트론 GT‧Q4 e-트론‧Q4 e-트론 스포트백), 테슬라(모델3‧모델Y), 니오(ES6‧EC6), 현대차(아이오닉6) 등이다.

현대차는 2025년부터 모든 신차를 전기차로 출시할 계획이다. 한국타이어가 현대차그룹과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고 한국 전기차 시장을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글로벌 타이어 시장은 미쉐린·브리지스톤·굿이어·콘티넨탈·일본 스미토모 등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매출 기준 7위다. 6위인 피렐리와 비슷하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국타이어는 3분기 매출액 2조609억원, 영업이익 1778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매출이 전년보다 12.65%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영업이익은 1.66%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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