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격전지 된 ‘20조’ 중고 시장

백화점 3사 모두 진출…포쉬마크 인수한 네이버도 한국 중고 거래 시장 눈독

[비즈니스 포커스]

현대백화점은 신촌점 4층 전체를 중고 제품 전문관인 ‘세컨드 부티크’로 꾸몄다. 사진=현대백화점 제공


“포쉬마크 플랫폼을 한국으로 진출시키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네이버 관계자)

네이버가 최근 인수한 포쉬마크의 한국 진출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중고 거래 시장을 둘러싼 기업들의 수 싸움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중고 거래 시장에는 이미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대기업들이 눈독을 들이고 직간접적으로 진출해 있다. 여기에 네이버까지 가세하면 중고 거래 시장을 둘러싼 대기업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네이버가 움직이기에 앞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유통 대기업들의 행보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네이버가 16억 달러(약 2조3441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포쉬마크는 독특한 형태의 개인 간 거래(C2C) 플랫폼이다. 인스타그램과 당근마켓을 결합한 듯 보이는 구조를 갖고 있다. 포쉬마크에서는 당근마켓처럼 지역별 게시물을 찾아 구매할 수 있다. 또 인스타그램처럼 특정 인플루언서나 셀러의 게시물을 보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아이템을 살 수 있도록 플랫폼을 구성했다. 포쉬마크의 유명 판매자는 ‘포셔(Posher)’라고 불리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런 특징을 앞세워 포쉬마크는 2011년 설립 이후 현재까지 북미에서 8000만 명 정도의 사용자를 확보하며 연간 거래액 18억 달러, 매출 3억3000만 달러를 기록 중이다. 북미 중고 거래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다.

주식 취득 예정일은 2023년 4월 4일로 인수가 마무리되면 포쉬마크는 독립된 사업을 운영하는 네이버의 계열사가 된다. 포쉬마크 인수를 통해 네이버는 북미 커머스 시장 진출을 본격화할 수 있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시장 진출 가능성까지 열어 놓으면서 한국 중고 거래 시장의 잠재적인 강자로도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지금도 커머스 시장에서 쿠팡의 유일한 경쟁자 역할을 하고 있는 네이버쇼핑과 포쉬마크가 합쳐지면 그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신촌점 4층 전체를 중고 제품 전문관인 ‘세컨드 부티크’로 바꿔 놓았다. 백화점 한 층 전체를 오직 중고 제품들로만 가득 채운 것. 세컨드 부티크는 오픈과 동시에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당초 현대백화점이 예상한 매출을 훌쩍 뛰어넘는 실적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의 다른 점포들로 이를 확장할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다른 유통 대기업들도 중고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는 2021년 사모펀드와 함께 한국 최장수 중고 커뮤니티인 중고나라의 지분 93.9%를 인수하며 시장에 진출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중고 거래 사업을 진행한다.

최근 롯데는 계열사가 운영 중인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비대면 직거래 픽업 서비스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고나라에서 산 물건을 세븐일레븐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해 본격적인 시너지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신세계도 2022년 1월 그룹의 벤처캐피털사를 앞세워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앱) ‘번개장터’에 투자했다. 현재 신세계의 이커머스 계열사인 SSG닷컴에 번개장터를 입점시켜 리셀(되팔기)과 중고 명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명품 사후 관리 수선 서비스도 도입하며 중고 거래 시장 승기 잡기에 나섰다.

글로벌 명품 기업들의 한국 중고 시장 진출도 예고됐다. 대표적인 곳이 발렌시아가다. 최근 자체 홈페이지에 자사 중고 제품을 되팔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아직 미국과 영국 등에서만 서비스를 제공 중인데 조만간 한국에도 진출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른 명품 기업들의 행보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발렌시아가를 필두로 수많은 글로벌 명품 기업들이 국내외에서 자사의 중고 제품을 직접 판매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중고 거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명품을 각각의 제조사들이 직접 한국 중고 시장에 들여와 판매한다면 뒤따르는 파장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많은 대기업들이 중고 거래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시장의 빠른 성장세 때문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08년 약 4조원 규모였던 한국의 중고 거래 시장 규모는 2020년 20조원까지 커졌다.

소비의 중심축으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중고 시장에 계속해 큰 관심을 보이는 만큼 향후에도 시장 규모는 더욱 가파르게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유통 대기업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중고 거래 시장에 발을 내디딘 상황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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