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도 반했다’ 럭셔리 끝판왕 포르쉐, 유럽서 몸값 높은 車 브랜드 우뚝

증시 입성한 포르쉐 앞으로도 잘 나갈까
페라리·폭스바겐 시총 뛰어 넘어
매출 마진 좋고 현금 흐름 탄탄

포르쉐·람보르기니·페라리, 럭셔리 SUV·전기차로 2라운드 시작

[비즈니스 포커스]

10월 12일 서울 강남구 존더분쉬 하우스에서 그룹 블랙핑크의 제니가 디자인에 참여한 ‘포르쉐 타이칸 4S 크로스 투리스모 포 제니 루비 제인’을 공개했다. 사진=연합뉴스


1931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슈투트가르트에 스포츠카와 경주용 자동차를 전문 제작하는 회사가 설립됐다. ‘드림카’ 브랜드로 꼽히는 포르쉐다. 유선형으로 매끈하게 빠진 차체가 뿜어내는 폭발적 성능은 운전대를 잡아 본 사람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개구리 눈’으로 대변되는 큼지막한 헤드램프 등 유려한 디자인은 보는 이들을 홀린다.

포르쉐(포르쉐AG)가 9월 2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에 상장했다. 시가 총액은 상장일 기준 750억 유로다. 라이벌 페라리(350억 유로)를 가뿐히 제쳤다. 메르세데스-벤츠(600억 유로), BMW(500억 유로), 스텔란티스(400억 유로) 등도 모두 넘어섰다. 기업공개(IPO) 후 1주일 만에 모기업인 폭스바겐도 제쳤다. 유럽에서 가장 몸값이 높은 자동차 기업에 등극했다.

전문가들은 포르쉐의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포르쉐의 자동차 가격은 최소 1억원 이상이지만 가격과 관계없이 재고가 없어 ‘출고 대란’이 이어지고 있다. 모델별로 최소 1년에서 최대 4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계약을 취소하려는 소비자가 피(웃돈)를 받고 번호표를 되팔기도 한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포르쉐는 타이칸을 통해 전기차 경쟁력도 입증했다”며 “고급차 시장 성장에 힘입어 포르쉐의 성장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상장은 폭스바겐이 전기차 전환을 가속하는 데 필요한 자금 수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IPO로 폭스바겐은 195억 유로의 자금을 확보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은 폭스바겐그룹의 전기자동차(EV) 투자에 활용한다. 나머지는 특별 배당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금리 상승 속에 경기 침체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현금 흐름 능력은 신규 투자 여부의 중요한 척도가 된다. 증권가에선 포르쉐가 전기차 상용화 전략에 필요한 현금 흐름이 재정적으로 잘 준비돼 있다고 봤다. 김세환 KB증권 애널리스트는 “포르쉐의 2021년 기준 잉여 현금 흐름은 34억 유로로 2020년 대비 2.5배 증가했다”며 “잉여 현금 흐름 수익률은 4.5%로 주주 수익률 2.9%를 웃돌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포르쉐는 고가의 차량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다. 매출 마진이 상대적으로 높다. 지난해 포르쉐는 매출 331억 유로로 사상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매출 총이익률은 26.7%였다. BMW 25.4%, 메르세데스-벤츠 22.9%. 폭스바겐 18.8%보다 높다.
막대한 자금 조달, 지배력은 오히려 강화
일각에서는 이번 IPO가 포르쉐·피에히 가문의 경영권을 강화를 위해 무리하게 진행됐다는 지적도 있다. 포르쉐·피에히 가문은 창업자 일가다. 일반적으로 주식 시장에 상장된 주식은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다.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만 상장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포르쉐는 이번 상장에서 무의결권 우선주만 상장하고 의결권 있는 보통주는 장악하는 공모 구조를 보였다.

폭스바겐AG는 포르쉐(포르쉐AG)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번 상장을 위해 포르쉐 주식을 보통주와 우선주로 각각 반씩 쪼갰다. 이 가운데 우선주의 25%를 증시에 상장했다. 전체 지분 중 12.5%가 새로운 투자자들에게 제공됐다. 단 의결권은 없다. 카타르투자청·아부다비투자청 등 글로벌 큰손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의결권을 가진 보통주의 25%는 포르쉐 가문이 지배하는 포르쉐SE가 인수했다. 포르쉐SE를 통해 포르쉐·피에히 가문의 포르쉐 지배력이 커지게 됐단 얘기다.

폭스바겐 투자사인 도이치뱅크자산운용(DWS)의 기업 지배 구조 전문가 헨드릭 슈미트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시장 환경에서 IPO를 강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증시 상장을 서두르는 것은 포르쉐 오너 가문의 지배력 확대를 위한 섣부른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또 일부 투자자들은 포르쉐와 폭스바겐이 분리된 경영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는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가 포르쉐 CEO를 겸임하고 있다.
‘드림카’ 포르쉐
포르쉐 911 카레라. 사진=포르쉐코리아 제공


복잡한 지배 구조를 떠나 포르쉐는 꿈의 스포츠카다. 자동차업계의 천재 공학박사 페르디난트 포르쉐와 그의 아들 페리 포르쉐의 손에서 탄생했다. 포르쉐 이름을 최초로 사용한 ‘포르쉐 356’의 별명은 ‘점프하는 개구리’다. 이때부터 포르쉐 차량은 ‘개구리’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개구리 눈은 단순히 디자인 감각으로 적용한 게 아니다. 코너링 구간을 벗어날 때 가늠자 역할을 한다.

대표 제품으로는 포르쉐의 스포츠카 911 시리즈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카이엔, 대형 세단 파나메라,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 등이 있다.

포르쉐는 슈퍼카 브랜드 중 이례적으로 SUV 판매를 확대하며 소비자층을 확대했다. 포르쉐 SUV ‘마칸’과 ‘카이엔’ 판매량은 포르쉐 연간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이다.

특히 카이엔은 포르쉐를 구한 차다. 1990년 경영 악화로 파산 직전까지 갔던 포르쉐는 ‘가족이 함께 탈 수 있는 포르쉐’를 개발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출시 당시 “SUV는 포르쉐가 아니다”, “카이엔은 그냥 용서할 수 없다” 등 가장 많은 혹평을 받았지만 대박을 쳤다. 카이엔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으로 폭스바겐 인수 시도에 나섰을 정도다. 2000년대 초반부터 SUV 열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이후 람보르기니 우루스, 페라리 푸로산게, 롤스로이스 컬리넌, 벤틀리 벤테이가 등도 세상에 나왔다.

포르쉐 356의 바통을 이어 받은 911은 포르쉐를 상징하는 모델이다. 포르쉐를 세계적인 스포츠카 브랜드 반열에 올렸다.

196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데뷔한 911은 뒷바퀴 뒤쪽에 엔진을 얹은 후륜 구동(RR) 방식이었다. 이는 앞뒤 무게 밸런스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포르쉐는 당시 물리학적 한계를 놀라운 기술력으로 극복해 냈다. “포르쉐는 외계인을 고문해 탈취한 기술로 만들었다”는 외계인 고문설이 나왔던 이유다.

911은 60여 년 동안 ‘스포츠카 전설’로 대접받고 있다. 현재 8세대까지 나왔다. 8세대 포르쉐는 매년 3만 대 이상 판매되고 있다. 지금 주문하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옵션에 따라 대기 기간은 2~3배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중고차 매물도 나오자마자 팔릴 정도로 인기다.

포르쉐 카이엔. 사진=포르쉐코리아 제공

◆돋보기
SUV‧전기차 생산하는 슈퍼카들
슈퍼카 브랜드는 페라리·람보르기니·포르쉐로 대표된다. 이들은 여전히 럭셔리 브랜드 전략을 짜고 있다. 희소성이 높은 명품에 대한 수요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포르쉐는 1년간 30만 대 이상이 팔린다. 차량당 평균 판매 가격은 1억원이다. 페라리는 1만 대 정도 팔린다. 차량당 가격은 3억원 이상을 줘야 한다. 포르쉐의 영업 이익률을 20% 내외지만 더 비싼 페라리는 25%가 넘는다.

다만 최근엔 스포츠카에만 집착하지 않고 세단과 SUV도 출시하며 소비자 폭을 확대하고 있다. 포르쉐는 마칸·카이엔 등 SUV와 대형 세단 파나메라를 판매하고 있고 람보르기니는 SUV 우루스를 출시했다. 정통 스포츠카 생산만 고집해 왔던 페라리도 지난 9월 SUV 푸로산게를 공개했다.

슈퍼카 브랜드들은 전기차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올리버 블루메 포르쉐 CEO는 지난 7월 블룸버그를 통해 “2030년까지 순수 전기차 비율을 전체의 80%로 높이겠다”면서 “카이엔 윗급으로 제작할 기함급 전기 SUV는 이를 실현할 핵심 모델이다. 타이칸과 함께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포르쉐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폭스바겐그룹 산하인 이탈리아 람보르기니도 전동화 전환에 한창이다. 내년부터 아벤타도르·우라칸 등 주력 차량에 폭스바겐 전기 파워트레인(동력을 전달하는 기구)을 적용한다. 2024년까지 전체 판매 차량에 배터리를 탑재하겠다는 구상이다. 슈테판 윙켈만 람보르기니 CEO는 “내연기관 엔진 자동차만을 제공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이미 생산한 내연기관차는 인도를 모두 완료했다”고 말했다.

요란한 엔진 소리로 애호가들을 홀리는 페라리 역시 전기차 비율을 점차 높인다. 2025년 첫 전기차를 출시하고 2030년 전체 판매 모델의 40%를 전기차로 전환할 계획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그래픽=배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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