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위기 뚫을 인재 찾아라’…재계 연말 인사 관전 포인트

한화 시작으로 줄줄이 인사 예정
오너 경영 전면 나서고 ‘전문성·젊은 피’ 전진 배치 전망

[비즈니스 포커스]

사진 왼쪽 윗 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사진=각 사 제공



전쟁 장기화, 미국과 중국의 갈등 격화, 인플레이션 지속 등 글로벌 악재로 ‘R(경기 침체)의 공포’가 현실화하면서 한국 경제에 복합 위기 경고등이 켜졌다. 기업들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정기 임원 인사를 앞당기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 속에서 올해 주요 대기업의 인사 폭과 규모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상당수는 핵심 역량 강화와 미래 준비, 전문성, 젊은 인재 등용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회장 승진 앞두고 인적 쇄신 전망도

올해 정기 임원 인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삼성전자다. 삼성은 지난해 12월 9일 인사를 발표했는데 올해도 비슷한 시기에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용 부회장의 승진에 관심이 모아진다. 또 그의 경영 복귀 이후 첫 인사라는 점에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성과주의 원칙에 따라 사장단보다 부사장과 상무급 임원의 변화가 클 것이란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하지만 최근 이 부회장이 승진한다면 대대적 임원 인사를 하는 게 부담스러울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어닝쇼크 수준의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반도체 매출 세계 1위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 부동의 선두인 대만 TSMC에 내주면서 반도체 위기감이 커진 상태다.

6월에는 반도체연구소장을 비롯해 반도체 사업부 관련 임원 20여 명을 교체했다. 이 중 부사장급 이상 고위 임원만 10여 명이다. 지난해 연말 정기 인사를 단행한 지 6개월 만에 부사장급 10여 명을 한꺼번에 교체한 것은 이례적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파운드리 등 미래 전략 분야에서 기술 초격차를 통해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 30일 서울 송파구 삼성SDS를 방문해 직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회장 승진과 함께 ‘뉴삼성’을 위한 세대교체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미국 출장을 마치고 “냉혹한 현실을 보니 마음이 무겁다”고 밝힌 후 삼성전자 각 사업부를 총괄하는 수장을 교체하는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

모바일 사업과 가전 사업을 합친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에 한종희 부회장을, 반도체사업(DS) 부문장에 경계현 사장을 새로운 수장에 임명한 바 있다. 성과를 기반으로 30대 상무, 40대 부사장, 50대 최고경영자(CEO) 등 젊은 리더를 전진 배치했다. 이 부회장의 승진 시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11월 1일 삼성전자 창립 기념일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생활가전사업부를 총괄해온 이재승 사장이 연말 인사를 앞두고 10월 18일 돌연 자진 사임하면서 인사 폭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임 배경으로 생활가전사업부 실적 악화 여파가 부담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7월 최신 드럼세탁기 ‘비스포크 그랑데 AI’ 강화 유리문이 파손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며 품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사장의 사임으로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 겸 DX부문장(부회장)이 생활가전부 사장을 겸직하게 됐다.

SK그룹은 지난해 12월 2일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133명의 신규 임원을 선임했는데 그중 3분의 2인 67%는 첨단소재·그린·바이오·디지털 분야 등 4대 핵심 사업에 포진됐다.

SK그룹이 핵심 성장 동력인 배터리·바이오·반도체(BBC) 분야에 5년간 247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만큼 올해 신사업을 이끌 젊은 인재를 대거 등용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 배터리 계열사인 SK온은 최근 삼성전자·쿠팡·맥쿼리 출신 등 외부 인력을 대거 채용했다.

지난해 SK하이닉스에서 1975년생인 40대 중반의 노종원 사장이 발탁된 것처럼 최태원 SK 회장이 강조하는 파이낸셜 스토리에 대한 성과를 낸 인재들이 올해 승진의 주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 스토리는 매출과 영업이익 등 기존 재무 성과뿐만 아니라 시장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목표와 구체적 실행 계획을 담은 성장 스토리를 말한다.


사진 왼쪽부터 류두형 한화 모멘텀부문 사장, 김희철 한화임팩트 대표,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이구영 한화솔루션 대표가 2020년 비전 공유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한화솔루션 제공


한화, ‘포스트 김승연’ 시대 준비

오너 3·4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재계 세대교체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오너들과 호흡을 잘 맞출 수 있는 사장단을 중심으로 친정 체제를 강화하고 경영 쇄신을 위한 신규 임원 승진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화를 필두로 대기업들이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정기 임원 인사를 예년보다 서두르고 있다.

한화그룹은 통상 9월 말 사장단 인사, 11월 임원 인사를 실시해 왔지만 2021년부터 한 달 이상 앞당겨 8월 말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 지난 9월 29일 9개 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며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을 사장에서 승진시켰다.

김 부회장은 기존 한화솔루션 전략 부문 대표이사에 더해 (주)한화 전략 부문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 부문 대표도 함께 맡는다. 태양광·방산·항공우주 등 핵심 사업을 총괄하며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올랐다.

한화그룹은 김 부회장이 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을 맡고 2남인 김동원 부사장이 금융업을, 3남인 김동선 전무가 호텔과 리조트 사업을 각각 맡으며 ‘포스트 김승연’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10월 12일 김 부회장 승진 이후 첫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올해 인사 키워드는 ‘세대교체’와 ‘미래 준비’로 요약된다. 신사업에선 1980년대생 여성과 40대 임원들을 대거 발탁했다. 김동선 전무는 상무에서 이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인사에서 승진했다. 이번 인사로 김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한화그룹 3세 경영 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는 관측이다.


구광모 LG 회장(앞줄 왼쪽)이 10월 12일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열린 ‘LG 사장단 워크숍’에서 권봉석 (주)LG 부회장(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LG 제공


현대차·LG, ‘안정 속 혁신’ 꾀할 듯

5대 그룹 중 가장 마지막으로 연말 정기 임원 인사를 실시해 온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시기를 앞당겨 12월 17일 203명의 임원을 선임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인사를 단행했다. 2020년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2년간 변화와 혁신 기조로 파격적인 세대교체에 집중해 온 만큼 올해는 조직 안정에 방점을 둔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이 2025년까지 18조원을 투자해 모든 차종을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 바꾸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도전과 혁신을 이끌 젊고 유능한 인재를 발탁할 수도 있다.

LG그룹은 2018년 구광모 회장 취임 후 실용주의 철학에 따라 실력에 기반한 인재 발탁에 주력해 왔다. 지난해 ‘안정 속 혁신’을 키워드로 주요 계열사 CEO를 대부분 유임하면서도 젊은 신규 임원을 대거 발탁했다. 전체 승진 규모는 179명으로 그중 신임 상무만 132명에 달했다.

신임 상무의 절반 이상은 40대였다. 기존 경영진을 통한 지속 성장을 추구하면서도 잠재력과 전문성을 갖춘 젊은 인재를 함께 기용해 고객 가치와 미래 준비를 가속화했다는 평가다. 올해도 안정 속 혁신을 추구하면서 구 회장이 직접 챙기는 인공지능(AI)·바이오·클린테크 등 미래 성장 분야에서의 과감한 인재 발탁이 예상된다.

통상 매년 12월 중·하순 인사를 발표하다가 2020년부터 11월 말로 앞당겼던 롯데그룹도 올해 인사 평가를 서두르면서 11월 초·중순쯤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7월 ‘2022 하반기 사장단 회의(VCM)’에서 계열사 CEO들에게 주가 관리를 주문했다. 기업 가치를 측정하는 가장 객관적 지표로 시가 총액을 제시하고 “자본 시장에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원하는 성장과 수익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달라”고 강조했다.

롯데그룹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헬스케어·바이오·수소·배터리 등 신사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순혈주의를 깨고 외부 인재 영입에 나서고 있다. 신동빈 회장의 신사업 핵심 인재 확보와 육성 의지에 따라 올해 4월 외부 인재 영입을 위한 전담 ‘스타(STAR)’팀을 신설하기도 했다.

후계자로 꼽히는 신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의 승진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신 상무는 최근 신 회장의 베트남 출장에 동행해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나고 현지 사업장을 방문하는 등 공식 석상에서 자주 모습을 보이며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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