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에 인색한 애플이 소비자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 '애플형' [마켓쉐어보다 마인드쉐어]
입력 2022-10-22 06:00:04
수정 2022-10-23 15:01:29
혁신성과 탁월함으로 ‘팬덤’ 구축… ‘본업 충실’이 가장 근본적이고 효율적인 사회 공헌 방법
[스페셜 리포트-어떤 브랜드가 마음을 파고드는가]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혁신가’들이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다.
게이츠 창업자는 ‘기부’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게이츠재단을 통해 ‘세계 소아마비 퇴치 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반면 잡스 창업자는 기부에 인색하기로 유명하다. 1997년 애플로 복귀한 뒤에는 사내 자선 프로그램을 폐지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애플이 사회 공헌에 적극적이 않다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경제 매체 포천이 해마다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순위에서 15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마음은 애플의 혁신에 높은 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설탕물이나 팔면서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꿔 놓을 기회를 갖고 싶습니까.” 1983년 잡스 창업자가 존 스컬리 당시 펩시콜라 부사장을 영입하며 건넨 질문으로 유명하다. 이 짧은 질문에 애플이 세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가 함축돼 있다. 그에게 기업은 본질적으로 ‘세상을 바꿔 놓는 기회’를 창출하는 곳이다. 자신들의 ‘본업에 충실’한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믿음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애플이 갖고 있는 팬덤의 힘
2007년 1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애플 맥월드 키노트 행사장. 검은색 목폴라 청바지 그리고 안경을 쓴 잡스 창업자가 무대에 올랐다. “오늘은 지난 2년 반 동안 제가 가장 기다려 온 날입니다.” 이날 세상에 내놓은 아이폰은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깔끔한 디자인과 함께 손안의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연결하는 ‘아이폰 생태계’는 애플에 혁신의 대명사라는 이미지를 심어 줬다. ‘아이폰’이라는 브랜드는 소비자들에게 단순히 호감을 얻는 수준을 넘어 강력한 ‘팬덤’을 구축했다. 팀 쿡의 애플이 된 지금까지도 이와 같은 ‘팬덤’은 애플의 주요한 성장 동력이다.
디즈니·스타벅스·테슬라 또한 팬덤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디즈니는 미국의 3대 수출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1923년 디즈니 스튜디오 설립 이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는 소비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출발점이다. 디즈니가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은 애니메이션과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꿈과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디즈니랜드’ 등을 통한 소비자들의 경험으로 연결시키며 사회 전반에 대한 디즈니의 긍정적 영향력을 소비자들에게 공감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강력한 팬덤은 오늘날 ‘디즈니 왕국’ 건설의 뿌리가 됐다.
글로벌 1위 커피 브랜드인 스타벅스는 전 세계 커피 문화를 표준화하고 있을 정도로 사랑받는 브랜드다. 한국에서도 커피 전문점 만족도 조사를 하면 늘 1위를 차지할 정도다. 스타벅스는 ‘커피’라는 제품 본연의 맛과 서비스에 집중하는 것만큼이나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이미지에 상처가 났다. 지나치게 많은 ‘굿즈 행사’ 등으로 소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일부 제품에서 나온 유해성 물질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가 여전히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데는 ‘스타벅스’라는 브랜드에 대한 강력한 팬덤 효과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는 매장이라는 콘셉트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스타벅스 커피’라는 트렌드를 주도하며 ‘트렌디함을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
코스트코는 글로벌 1·2위인 월마트와 까르푸가 철수한 한국 시장에 유일하게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한 글로벌 유통 기업이다. 코스트코가 한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분명하다. 짐 시네갈 코스트코 창업자는 자신만의 경영 철학으로 기업을 이끌며 ‘유통업계의 스티브 잡스’로 일컬어진다. 일반적인 유통 업체들이 어떻게 하면 ‘이윤’을 더 많이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한 반면 코스트코는 소비자들에게 더욱 싼값에 좋은 제품을 선보인다는 ‘유통 기업의 본질’에 더욱 집중했다. 일반 브랜드 제품의 마진율 상한선은 14%, 자체 상표(PB) 제품의 마진율은 15%를 원칙으로 했다. 일반적인 유통 업체 마진율이 평균 25~30%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납품 가격이 높아 소매가가 높아진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판매를 중단했다.
본질에 집중해 ‘소비자 감동’ 끌어내는 혁신 기업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그 기업의 이윤을 늘리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기업의 사회적 공헌 활동이 ‘하면 좋은 것(nice-to-do)’에서 ‘해야만 하는 것(need-to-do)’으로 점점 더 바뀌어 가고 있는 요즘의 현실을 감안하면 그의 주장은 한편으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업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주체이자 이익 단체다. 그러니 기업이 집중해야 할 사회적 책임은 바로 이와 같은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오히려 요즘 들어 더욱 큰 울림을 갖는다. 기업이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세상의 변화를 이끌고 소비자를 감동시킬 때 소비자들은 강력한 ‘팬덤’으로 보답한다.
사실 ‘능력’만으로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비자들에게 설득하는 데 성공한 기업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구글과 아마존은 대표적인 혁신 기업이다. 인류의 삶을 바꾸고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위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 가능성이 실제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아 ‘팬덤’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탁월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랫동안 ‘시간의 검증’을 거쳐 제품의 탁월함이 실제 소비자들의 삶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실제로 구글은 오픈마켓 등을 통해 애플리케이션(앱) 생태계를 키우며 긍정적인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 왔다. 하지만 최근 메타와 함께 ‘개인 정보 수집’ 논란 등에 휘말리며 ‘악마가 돼 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글의 모토는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다.
강력한 혁신을 바탕으로 팬덤을 구축해 가는 과정에 있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애플형 기업으로 성장 가능성을 품은 곳들이다. ‘신발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올버즈는 ‘실리콘밸리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신발’이다.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메타 창업자 등이 즐겨 신으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2015년 올버즈의 창업자 팀 브라운은 매우 가벼우면서도 보온성이 좋은 양털 품종인 ‘메리노 울’로 신발을 만든다. 통기성이 좋아 겨울뿐만 아니라 더운 여름철에도 시원하다. 실리콘밸리를 바쁘게 누비는 사람들을 사로잡을 정도의 ‘제품의 탁월함’ 만으로도 팬덤을 구축한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에는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투자에 참여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본의 호시노그룹은 일본 최고급 료칸을 선보이는 리조트 그룹이다. 1914년 최초로 료칸 리조트를 개장해 현재 4세째 운영을 이어 오고 있다. 지난 100년간 료칸 리조트를 통해 일본 각 지역의 매력을 개발한 데 더해 최근에도 료칸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재패니즈 모던 료칸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을 넘어 대만과 발리 등에도 진출한 아시아를 대표하는 호텔 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다. 호시노그룹이 사랑받는 비결은 ‘오모테나시 문화’가 핵심이다. 이는 ‘진심을 담은 극진한 접대’라는 일본 특유의 서비스 문화를 말한다. 어느 호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다소 과하게 느껴질 정도의 환대와 세심한 케어를 경험할 수 있다. 호시노그룹의 수준 높은 서비스를 경험한 이들이라면 “무조건 믿고 가는 곳”이라고 할 만큼의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타다’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2018년 세상에 선보인 ‘타다 베이직’ 서비스는 승차 거부 없는 배차 시스템과 고객의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하는 서비스로 한국의 택시업계에 그야말로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출시 1년이 채 안 돼 170만 고객들을 모을 정도로 강력한 팬덤을 구축했다. 이후 ‘타다 금지법’ 등의 영향으로 서비스가 중단됐을 때도 아쉬움을 토로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았을 정도다. 최근 ‘택시 대란’ 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지난 4월 새로운 서비스인 ‘타다 넥스트’를 선보이며 벌써부터 빠르게 성장해 가고 있다.
‘세상에 널리 퍼뜨릴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를 모토로 하는 글로벌 비영리 단체인 테드(TED)도 본질에 충실한 서비스 혁신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키워 가고 있다. 1984년 정보기술(IT) 전문가인 리처드 솔 위먼과 방송 디자이너 해리 마스크가 단발성 행사로 처음 기획했지만 2001년 영국 출신의 미디어 기업가인 크리스 앤더슨이 TED를 인수하며 본격적인 틀을 갖췄다. 세계를 이끌어 가는 혁신적인 기업가나 교수 등 수준 높은 강연을 전 세계 누구든 온라인을 통해 무료로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소수 엘리트들의 사교 모임이었던 TED는 이를 계기로 전 세계인의 지식 나눔 축제로 변화시켰다. 온라인 교육 분야의 혁신을 통해 선한 영향력이야말로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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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