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의 융합이 만든 ‘힙플레이스’ 어니언 광장시장점 [MZ 공간 트렌드]

익숙함 속에서 한 끝의 디테일로 만들어 낸 변주…‘트렌드’의 비밀

세대를 아우르는 ‘힙플레이스’ 어니언 광장시장점

지난 8월 오픈한 '어니언 광장시장점'. 출입구 벽을 허물어 카페 내부와 거리 사이의 경계를 없앴다. (사진=어니언)


‘힙’은 어디에나 있다. 강남에 오픈한 신상 카페에도, 전통 시장 골목의 허름한 순댓국밥집에도, 으리으리한 근교의 대형 카페에도…. 오래된 골목에 있는 꾸미지 않은 날것의 공간, 그 공간이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온 서사가 있다면 더더욱 힙하게 느껴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허름한 곳의 세련된 오브제, 진주 목걸이를 하고 노포를 찾아다니는 인플루언서에게서 약간의 위화감을 동반한 ‘힙스러움’을 느낀다.

‘힙스터’, ‘힙플레이스’, ‘힙하다’ 등 ‘힙’이 붙는 신조어는 이제 식상해진 수준이다. 유행을 선도하는 셀러브리티라는 의미로도 쓰지만 이 단어는 1940년대 미국 재즈 문화에서 왔다. 당시 재즈는 흑인의 전유물이었다. 흑인의 전유물이었던 서브 컬처인 재즈에 심취한 백인을 부르던 말이라고 한다.
힙스터들은 개인의 취향과 차별성으로 주류와 자신을 구분 짓는다. 2000년대 들어서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2030세대가 자본주의적 소비주의에 반해 가치 지향의 소비를 추구하는 것도 일종의 ‘힙스터’ 문화라고 볼 수 있다. 반주류 문화라는 기원에서 역설적으로 그들의 비주류 문화가 유행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힙스터 패러독스라고 한다.

형광등을 노출시킨 간판. 러프한 인테리어는 시장에서도 쉽게 볼 법하다. (사진=어니언)

정식 오픈 전부터 화제를 모은 ‘어니언 광장시장점’은 이런 트렌드의 대표로 떠오르는 카페 브랜드다. 광장시장 입구 모퉁이에 문을 열었다. 성수점·미아점·안국점에 이어 넷째 매장으로 아티스트 그룹 패브리커가 디렉팅했다. 이들은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공간을 재해석하기로 유명하다. 폐공장을, 강북 우체국의 절반을, 계동 한옥을 카페로 바꿔 놓았다. 2015년 서울의 한 목욕탕을 개조한 안경 브랜드인 젠틀몬스터의 쇼룸 ‘배쓰 하우스(Bath House)’는 공간 마케팅의 신화로 남았다.

아이덴티티가 뚜렷한 공간은 마니아들에게는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의 요소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웬만하고 평범한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람도 자기 개성이 뚜렷할수록 타인과 어우러지기 어렵지 않은가(그만의 매력이 있지만). 요즘 세대 감성에 묶이지 않는 20대나 나머지 기성세대들은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지나치게 뚜렷한’ 공간에서 그들의 힙스러움이 어색해 어쩔 줄 몰라 한다. ‘힙’은 어쩌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전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다른다.
패브리커의 공간 철학이 뚜렷하고 이전까지의 카페 어니언을 봤을 때 수요층과 그들이 기대하는 요소들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광장시장의 어니언도 비슷한 느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주형 어니언 대표는 광장시장점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되도록 기획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커피 원두 이름은 '노스텔지아'다. (사진=어니언)

카페 앞에 출입구가 없다. 벽을 허물고 그곳에 합판으로 된 테이블과 의자를 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포장마차에서 쓰는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와 종이 박스 뒤쪽에 매직으로 적은 메뉴판이다. 철자가 틀린 것인지, 이제는 주문이 안 되는 메뉴들인지, 글자가 보이지 않게 직직 그은 흔적도 있었다. 완벽한 로컬라이징이다. 시장의 오브제들을 그대로 살렸다. 실제로 낮에는 시장 상인들의 북적이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33㎡(10평) 남짓한 카페는 마치 굴다리처럼 광장시장을 오가는 행인들의 길목이 됐고 노인들은 커피를 마시는 젊은이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줄을 서며 커피를 샀다.

이곳은 원래 60년 동안 이어 온 금은방 보신당이었다. 옛 공간을 살리고 향수를 일으키려는 기획이 들어갔다. 어니언의 원두는 지점마다 다른데 광장시장점의 원두는 이름도 ‘노스탤지아’다. 의도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페이스트리 피자도 어릴 적 즐겨 먹던 엄마 손 파이가 생각나는 맛이다. 헤이즐넛 시럽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얼마나 또 정성스러운지 매일 아침 시장에서 두부를 만드는 것만큼 수고롭다. 어니언 베이커리팀에서 견과류를 볶아 광장시장점으로 가져다주면 직원이 설탕과 물을 따뜻한 물에 녹여 볶은 콩과 함께 숙성한다. 그다음 믹서기에 넣고 간다. 그렇게 병에 담으면 층이 분리가 되면서 위에는 헤이즐넛 견과류가, 아래에는 시럽이 남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헤이즐넛 시럽을 넣어 헤이즐넛 라떼를 만든다. 라떼의 우유는 선호에 따라 귀리 우유로도 바꿀 수 있다.

천장에 걸린 명태. 마치 예술작품같다. (사진=어니언)

로컬스러움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아무렇게 놓인 빨간 포장마차 의자에는 어니언 로고가 적힌 박스 테이프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엄마 손 파이 맛이 나는 페이스트리는 피자 박스에 넣어 ‘피자인 척하는 파이’로 불린다. 예로부터 액운을 쫓고 재물을 불러온다는 명태는 레진으로 만들어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보인다. 익숙함에서 한끝의 디테일로 변주를 주는 것이 트렌디한 점이다. 공간이 지향하는 가치가 뚜렷하고 그 가치를 누구와도 나눌 수 있어 더 멋지다. 그곳에서 내가 나일 때 비로소 ‘힙스터’가 된다.


윤제나 한경무크팀 기자 ze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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