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빈 살만이 온다…‘710조원’ 네옴시티 프로젝트 본격 가동
입력 2022-11-15 06:03:02
수정 2022-11-15 06:03:02
이재용·정의선 등 재계 거물 잇단 회동 예상…한국 기업, 제 2 중동 붐?
한미글로벌(56%), 코오롱글로벌(55.6%), 희림(51%) 등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관련 기업 주가가 한 달 새 50% 넘게 상승했다. 네옴시티는 서울의 44배 크기 도시를 짓기 위해 총 710조원 규모가 투입된다. 역대급 ‘오일머니 보따리’가 풀릴 것으로 기대되면서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1월 4일에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끄는 수주 지원단이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하면서 ‘네옴시티 테마주’도 들썩였다. 한국 정부와 22개 기업을 묶은 ‘원팀 코리아’는 11월 4일부터 9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로드쇼를 이어 가며 ‘제2의 중동 붐’을 목표로 야심 찬 출사표를 던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이자 네옴시티를 주도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11월 17일 방한하기로 하면서 추가 수주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5년 만에 발주 시동…삼성물산·현대건설 활약
네옴시티의 첫 개발 계획이 발표된 것은 2017년이다. 당시 32세에 권력을 쥐게 된 빈 살만 왕세자가 석유 중심 경제 구조를 탈피하기 위한 국가 장기 프로젝트 ‘사우디 비전 2030’의 일환으로 네옴시티를 내세웠다. 네옴시티는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사막에 첨단 기술과 신재생에너지 등을 현실에 구현한 꿈의 도시 ‘유토피아’다. 2017년 첫 발표 때는 실현 불가능한 신기루로만 여겨졌다.
5년 동안 이렇다 할 진척도 없었다. 그동안 구상과 디자인 변경,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등으로 일정이 다소 늦춰졌지만 올해는 네옴시티를 위한 굵직한 발주가 이뤄지는 등 속도가 붙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내년부터는 보다 본격적인 프로젝트 발주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네옴시티는 크게 세 가지 프로젝트로 구성된다. 길이 170km에 달하는 자급자족형 직선 도시 ‘더 라인’, 바다 위에 떠 있는 팔각형 첨단 산업 단지 ‘옥사곤’, 대규모 친환경 산악 관광 단지 ‘트로제나’다. 각각 주거 단지, 산업 단지, 문화 관광 단지인 셈이다.
네옴시티의 핵심이자 주거 단지인 ‘더 라인’은 500m 높이의 두 개의 건축물(미러 라인)이 길이 170km까지 평행하게 뻗어 있는 형태다. 건물 외벽은 거울처럼 반사되는 유리로 이뤄져 있어 태양광을 통한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할 계획이다. ‘미러 라인’ 안에는 수직 농장, 스포츠 경기장, 요트 정박 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내부는 인공지능(AI) 기술로 사계절 내내 온화한 기후를 만들겠다고 했다. 완공되면 최대 600만 명이 거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러 라인의 끝에서 끝까지는 고속 열차를 이용하면 2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1차 완공 목표는 2025년으로 도시에 필요한 주택·항만·철도·에너지 시설 등 대규모 인프라 입찰이 현재 진행 중이다.
중동 프로젝트 시장 정보지인 MEED에 따르면 현재 네옴 프로젝트의 발주 규모는 약 130억 달러 수준으로 전체 예산액의 2.6% 수준에 불과하다. 이 중 대부분이 1억 달러 이하의 소규모 공사들이다. 1억 달러 이상 규모의 프로젝트는 총 13개, 그중에서도 10억 달러 이상의 조 단위 프로젝트는 3개에 불과하다.
이제 시작인 분위기이지만 한국 기업들이 선전하고 있다. 3개의 조 단위 프로젝트 가운에 1개를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수주했다. 지난 6월 양 사는 그리스의 아키로돈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했고 스페인 악시오나와 인도 라르센&투브로, 스페인 FCC건설, 중국 국영건설공사 등과 경쟁을 벌인 끝에 사업자에 선정됐다. 해당 사업은 자급자족형 직선 도시 더 라인 지하에 총 28km 길이의 고속·화물 철도 서비스를 위한 터널을 뚫는 사업이다. 사업비는 18억5000만 달러에 이른다.
작년 6월에는 한국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 업체인 한미글로벌이 더 라인의 마스터 플랜 관련 용역 계약(230만 달러)을 체결했다. 2023년 5월까지 2년간 프로젝트 관리·운영 구조 수립, 프로젝트 자원 관리, 개발·설계 관련 내부 관리, 발주처 지시 사항 적기 이행 감독, 프로젝트 자료 보관 및 관리 방안 수립 등을 맡는다. 플랜 납품 이후 본격적으로 발주될 다수 프로젝트에 대한 추가 수주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 밖에 한국의 몇몇 기업이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도시 건설을 위한 인프라는 물론 콘텐츠 수주를 따기 위해 정보기술(IT) 기업, 스마트 팜 기업 등이 수주 지원단에 참여했다. 원팀코리아에 참여한 건축 업체 희림은 중동에서 건설 설계 실적을 보유하고 있고 스포츠 시설 설계에 강점이 있다. 카타르에서 카타르 알투마마 FIFA 월드컵 경기장을 설계했다. 또 아제르바이잔에서 바쿠 올림픽스타디움,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슈켄트 후모아레나 경기장을 설계하고 건설 사업 관리 업무를 진행한 바 있다.
건설사뿐만 아니라 모라이·토르드라이브·포테닛 등 모빌리티 기업과 네이버·KT 등 IT 기업, 엔씽 등 스미트 팜 기업도 이번 사우디아라비아행에 동참했다. 로봇·클라우드·AI·스마트 빌딩·스마트시티 구축 등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알릴 기회로 삼았다.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 시 재계의 역할도 기대된다.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은 빈 살만 왕세자와 차담회를 가질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빈 살만 왕세자 간의 친분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수주전에서 삼성그룹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빈 살만 왕세자가 방한했을 때 단독 면담했고 다른 주요 그룹 총수들과의 만남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은 앞으로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들어서는 초고층 빌딩을 비롯해 다수의 주택·플랜트 사업 수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SK, 현대차, 롯데 등 주요 그룹 역시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는 도심항공기·로봇·자율주행 같은 스마트 시티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어, 그룹 차원에서 네옴 시티 프로젝트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가 네옴시티를 통해 '세계 최대 수소 수출국'이 되겠다고 선언한 만큼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와 수소차 진출 역시 모색할 수 있다. 건설사 수주 텃밭 ‘중동 리스크’ 재현 가능성은?
사우디아라비아는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 ‘텃밭’으로 여겨지는 만큼 한국 건설사들의 수주전 역시 활발하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주액 규모가 전체 해외 건설 수주 1위 지역이다.
특히 최근 고유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공사 발주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건설사들은 1973년 중동 지역에 진출한 이후 사막에서 많은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경험이 있다. 현재까지 한국 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수주한 건설 프로젝트의 누적 규모는 1551억 달러에 이른다.
다만 네옴시티 프로젝트의 공사가 워낙 크고 특히 유가 등락에 따른 리스크도 남아 있다. 유가는 해외 건설 시장의 절대 변수다. 유가 등락에 따라 공사가 지연되거나 공사 현장이 멈출 우려도 있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는 2013년부터 1007m 높이의 세계 최고층 건물 ‘제다 타워’를 건설 중이지만 공사가 계속 지연되고 있어 공기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 건설업계는 사우디아라비아 국가 목표가 걸린 프로젝트인 만큼 다른 중동 지역에서 발생하는 지정학적 리스크로 사업이 멈출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이다. 특히 지난 10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네옴시티를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선정하면서 2026년까지 인공호수, 호화 호텔, 스키 리조트 등 시설 건설을 목표로 잡은 만큼 공사가 지연될 가능성도 낮다.
한국 건설사 관계자는 “중동 사업에서 유가에 따른 리스크는 늘 존재하고 2016년에는 한국 건설사들 중 아람코나 사우디아라비아 전력청 등 국가에서 발주한 프로젝트의 공사 기한이 밀리면서 미청구 공사액이 늘어났던 경우도 있었다”며 “다만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 재정 규모가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크고 이라크처럼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국가 비전을 건 사업의 공사비 지급에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