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G90 ‘HDP’ 올 연말 레벨3 서비스 예정
법과 제도 정비, 업계 생존 환경 조성도
주행 중 잠을 자고 자동차 내 디스플레이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 딴짓을 할 수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장거리 여행 때는 차창 밖 풍경을 즐길 수 있다. SF 영화 속에서 봤던 미래 운전의 모습이다. 자율 주행 시대에선 운전자도 손·발·눈이 자유롭다. 목적지를 입력하는 게 ‘드라이빙’의 전부다.
현시점에서는 발을 떼고 운전하는 것 정도가 일반적이다. 물론 운전대에서 손을 떼도 직선은 물론 곡선 주행도 가능하다. 하지만 손을 완전히 떼고 주행할 수는 없다. 브랜드별로 다르지만 10초 또는 1분 30초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계기판이 깜빡거리면서 운전대를 다시 잡으라는 경고 메시지가 뜬다. 이때 운전대를 잠시 잡아줘야 한다. 잠깐잠깐 간식만 먹을 수 있는 셈이다.
최근 신문과 방송에는 ‘자율 주행차 성큼’이라는 뉴스가 연일 올라온다. 서울 강남 일대에선 카카오T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자율 주행 택시를 호출하는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서울 청계천과 상암동 일대에선 자율 주행 버스가 거리를 누비고 있다. 이들 차량은 모두 운전자의 개입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인다. 다만 운전석에는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전 요원(운전사)이 탄다.
현대자동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올해 안에 G90 모델에 레벨3 수준의 자율 주행 기능을 탑재한다. G90가 제네시스를 대표하는 기함인 만큼 모든 과학 기술이 축적될 것으로 보인다.
운전대와 가속 페달 등에서 손과 발을 떼고 전방을 주시하지 않는 시대가 가능할지 현황을 짚어 봤다.
◆현대차 ‘레벨3’ 상용화 속도
미국자동차공학회(SAE)는 자율 주행을 0~5단계로 분류한다. 페달에서 발을 떼도 되는 레벨1, 운전대에서 손을 떼도 되는 레벨2, 전방에서 눈을 뗄 수 있는 레벨3, 생각의 자유가 가능한 레벨4, 완전한 자율 주행인 레벨5 등이다. 레벨2까지는 차량 통제권을 운전자가 갖지만 레벨3부터는 자동차가 스스로 통제권을 갖고 운전자는 비상시에만 대응한다.
현재 양산되는 자동차들은 대부분 레벨1~2 수준의 자율 주행 기능이 탑재됐다. 다만 실제 제품을 보면 레벨2라고 해서 양손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레벨3 역시 운전자가 전방을 어느 정도 주시해야 한다.
레벨3 차량을 시장에 내놓은 곳은 벤츠(S클래스)와 혼다(레전드) 정도다. 현대차그룹도 야심차게 준비 중이다. 연내 제네시스 G90가 고속도로 자율 주행(HDP) 모델을 내놓는다. HDP는 SAE의 레벨3를 충족한다. 곡선 주행, 차로 변경은 물론 고속도로 진·출입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앞으로는 고속도로에서 편하게 팔짱을 끼고 있을 수 있는 셈이다.
자율 주행 속도는 당초 계획했던 시속 60km에서 80km로 상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시속 60km 이하로 주행할 경우 도로 흐름에 방해가 될 수 있어 사실상 자율 주행이 어렵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자율 주행차의 조기 상용화를 위해 완성차 업체가 제한 속도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최대 속도를 정할 수 있도록 레벨3의 안전 기준을 개정했다.
현대차‧기아도 내년부터 일부 신차에 레벨3 자율 주행 기술을 적용한다. 시속 80km까지 달릴 수 있다. 향후 소프트웨어 무선 업데이트(OTA)를 통해 고속도로 제한 속도인 시속 120km까지 주행 가능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G90 HDP 등에는 갖가지 센서를 장착할 것으로 보인다. 자율 주행차가 스스로 달리기 위해선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센서’가 중요하다. 대표적으로는 라이다·레이더·카메라가 꼽힌다. 예컨대 라이다는 초당 수십 번의 빛을 주변 사물들과 주고받으며 정밀하게 거리 정보를 파악한다. 레이더 센서는 주변 물체의 형태를 인식하고 거리를 정교하게 측정한다. 이렇게 모인 정보를 고성능 컴퓨터가 분석해 차량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한다.
현대차그룹은 레벨4 기술 고도화를 위한 실증 사업도 다각도로 펼치고 있다. 올해 들어 전기차 아이오닉5를 기반으로 개발한 로보택시를 차량 호출 서비스 업체(진모빌리티‧카카오모빌리티)와 손잡고 강남 지역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국회사무처와도 협업했다. 내년 상반기 인공지능(AI)과 자율 주행 기술을 결합한 ‘레벨4 수준의 셔틀’을 선보인다.
투자도 활발하다. 올해 8월 자율 주행 전문 기업인 포티투닷을 인수하며 자율 주행 기술 개발을 위한 역할을 분담했고 9월 KT와 지분 교환을 통해 자율 주행 기술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이다. 2020년엔 2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자율 주행 업체 앱티브와 함께 합작사 모셔널을 세웠다.
정부는 올해 레벨3 자율 주행차 상용화를 추진한 데 이어 2025년 대중교통을 자율 주행 기반으로 전환하고 2027년 완전 자율 주행차(레벨4) 상용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IT‧AI와 협업하는 완성차들
시장 조사 업체 KPMG에 따르면 글로벌 자율 주행차 시장 규모는 2020년 71억 달러에서 2035년 1조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자율 주행차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테슬라는 완전 자율 주행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2.5단계 수준의 자율 주행 기술을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가운데 기존 완성차들의 빠른 추격이 전개되고 있다. 자율 주행이 융·복합 기술이자 고난도 기술인 만큼 정보기술(IT)·AI 기업과의 협력이 활발하다. 현대자동차그룹·메르세데스-벤츠·볼보·BYD 등은 세계 최대 그래픽 처리 장치(GPU) 업체인 엔비디아와 손잡았다. 엔비디아는 테슬라와 함께 자율 주행 성능을 구현하기 위한 슈퍼컴퓨터 분야에 앞선 업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텔란티스는 퀄컴, BMW는 인텔 모빌아이, 아우디는 화웨이와 각각 손잡았다. 제너럴모터스(GM)는 2016년 인수한 자율 주행 개발 업체인 크루즈오토메이션을 중심으로 혼다·소프트뱅크와 협력하고 있다.
◆산적한 상용화 과제들
자율 주행 시대가 성큼 다가왔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여전히 많다. 기술은 물론 법, 제도, 윤리, 안전, 업계 생존 환경 조성 등 문제들이 첩첩산중이다. 레벨3 이상 자율 주행차가 자유로이 오가려면 주변 차량 동선뿐만 아니라 AI가 보행자의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보행자 패턴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가능하도록 하는 개인정보보호법 전면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자율 주행차가 과속·신호 위반 등 교통 법규를 위반했을 때 과태료를 부과할 대상도 명확하지 않다. 현행 도로교통법이 운전자만을 법규 위반의 주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과실에 대한 책임 주체도 명확하지 않다. 국토부 관계자는 10월 27일 열린 심포지엄에서 “책임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제조사이지만 운전자가 경고 상황에서 제어권을 받지 않으면 운전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운전 제어권이 운전자에게 넘어가는 몇 초 동안 운전자가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따라 사고 책임을 누가 질지가 갈린다는 얘기다. 결국 당시 기록과 상황을 면밀하게 따져봐야 알 수 있는 셈이다.
스타트업 생존이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자율 주행 사업은 막대한 현금이 투입되는 반면 레벨4의 상용화는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예컨대 2025년 레벨4 자율 주행차 관련 법규가 제정된다고 하더라도 인증받고 판매를 개시해 기업의 수익이 발생하는 시점은 2027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업체로서는 5년 이상을 수익 없이 견뎌내야 하는 셈이다.
실제 포드와 폭스바겐의 투자를 받던 자율 주행 선두 주자 아르고AI는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창업 6년 만에 사업을 중단했다. 포드는 올해 3분기 실적에 아르고AI가 개발하는 자율 주행 시스템 투자 손실 27억 달러를 반영했다. 로이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회의론이 퍼지면서 신규 투자나 인수를 희망한 회사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문을 닫았다”고 분석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