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지고 전기 팔더니 ‘30조 적자’…한전 요금 인상 억눌러 부메랑

채권 시장 블랙홀로 지목된 한전채
과도한 차입 경영이 불러온 자본 시장 나비 효과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중구 한국전력공사 서울본부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올해 3분기 7조5309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면서 3분기까지 22조원에 육박하는 누적 적자를 냈다. 난방 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철인 4분기에는 적자 폭이 더 확대돼 시장에선 올해 한전의 연간 적자 규모가 3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전은 올해 4·7·10월 세 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하지만 전기를 비싸게 사 싸게 파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적자가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나고 있다. 정부는 내년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전기요금 인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전의 적자 원인은 전기를 팔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전쟁 등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액화천연가스(LNG)·유연탄 등 연료비·전력 구매비는 2배 이상 늘었지만 물가 상승을 우려한 정부 전기요금 인상 억제로 전력 판매 가격이 그만큼 인상되지 않았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비싸게 사 싸게 판다’ 적자 눈덩이

한전의 전력 사업은 민간 발전 회사에서 전력을 구입한 뒤 국민에게 판매하는 구조다. 한전이 발전 회사에서 전기를 구매할 때 적용하는 전력 도매 가격(SMP)은 올해 상반기 기준 킬로와트시(kWh)당 169.3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7% 상승했지만 전기 판매 단가는 110원에 그쳤다. 1kWh를 팔 때마다 약 60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한전은 부족한 운영 자금을 위해 회사채로 조달하고 있다. 올해 발행된 한국전력 회사채(한전채) 규모는 25조원으로, 지난해 전체 발행액(10조3200억원)의 2.5배에 달한다. 최근 한전채는 채권 시장을 교란시키는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레고랜드 채무 보증 불이행 사태로 금융 시장이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 무더기 발행된 신용 등급 ‘AAA’급 한전채가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일반 회사채가 외면받는 구축 효과를 불러와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돈맥경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한전의 대규모 적자가 자본 시장을 뒤흔드는 폭풍을 일으킨 셈이다.

금융 당국은 채권 시장의 블랙홀인 한전채를 분산해 발행하고 필요한 자금을 은행에서 대출받게 해 자금 경색을 풀겠다는 방침이다. 한전채 발행을 줄이기 위해 한도 증액도 추진하고 있다. 누적된 적자로 추가 발행이 불가피한 한전채 문제를 해소하려면 결국 전기요금 인상 등 근본적인 대책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빚 돌려 막기’ 한계…깊어지는 한전 딜레마

한전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는 연료탄 가격, SMP, 전력 판매 단가 등 세 가지다. 전력 판매 단가는 매출의 규모를 결정 짓고 유연탄 가격과 SMP는 영업비용 항목 중에서 각각 연료비와 구입 전력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전의 대규모 적자를 완화하기 위해 민간 발전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SMP 상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선 SMP 상한제가 도입되면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라 고공 행진하던 전력 도매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져 올해 30조원 적자가 전망된 한전의 재무 상황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민간 발전업계는 SMP 상한제가 발전 사업자들의 수익을 빼앗아 한전의 적자를 채우기 위한 방편이고 시장 경제 질서를 훼손하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어 업계를 설득하는 것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전력 생산의 약 20%를 맡고 있는 SK E&S·포스코에너지·GS EPS 등 민간 발전 회사들은 SMP가 높을수록 수익성이 높아지는 구조다. 상한선을 규정하면 민간 발전 회사들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1월 말 산하 전기위원회를 열고 관련 고시와 규칙 개정안을 의결하고 12월 1일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직전 3개월간의 평균 SMP가 그 이전 120개월(10년)간 평균 SMP의 상위 10% 이상일 경우 1개월간 SMP에 상한을 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11월 SMP 상한제 적용 여부를 따진다고 가정하면 직전 3개월(8∼10월)의 가중 평균 SMP는 kWh당 227원이다. 직전 10년간 가중 평균 SMP의 상위 10% 가격은 kWh당 154원으로, 최근 3개월 SMP(227원)가 더 높아 상한제 발동 조건을 충족한다.

직전 10년간 kWh당 SMP는 106원으로, 여기에 1.5를 곱해 산출되는 SMP 상한제 적용 단가는 158원이다. 지난 10월 SMP가 kWh당 253원인 점을 고려해 상한제를 적용하게 되면 가격이 95원(37.5%) 떨어지는 셈이다. SMP 상한제가 12월 시행되면 이달 가중 평균 SMP가 적용 단가 산정에 포함되기 때문에 하락 폭은 소폭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의 한 오피스텔 계량기를 주민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구원투수 나선 정부, 요금 인상 불가피

산업부 행정 예고 자료에 나온 SMP 상한제 비용 편익 분석에 따르면 SMP 상한제 시행으로 한전이 월 1422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3월 한전의 전력 구입 비용은 7조3512억원에 달했던 만큼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과 함께 결국 전기요금 현실화가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전의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내년 전기요금 인상에 무게를 두고 요금 단가를 구성하는 여러 항목 중 하나인 기준 연료비부터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전기요금은 기본 요금·전력량 요금(기준 연료비+기타비용)·기후 환경 요금·연료비 조정 요금 등으로 구성된다.

기준 연료비는 최근 1년 치 연료 가격을 바탕으로 책정된다. LNG 가격은 올해 1∼9월 톤당 평균 132만5600원으로, 전년 동기 평균 가격인 61만6400원보다 2배 넘게 올랐다.

정부는 내년도 기준 연료비를 kWh당 40~50원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이 kWh당 130원대에 전기를 판매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기준 연료비로만 전기요금이 최대 40% 가까이 인상되는 셈이다. 기준 연료비와 함께 연료비 조정 단가를 인상하는 안이 함께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혜정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올해 말 결정될 2023년 기준 연료비의 인상폭이 얼마가 될 것인지가 관건”이라면서도 “다만 2023년 추가적인 기준 금리 인상과 높은 인플레이션율이 전망되고 있어 원칙대로의 기준 연료비 인상(kWh당 최소 50원 추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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