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침투 테크놀로지 1: 그대 안의 마이크로칩[몸의 정치경제학]
입력 2022-12-06 09:53:28
수정 2022-12-06 09:53:28
예술적 실험의 대상이자 청년층의 하위 문화로, 또 소비 생활의 트렌드로
트랜스휴머니즘의 도래 695%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한국. 만약 인체에 삽입된 작은 칩 하나가 스마트폰의 모든 기능을 대체한다면 굳이 뒷주머니를 늘어뜨리는 쇳덩어리에 집착할 이유가 있을까. 인체 침투 테크놀로지의 유혹은 간결하다. 극소형화·초경량화 그리고 안전 내장화다. 임플란트 마이크로칩의 대표적 사례는 바로 베리칩(VeriChip)이다.
2004년 상용화된 베리칩은 신체 삽입형 원·근거리 무선 생체 인식 기기다. 고유 일련번호를 가진 칩을 주사로 투입하면 필요에 따라 관계자가 대상의 식별 정보, 의료 기록, 동선 등을 원거리에서 파악할 수 있다. 쌀 한 톨 사이즈의 마이크로칩을 손목이나 여타 신체 부위에 간단히 삽입하는 이 환상의 테크놀로지가 위치 추적이나 의료적 용도로만 제한될 리가 없다.
단적으로 2004년 멕시코의 법무부 장관과 비서진이 베리칩 수술을 받았는데 그 목적은 범죄 방지 정보센터의 데이터에 원거리 접속을 위해서였다. 이에 앞서 2003년 멕시코에서 다수의 아동들에게 유괴 방지용 베리칩을 삽입하기도 했다. 당시 멕시코에서 1998년부터 5년간 대략 13만 명의 아동들이 유괴돼 불법적인 장기 적출과 유통의 희생자로 전락하자 이에 대한 처방으로 베리키드(VeriKid)라는 마이크로칩이 부상한 것이다.
아동만이 아니었다. 납치 사건을 두려워한 멕시코의 부유층들 사이에서 보안 추적 업체 세가(Xega)가 만든 인체 삽입 칩이 유행했다. 2003년 이후 인공위성 기반의 위치 추적기(GPS)가 보편화되자 세가는 전 가족을 대상으로 한 삽입 디스카운트 행사를 벌이며 사회 불안과 공포를 이용한 상술을 발휘한다.
맥시코에서는 개당 5000달러(약 680만원)에 해당하는 신체 삽입 칩이 유행했다는 소식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GPS 칩은 그 후 보편화됐고 휴대 혹은 착용 트래커(tracker)가 온라인에서 단돈 5000원에 구매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마이크로칩 임플란트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에게 먼저 시작됐다. 1985년 특허 이후 1989년 영국에서 처음 반려동물 신체에 삽입됐고 그 후 축산업계로 그 용도가 확대됐다. 현재 야생 동물 관리·관찰, 가축 자산의 도난 방지, 질병 관리·유통, 반려동물 건강 정보와 위치 추적, 유기 동물 구조와 보호 목적에 이르기까지 그 활용 범위가 넓어져 있다.
프랑스는 이미 1999년부터 4개월 이상 된 모든 개들에게 임플란트가 의무화됐고 미국은 2004년 기준으로 이미 3000만 마리의 반려동물들에게 ‘다시 집으로(Home Again)’ 칩이 사용됐으며 매년 100만 마리의 가축들에게 무선 식별 칩이 추가되고 있다.
한국에선 2014년부터 준주거지 이상의 지역에 있는 2개월 이상 반려견에 한정해 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다. 내장형과 외장형 무선 식별 장치 중 선택할 수 있으므로 체내 마이크로칩 삽입이 강제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체 삽입 칩의 기능과 응용 범위가 넓어지자 논란도 증폭되고 있다. 2013년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서는 인체 정보를 담은 손 스캐닝 거부를 둘러싼 법정 사례가 있었다.
해당 노동자는 사측이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무시하고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표지(MOB : Mark of the Beast)인 신체 바코드 인쇄를 강제했다고 고소했고 지방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실제로 유럽과 북미에서는 의외로 많은 기독교 신도들이 이와 유사한 이유로 신체 바코드와 체내 삽입 칩을 거부한다고 한다.
또 2017년 미국 위스콘신 주 한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무료 임플란트를 시행했는데 그 목적은 직원들의 동선 파악과 근무 패턴 측정이었다고 한다. 이에 일부 직원이 반발했고 인권 단체와 변호사 중심으로 고용주에 의한 칩 임플란트 금지 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발생했다.
그 결과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와 위스콘신을 포함한 11개 주가 일체의 비(非)동의 마이크로칩 삽입을 불허하고 있다. 네바다·인디애나 등 5개 주에서도 개인 사업주나 국가·공공 기관에 의한 영구적 식별 장치의 비자발적 삽입이 불법화된 상태다.
테크놀로지의 신체 침투에 대한 정서적·종교적 저항은 코로나19 창궐과 함께 격화됐다. 2020년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기획이었고 이는 미세한 칩을 넣은 백신을 세계적으로 강제하기 위한 공작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루머는 페이스북을 타고 바이러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고 약 4만 건 이상이 공유된 시점에서야 페이스북 본사는 이것이 가짜 뉴스라고 공식 표명했다. 전형적인 음모론이지만 침투 과학 기술과 그것을 통한 인간 지배에 대한 대중적 공포가 극명히 드러난 사례였다.
대중문화로서의 보디 해킹(body hacking), 소비 문화로서의 칩 임플란트
이와 반대로 유럽과 북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칩 임플란트를 21세기형 타투나 피어싱 쯤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우세하다. 그래서 신체 수정(body modification)이 예술적 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청년층의 하위 문화로 또 소비 생활의 트렌드로도 번지고 있다.
영국과 유럽을 거점으로 21세기 초반에 태동한 사이보그 아트가 그 사례다. 사이보그 아트는 연재 2편에서 언급한 스텔락과 닐 하비슨 등 자신의 몸을 인터넷과 연결하며 증강 신체를 구현한 ‘셀럽형’ 사이보그에서 트랜스휴먼의 영감을 받았다.
아티스트들은 사이버네틱 임플란트를 통해 신체에 새로운 감각을 이식, 추가함으로써 신체 자체를 창의적 활동, 즉 예술의 대상으로 삼았다. 나아가, 그렇게 새로 창조된 혹은 향상된 감각으로 별도의 예술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첨단 기술로 신체를 수정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은 임플란트 칩의 보급을 기화로 테크노 시크(techno chic) 패션이나 ‘DIY 보디 해킹(Do-It-Yourself body hacking)’ 같은 대중문화로 전이되기도 한다.
일명 ‘칩걸(chip girl)’로 알려진 버건디 월러 씨는 현재 틱톡에서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DIY 보디 해커다. 가정 주부인 월러 씨는 정보기술(IT) 전문가 남편이 직접 디자인해 준 마이크로칩 임플란트로 그녀의 가사일이 얼마나 편해졌는지를 뽐낸다. 또 다른 비디오에서 그녀는 남편의 칩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계좌와 웹사이트, 신용카드 정보를 다 갖췄다고 질투하며 자신의 칩도 업그레이드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그녀가 원하는 칩은 이미 시판 중이다. 영국-폴란드계 임플란트 회사 월렛모어(Walletmor)는 세계 최초로 지불 전용 칩 임플란트를 시작했다. 자사 웹사이트에 올라온 광고 문구는 이렇다. ‘현금·카드·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스마트 페이는 잊어 버리세요. 이제 당신의 손으로 직접 지불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 월렛모어 지불 임플란트를 받으시고 미래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디세요.’ 그 미래행 티켓은 ‘단돈’ 249유로(약 35만원)다.
마이크로칩 임플란트는 세계적으로 대략 5만 명이 삽입했다. 그중 8%에 해당하는 4000명이 스웨덴인이고 비용은 주사기 주입술과 칩을 포함해 180달러(약 22만원)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에 삽입된 칩은 집과 사무실 출입, 열차 티켓과 소매품 구매, 비상 연락처는 물론 SNS 프로파일 저장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칩은 현재 2KB 정도의 용량이고 보안을 위해 사용시 발광다이오드(LED) 점등 기능도 갖췄다.
스웨덴에서 칩 임플란트가 강세를 보이는 데는 정책적 영향도 있다. 2021년 스웨덴 정부가 해외 여행 시 코로나19 백신 정보 보유를 필수화하면서 칩 임플란트 환자가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 또 2023년까지 ‘무현금 사회’를 추진하고 있는 덕택에 크레딧카드 대용 기능을 갖춘 칩 임플란트가 더 탄력을 받게 됐다. 스웨덴의 현금 사용률은 2010년 40%에서 2020년 15%로, 2022년 8%로 떨어진 상태다.
제조회사 바이오핵스(Biohax)는 원거리 전파 통신인 RFID 대신 근거리 통신(NFC)을 채택함으로써 외부 도·감청, 데이터 낚아채기에 대한 보안성을 높였다. 하지만 바이오핵스의 CEO는 NFC가 종국에는 스마트폰이 하던 대부분의 기능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에 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인체 기기(body device)’라는 용어를 접하니 신체 인터넷(IoB)의 그림이 더 명확해진다. 데스크톱→스마트폰→마이크로칩으로 이어지는 극소형화·초경량화·내장화의 추세는 휴대(portable)→착용(wearable)→신체 침투(insertable) 수순을 동반했다. 지금 당신의 몸은 IoB를 맞이할 준비가 됐나.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