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로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
화석연료 사용으로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온난화 현상이 지구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 주형로 위원장은 "기후 위기 시대를 극복할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친환경 농업에 있다"고 말한다.
평생 친환경 농업 발전을 위해 힘써 온 그는 전국 최초로 친환경 벼 오리 농법, 메기 농법을 고안하고 논두렁 물막이 판을 보급한 바 있다. 그는 2020년 1월 위원장에 취임한 이후 안정적인 친환경 농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근본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식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기후 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의 시대에서 인간과 지구가 상생하는 ‘지속 가능한 먹거리’의 답이 친환경 농산물에 있다고 강조했다.
친환경 농산물(유기농, 무농약 농산물)은 일반 농산물과 어떤 차이가 있나.
일반 농산물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해서 재배한다. 무농약은 화학비료를 권장량의 1/3 이하로 사용한 농산물이다. 유기농은 3년 이상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토지에서 일체의 화학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농산물을 뜻한다. 퇴비 등의 천연비료는 사용이 가능하다. 가장 최종 단계는 생태순환 농산물이다. 퇴비도 쓰지 않고 재배를 땅의 힘에 맡기는 것이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직불금 등의 제도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지 한 농가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공익적인 차원이다.
지난 9월 제1회 친환경농업인전국대회가 열렸다. 당시 이야기가 오고 갔나.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가 과정 중심으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현재 인증제는 수확물에서 잔류농약을 검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밭을 새로 구입해 경작하는 경우, 유기농 경작을 처음 시도하는 경우, 인근에 농약을 사용하는 밭이 있는 경우에는 잔류 농약이 검출되는 경우가 많다. 의도치 않는 결과로 친환경 인증이 취소되면 농민은 금전적·정신적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재배 과정에 초점을 맞춰 인증을 부여하는 과정 중심 인증제를 도입하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현재 학자 등 전문가와 농민, 소비자로 구성된 공동대응체를 꾸려 개편안을 정부에 강력하게 건의하고 있다.
과정 중심의 친환경 인증제가 왜 필요한가.
한국은 전세계에서 농약 사용량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다. 하루아침에 무농약, 유기농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땅이나 농민도 체질개선이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전세계적으로 환경오염이 심화되는 상황이기에 토양 자체에서 화학물질이 검출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의 인증제는 수확물에 400여 가지 농약 검사를 실시하고, 미량의 농약만 검출되어도 인증을 취소하는 구조다. 유기농업에 뜻이 있어서 시작한 사람이라고 해도 벽을 넘기가 어렵다. 현재 전체 농업에서 유기농업의 비율이 5%가 채 되지 않는 상황인데, 누가 의지를 가지고 유기농업을 지속할 수 있겠는가.
한국이 농사 과정에서 특히 농약을 많이 사용하게 된 배경은.
1960년대 국가 경제발달 계획에서 농업의 목표는 식량 증산이었다. 더 많은 수확물을 얻기 위해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장려했다. 이때의 관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패러다임을 바꿔야할 때다.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수확량을 늘리는 다수확이 아니라, 수확이 적더라도 자재를 적게 쓰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과수확으로 잉여 농산물을 처분하거나 하는 등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소비자는 비싼 가격 때문에 친환경 농산물보다 일반 농산물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친환경 농업은 화학 비료 대신 퇴비를 사용하는데 가격이 10배 정도 차이가 난다. 또 기계 대신 사람이 직접 뿌려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도 발생한다. 두 농산물 간의 가격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공익적·다원적 가치를 보존하는 차원에서 지원금을 통해 친환경 농산물과 일반 농산물 사이의 가격차를 10% 정도로 줄여야 한다. 가격 부담으로 일반 농산물을 선택하던 소비자들의 구매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가 많아지면 생산도 늘어난다. 일반 농업에서 유기농 농업을 전환하는 농민도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라고 본다.
기후 위기의 해법으로 친환경 농산물 섭취를 꼽았다.
21세기는 미생물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미생물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따라 인간의 생사가 달려 있다. 전염병 역시 미생물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본다. 그 균형을 맞추려면 친환경 농법이 생태계 순환을 이끌고 생물 다양성을 보존해야 한다. 흙 속의 미생물이 살아나면서 식물이 살아나고 이를 섭취하는 동물, 그 동식물을 먹는 인간이 함께 살게 되는 것이다. 이 순환 안에서는 분변도 폐기물이 아니라 자원이 된다. 그러나 농약과 화학 비료를 사용하면 이 선순환을 가로막는다.
한 가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다. 벌레가 많기 때문에 농약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비료를 쓰기 때문에 벌레가 늘어나고, 이를 잡기 위해 농약을 많이 쓰게 된다. 반대로 자재를 적게 쓰면 벌레도, 농약도 줄일 수 있다. 자연과 땅 자체의 힘을 믿어야 한다.
농업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비자도 ‘공동 생산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책임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어릴 때부터 농업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기 위해 교육 과정에 농업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켜야 한다. 현재 지도를 맡고 있는 ‘찾아가는 논 학교’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는 학교에 벼를 심고 아이들에게 벼의 일생을 지켜보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이 좀처럼 볼 일 없는 광경이기에 즐거워하기도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쌀의 소중함을 체득한다. 인성 교육의 효과도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야 말로 거짓 없는 농업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학교는 지자체로부터 ‘욕설 없는 학교’ ‘폭력 없는 학교’ 등에 선정된다. 농업을 경제적인 가치로만 환산해서는 안 된다. 교육과 환경, 문화 예술적 가치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앞선 가치들이 존중받으면 경제적 효과는 자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다. 미디어에서도 농업의 가치를 다뤄야 한다고 본다.
이밖에도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의 활동 계획이 있다면.
식생활이 변화하면서 갈수록 쌀 소비량이 줄고 있다. 다양한 가공식품을 개발하는 데 해법이 있다고 본다. 현재는 생협과 함께 쌀로 만든 라면을 개발하고 있다. 그동안 쌀로 만든 가공식품이 많았지만, 쌀 함유량이 적어서 큰 의미가 없었다. 예를 들어 시중에서 판매하는 쌀빵은 원재료 중 쌀이 최소 5% 이상 포함되면 쌀빵이라고 표기할 수 있다. 적어도 50% 이상의 원재료를 포함할 때 쌀 가공식품으로 분류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베트남에서 쌀국수를 소비하듯이, 한국도 충분한 쌀 소비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사진 = 지다영
글 = SRT매거진 김은아 기자 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