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비윤’ 싸움만 보이는 집권당 대표 경선판[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2-12-19 10:25:02
수정 2022-12-19 10:25:02
야당과 예산안, 법안 놓고 ‘건곤일척’ 대결 와중에 ‘당권 잿밥’에만 관심…‘웰빙 체질’ 못 벗어
홍영식의 정치판2023년 2월 또는 3월로 예상되는 집권 여당 국민의힘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후보들이 뛰고 있다. 이미 출사표를 던졌거나 던질 예상인 후보들은 10명 가까이 된다. 권성동 의원과 김기현 의원, 나경원 전 의원,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윤상현 의원, 조경태 의원,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나다 순) 등이 움직이고 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도 거론되지만 윤석열 정권 초반 기틀을 다지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아 이들이 경선에 뛰어들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당내에선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표심을 겨냥해 보다 젊은 후보들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어 후보들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 대표의 임기는 2년이다. 새 대표가 2023년 2월 또는 3월에 뽑힌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2025년 2~3월까지 대표직을 수행한다. 2014년 4월 총선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윤석열 정부로선 총선 승리가 절실하다. ‘여소야대’ 판도를 바꿔 놓지 못한다면 임기 끝까지 야당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국민의힘 새 대표의 역할이 막중하다. 대표 개인으로선 총선 공천권도 쥐게 돼 권한도 크다.
하지만 대표 경선을 둘러싸고 국민의힘 내 상황을 보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당을 어떻게 이끌어 가겠다는 비전보다 ‘윤심(尹心 : 윤석열 대통령 마음)’을 두고 ‘친윤’ 대 ‘비윤’ 대립이 심화되고 있고 전대 일정이 잡히지 않았는데도 벌싸부터 ‘경선 룰’을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수도권 대표론’을 두고서도 찬반 양측이 벌떼같이 달라붙어 싸우고 있다. 더욱이 야당과 예산안·법안 등을 놓고 치열한 대결이 펼쳐지는 와중에 당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는 후보들이 한가하게 ‘당권’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친윤 대 비윤, 수도권 후보·전대 등 놓고 뒤엉켜 싸워
대표 자격 문제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대선 주자가 당 대표로 나서는 게 합당하느냐의 문제다. 윤 대통령은 부정적이다. 윤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 관심 있는 인사들이 당 대표가 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주자, 대표 불가론’은 총선 공천과 관련이 깊다. 대선 주자가 당 대표가 돼 공천권을 행사하면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당의 분란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불가론의 배경이다. 대선 경선에서 유리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물들을 선택하려 하면 공정하고 경쟁력 있는 공천이 어렵다는 것이다.
친윤 쪽이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정권 초반인데 대선 주자가 대표가 되면 차기 권력 쪽으로 당 중심이 이동할 수 있고 대통령과 맞서는 형식으로 자기 정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윤계의 한 의원은 “김영삼 정권 시절 대통령과 사사건건 부딪친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를 보면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윤 대통령은 검찰 출신으로서 정치권의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총선을 통해 안정적인 국정 철학을 뒷받침할 우군을 국회에 많이 들어오게 하고 호흡을 잘 맞출 수 있는 대표가 필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에게 공천은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선 후보로 꼽히는 안철수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등은 반발하고 있다. 대선 후보가 대표가 돼 강한 리더십을 갖고 총선을 지휘하면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 더 유리하고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논점은 ‘수도권 대표론’이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한 지역 행사에서 당권 주자들을 일일이 거명한 뒤 “(당원들의) 성에 차지 않는다”며 “지역구 의석의 절반이 있는 수도권에서 대처가 되는 대표여야 한다”고 말한 게 격론을 불러일으켰다. 당장 수도권·비수도권 주자들이 충돌했다. 친윤 핵심인 장제원 의원은 “원내 현안이 얼마나 많은데 왜 불필요한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심판을 봐야 할 분이 기준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날을 세웠다.
주 원내대표는 “원론적인 발언”이라며 한 발 뺐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 차출론과 연관지어지면서 논란은 이어졌다. 급기야 윤 대통령이 “한 장관은 정치할 준비가 안 됐다. 법무부 장관 직무를 수행하는 데 방해가 돼선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고 한 장관도 “장관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분명히, 단호하게 말씀드린다”고 일축하면서 차출설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외부 수혈론이 나온 것 자체가 집권 여당의 빈약함과 허약한 체질만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오죽 사람이 없으면 저러느냐’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야당 관련 수사가 한참 진행되는 와중에 ‘차출설’이 나왔다는 것 자체도 수사의 공정성 논란을 불러올 수 있어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대표 경선 룰을 두고서도 충돌하고 있다. 현행 룰은 당심과 민심 비율이 7 대 3이다. 국민의힘 당규 제43조엔 ’선거인단(대의원·책임당원·일반당원)의 유효 투표 결과 70%, 여론 조사 결과 30%를 반영해 최다 득표한 자를 당 대표로 결정한다’고 규정돼 있다. 친윤 쪽에선 이를 9 대 1로 개정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도 “당원의 역할과 권한을 반영해야 한다”며 전대 룰 조정을 시사했다. 일반 국민 여론 조사 때 민주당 지지자들이 역선택해 경선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즉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표 경선을 좌지우지하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친윤과 대립하고 있고 당원보다 일반 국민 지지율이 높은 안철수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유 전 의원은 “축구하다가 갑자기 골대 옮기는 법이 어디 있나. 삼류 코미디 같은 이야기”라고 반발하고 권성동 의원이 “자의식 과잉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 결합하면 피해망상이 된다”고 거친 말을 쏟아내면선 막장 경선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巨野 앞에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윤심 팔이’논쟁
문제는 민주당과 법안·예산안을 놓고 건곤일척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와중에 사사건건 충돌했다는 점이다. 각종 법안과 예산안이 야당의 뜻대로 된다면 윤석열 정부 초반부터 국정 운영이 난관에 부닥치게 된다. 거야(巨野) 앞에 국민의힘이 똘똘 뭉쳐 대응해도 모자랄 판에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인 것이다. 더욱이 아직 전대 일정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인데도 집권 여당의 임무를 망각하고 고질적인 ‘웰빙 체질’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다.
웰빙 체질은 한국전력 공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시급한 법안 표결에 국민의힘 의원 115명 중 절반 가까운 57명이 불참해 부결된 데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여야 합의로 법안이 상정돼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투표에 대거 빠진 것이다. 너무나 안이한 행태다. 이런 와중에 친윤계가 주도해 국민의힘 소속 의원 115명 중 65명이 가입한 ‘국민공감’이 출범해 세를 과시한 것도 볼썽사납다. 주자들이 뒤엉켜 ‘윤심 팔이’ 싸움을 벌이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이미 국민의힘은 집권 직후부터 3~4개월을 집안싸움을 하느라 집권 여당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선거에 연승한 정당이 두 번이나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것도 비정상적이다. 그런데도 정권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시기에 여전히 ‘비상’은 보이지 않고 ‘당권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
홍영식 대기자 및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