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CEO의 조건…관찰·통찰·성찰

[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라 포르나리나(제빵사의 딸)’란 그림이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3대 화가 중 한 명인 라파엘로가 자신의 연인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라파엘로를 상징하는 ‘균형과 명료함’ 외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관찰력입니다.

라파엘로는 38세에 죽었고 그림 속 여인은 그가 죽자 수도원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녀도 수도원에서 1년 6개월 후 숨을 거둡니다. 수백년이 흘러 이 그림을 다시 화제의 작품으로 만든 것은 의사들이었습니다. 일부 의사들은 “라파엘로는 그림에 자신의 연인도 곧 죽음을 맞게 될 것을 암시했다”는 취지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왼쪽 가슴에 결절이 있고 피부색에 음영이 짙다는 점 등을 들어 이 여인이 유방암으로 죽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생존 기간은 3년이고 이 그림이 그려진 지 3년 후 이 여인은 사망했습니다. 미술 평론가들은 “천재 화가의 관찰력은 그녀의 암 흔적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관찰은 당시 화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르네상스 화가의 임무는 가시적 세계를 재현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관찰이 화가들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자동차의 도시 하면 어디가 떠오르십니까. 세계 자동차의 수도로 불렸던 디트로이트입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의 기초가 된 분업 구조를 구현한 포드의 첫째 자동차 조립 공장은 디트로이트가 아닌 시카고(디어본)에 있었습니다. 헨리 포드는 어느 날 시카고 도축장을 방문합니다. 이곳을 돌던 포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도축장 천장에 설치된 레일이었습니다. 작업자가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작업의 대상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그의 머리는 밝아졌습니다. 자동차를 모두 수작업으로 조립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에게 확신을 준 것은 유통 업체 시어즈로벅의 통신판매센터였습니다. 수많은 주문 엽서가 컨베이어벨트를 돌고 있었고 각 주별로 담당자들이 앉아서 자기가 맡은 주의 엽서만 분리하는 것을 보고 확신을 얻었습니다. ‘사람의 이동이 아닌 작업 대상의 이동.’ 1913년 4월 디어본 하이랜드파크 자동차 공장에서 이동식 조립 라인과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헨리 포드의 관찰은 현대적 대량 생산 체제를 열었습니다.

관찰은 종종 위대한 통찰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힘입니다. 1970년대 스티브 잡스는 언젠가 책 한 권 크기의 컴퓨터가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당시 컴퓨터는 방 한 채 크기였습니다. 1979년 그는 제록스 팰러앨토 연구소에서 미래를 발견합니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였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훔치는 데는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잡스는 이를 적용한 컴퓨터인 매킨토시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지금도 PC는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성의 이병철·이건희 회장이 1970년대부터 반도체 사업을 준비한 것도 통찰의 결과였습니다. 관찰이 오랜 경험 그리고 깊은 생각과 합쳐지면 통찰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경영자들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미래를 보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뇌가 몸살이 걸릴 때까지 생각하라.” 그에게 생각 중독자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입니다.

관찰·통찰 다음 필요한 것은 성찰입니다. 1869년 이집트 수에즈 운하가 완공됐습니다.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 인류의 항로를 바꿔 놓았습니다. 총감독자는 프랑스의 페르디낭 드 레셉스였습니다. 12년 후 그는 파나마 운하 공사를 맡았습니다. 수에즈 운하에 적용한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지만 수많은 사람이 죽고 결국 실패했습니다. 수에즈 운하 밑은 모래였지만 파나마 운하의 바닥에는 바위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성공에 도취해 성찰을 도외시한 결과였습니다. 성찰은 실패에 대한 반성, 성공에 따르는 오만에서 벗어나는 강력한 출구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점검하는 것이 성찰입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2022년을 빛낸 최고경영자(CEO) 25명의 스토리를 다뤘습니다. 1년간 취재한 기자들이 각 분야에서 재무적·전략적 성과와 활약상을 기초로 선정했습니다.

2023년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들 합니다. 위기를 시스템이 극복한 사례는 없습니다. 사람과 CEO가 항상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현실을 제대로 보고 기회를 발견하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제대로 된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관찰·통찰·성찰의 과정입니다. 이것이 대혼돈의 시대를 헤쳐 나갈 CEO들의 무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닫습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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