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DLF 리스크 털었다…완승 이유 따져보니 [오현아의 판례 읽기]
입력 2022-12-27 17:28:01
수정 2023-01-09 17:54:42
대법원 “금융사 내부 통제 준수 위반 제재 근거 없다”
[법알못 판례 읽기]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해외 금리 연계 파생 결합 펀드(DLF) 손실 사태와 관련해 금융 당국으로부터 받은 중징계 취소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022년 12월 15일 손 회장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문책’ 경고 징계를 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금융감독원은 DLF 사태로 여러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중징계를 내렸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금융감독원의 방침에 변화가 생길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감원 “DLF 사태, 금융사 CEO 책임져라”
이번 사건의 핵심은 DLF 가격 하락의 책임을 금융사에 물을 수 있는지다. DLF는 장·단기 스와프 금리 또는 국고채 등 기초 자산 가격 변동률에 따라 투자 수익이 결정되는 파생 상품이다. 만기까지 기초 자산의 금리가 손실 기준 이상을 유지하면 수익을 얻지만 기준 아래로 내려가면 원금 전액을 손실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은행 측 예상과 달리 2019년 말 글로벌 채권 금리가 급락하면서 3000여 명의 소비자가 수천억원의 손실을 본 사태가 빚어졌다. 우리은행은 약 4012억원어치의 DLF 상품을 판매했다.
금감원은 사태의 책임을 펀드를 판매한 각 금융사에 물었다. 금융사가 DLF의 손실 가능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고 고객들에게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사실상 ‘불완전 판매’를 했다는 논리였다.
우리은행이 시중 금융사 중 DLF를 가장 많이 판 만큼 당시 우리은행장이던 손 회장 역시 징계 대상이 됐다. 금감원은 손 회장에게 ‘문책’ 경고를 내렸다. 금융사 임원이 문책 경고 이상의 징계를 받으면 금융사 취업이 3∼5년 제한된다.
금감원이 손 회장을 징계한 이유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 때문이다. 해당 법 제24조에는 ‘금융회사는 주주와 이해관계인 등을 보호하기 위해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돼 있다. 금융 당국은 DLF 상품 판매 과정에서 은행의 내부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1심 “규정 미비, 손 회장 징계할 수 없어”
손 회장은 금감원의 징계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선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강우찬)는 손 회장이 금융감독원장을 상대로 낸 문책 경고 등 취소 청구 소송을 원고 승소로 2021년 8월 27일 판결했다.
소송의 핵심은 바로 금융회사지배구조법 24조의 내용이었다. 금감원은 내부 통제 기준의 실효성을 문제 삼았다. 금감원이 내세운 손 회장의 징계 이유는 △판매 금융 상품 선정 절차 생략 기준 미비 △펀드 판매 후 내부 통제 기준 미비 △적합성 보고서 작성 시스템 미비 △사모펀드 관련 내부 통제 점검 체계 마련 의무 위반 △상품선정위원회 회의 결과 통지 보고 등 기준 미비 등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금감원의 해석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현행법상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할 의무’가 아닌 ‘준수할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금융사나 임직원을 제재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법에서는 금융사 내부 통제 기준을 ‘만들 것’을 강제하고 있지만 기준 자체가 만들어진 이상 이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금융사 법인이나 임직원을 제재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또한 재판부는 “감독 당국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사후적으로 묻기 위해 내부 통제 규범 마련 의무 규정을 이용하는 것은 법치 행정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금융사가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했는지는 형식적·외형적인 면은 물론 통제 기능의 핵심 사항이 포함됐는지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며 “5개 중 4개는 금감원이 잘못된 법리를 적용해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의 해석과 적용을 그르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금감원의 제재 이유 가운데 ‘상품선정위원회 회의 결과 통지 보고 등 기준 미비’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우리은행 측은 “9명의 위원으로 이뤄진 상품선정위원회를 운영했다”며 해당 처분 사유에 대해 부당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구조적 문제에 기인해 상품선정위원회의 의결 결과는 상품 출시 부서의 의도에 따라 수차례 왜곡됐다”며 “왜곡이 없었더라면 정족수에 미달해 출시하지 못했을 상품이 출시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런 문제점을 자세히 드러낸 것은 금융회사 일부 직원의 불완전 판매가 아니라 조직적 부당 행위가 개입돼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징계 수위에 대해서는 “적법한 것으로 인정되는 한 가지 사유 한도에서 상응하는 제재를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법’을 뛰어넘지 못한 ‘법리’
1심 재판부는 마지막으로 금감원이 징계 근거로 든 지배구조법과 하위 조항에 명확한 규정이 없어 혼선이 빚어졌다며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즉 법의 미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금감원은 항소하며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징계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나아가 처분 사유를 모두를 배척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우리은행이 ‘집합투자상품위탁판매업무 지침’을 마련하며 임직원 내부 통제 기준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와 방법 그리고 내부 통제 기준을 위반한 임직원에 대한 처리 등 법적 사항을 모두 포함시켰다”고 이 사건 처분 사유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상고했지만 대법원도 원심을 수긍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현행 법령상 내부 통제 기준 ‘준수’ 의무 위반에 대해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금융회사의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과 ‘준수 의무’ 위반을 구별해야 한다는 점을 최초로 설시(알기 쉽게 설명함)한 것”이라고 밝혔다.
[돋보기]
같은 사건 다른 판결…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의 미래는?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만 징계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당시 하나은행장이던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 역시 같은 내용으로 징계를 받았고 이에 불복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해외 금리 연계 파생 결합 펀드(DLF) 판매로 벌어진 일로 두 사건은 사실상 ‘판박이’다.
하지만 함 회장의 1심 판결 결과는 손 회장과는 정반대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순열)는 2022년 3월 14일 당시 부회장이던 함 회장과 하나은행 등이 금융 당국을 상대로 낸 업무 정지 등 처분 취소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번 재판부는 같은 법령을 두고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함 회장의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하나은행과 함영주 전 은행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불완전 판매를 방지하기 위한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시행령은 ‘실효성 있는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실효성’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도 마련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DLF 불완전 판매로 인한 손실이 막대한 데 반해 원고가 투자자 보호 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금융 당국이 중징계를 내린 것은 재량권 남용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함 회장 측은 이 같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항소심 결과가 뒤집힐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이미 대법원이 ‘현행 지배구조법상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과 준수 위반은 다르며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금융사나 임직원을 징계할 수 없다’는 기준을 확립한 이상, 1심 재판부의 해석을 고등법원에서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에서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