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사태 재현되나? 저축은행을 향한 잇단 경고

대출 규모 축소에 수수료 인하도 요구…업계 “부동산 PF 연착륙이 최우선 과제”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시내의 한 저축은행 창구의 모습.(사진=한국경제신문)


저축은행업계는 지난해 총자산 130조원을 넘어섰다. 하반기부터 지속된 금리 인상으로 시중 은행을 비롯한 저축은행의 예금 잔액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었다. 저축은행업계는 2022년에 대해 “중금리 대출 활성화, 디지털 혁신 가속화의 노력으로 중소기업과 중·저신용자를 위한 서민 금융회사로서 위상을 더욱 탄탄히 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연말 저축은행들은 조달 비용 상승으로 연말 대출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했다. 저축은행이 대출 문을 걸어 잠그자 자칫하면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사금융으로 향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불거지기도 했다.
‘최대치’로 오른 저축은행 중금리 대출 금리
이러한 대출 중단에 대해 금융 당국은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라며 유연하게 대응해 달라고 당부했다. 서민들의 자금줄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은행·금융협회 등은 지난해 12월 2일 ‘금융 시장 현황 점검 회의’를 열고 금융 시장의 주요 리스크를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금융 당국은 “금융회사의 건전성·리스크 관리 측면이 있지만 대출 취급 중단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출 취급 중단보다 여신 정책에 따라 여신 심사 기준을 강화하거나 서민 금융 우수 대부업자의 은행권 차입이 원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은행권과 협조하는 방식을 요청했다.

다만 금융위는 업계의 상황을 고려해 조달 금리의 변동 폭 만큼 1월부터 6월 적용될 민간 중금리 대출 상한을 높이기로 했다. 민간 중금리 대출 제도는 신용 하위 50%인 개인 대출자를 위한 제도다. 금융 당국은 중저신용자를 위한 자금 공급을 위해 민간 중금리 대출을 시행하는 금융사엔 인센티브를 부여해 왔다.

이에 따라 상반기 저축은행의 민간 중금리 대출의 금리 상한은 17.5%로 올랐다. 이는 금융위가 설정한 최대 금리 상한 한도까지 인상된 수치다. 금리 상한선이 오르면서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2 금융권은 조달 금리의 상승분을 중금리 대출로 반영할 수 있게 됐다. 일시적이지만 저축은행업계의 숨통이 트였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편 저축은행업계는 ‘빅테크’ 업체들을 향한 볼멘소리도 꺼냈다. 조달 금리 급등으로 업황이 나빠지면서 플랫폼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다.

저축은행은 토스·카카오페이 등 플랫폼을 통해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빅테크사에 일종의 수수료를 내야만 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대출 중개 플랫폼들은 저축은행에 1.7~1.8%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은행권은 0.4~0.5%로 상대적으로 저축은행이 높은 수수료를 내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비용 효율화 등을 고려해 특정 플랫폼에서 철수하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저축은행업계는 “모든 금융권이 동일한 방식으로 플랫폼을 이용하는 데도 동일한 시스템 이용 원가를 무시하고 업권 간 차별적인 중개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저축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에서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플랫폼을 통한 대출 취급 비율은 전체 대출의 절반을 넘어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축은행업계가 ‘작심 발언’을 한 것은 최근 시장의 여건이 악화되고 조달 금리가 급등하면서 중개 수수료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업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12년 전 ‘저축은행 사태’가 남긴 트라우마
지난해 연말부터 각종 기업 평가 기관들은 올해 저축은행이 조달 비용률 상승에 따른 순이자 마진(NIM) 하락에 의한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며 경고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약 12년 전 금융권을 얼어붙게 했던 2011년 ‘저축은행 영업 정지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저축은행 영업 정지 사태’는 물가를 잡기 위해 12개월간 기준금리가 다섯 차례 인상된 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고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부실화되면서 시작됐다. 이 사태로 금융 당국은 7개의 저축은행에 영업 정지 처분을 내렸고 이 과정에서 5000만원 이상 예금자와 후순위 채권 투자자들이 원금 손실을 겪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저축은행업계는 신뢰성을 크게 잃기도 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당시 저축은행 사태를 촉발한 주원인으로 여겨지는 부동산 PF가 부실화될 것이란 염려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2023년 한국 증권 회사의 사업 환경을 ‘비우호적’, 등급 전망은 ‘부정적’으로 제시했다. 한국신용평가도 2023년 증권업의 산업과 신용 전망을 ‘비우호적’,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금융권에서도 증권·캐피털·저축은행 등 4개 업종의 신용 등급 방향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기업 평가 기관들은 한국 부동산 PF와 브리지론의 위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업계는 PF의 바로 전 단계인 브리지론의 위험성에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에다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하락해 담보 가치가 떨어지면 자금 시장이 경색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국면이 장기화한다면 대출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해 부동산 PF 부실이 심화하면서 신용 위험이 커지고 자금력이 약한 금융회사의 자산 건전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올 한 해 저축은행업계는 부동산 PF 대출의 연착륙을 지원하는 것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았다. 오화경 저축은행중앙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PF 대출의 연착륙을 지원하고 저축은행의 유동성 관리와 리스크 대응 역량 강화를 지원해 변동성이 커져 가는 국내외 금융 시장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도 PF를 주요 리스크 요인으로 판단하고 선제적으로 관리할 것을 시사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부동산 PF, 해외 대체 투자 등 고위험 자산의 리스크를 집중 점검해 선제적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또 “대내외 리스크 요인별 상시 감시와 취약 부문 잠재 리스크 점검을 강화해 금융권의 위기 대응 능력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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