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젊은 세대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려면

[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2004년 11월 이헌재 경제부총리(재정경제부 장관)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논쟁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국민연금이 쟁점이었습니다. 이 부총리는 국민연금이 앞으로 수십년간 축적되는 만큼 기금 일부를 출산율을 높이는 사업 등 ‘한국판 뉴딜’ 정책에 활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국민연금을 담당하는 복지부 수장인 김 장관은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보장해야 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손댈 수 없는 자산”이라며 반대했습니다. 이 논쟁은 얼마간 지속됐습니다. 결국 국민연금 활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어서 이 부총리의 제안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멋지지 않습니까? 국가의 미래를 놓고 한 정부의 장관들끼리 철학이 담긴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김 장관은 복지부 장관으로서의 임무를 다했고 이 부총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한국 사회에 던져 승패도 일방적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최근 나경원 저출산고령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국가의 미래가 달린 중대사마저 정치의 대상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사건의 출발은 간단했습니다. 국가의 현안에 대해 장관급인 나 부위원장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를 대통령실이 연일 반박하고 나 부위원장은 결국 사표를 냅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를 수리하지 않고 해임해 버립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할 말이 많지만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한 미국 정치인이 얘기가 떠오릅니다. “정치인들의 문제는 국가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착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인 듯합니다. 민간 기업들마저 이 심각성을 알고 연구소를 차리고 빅데이터를 분석하며 해결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만큼 난제이기 때문에 더 많은 아이디어와 논쟁이 필요합니다. 그런 임무를 공식적으로 떠맡고 있는 조직의 수장이 한 발언이기에 조금 귀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다른 이율배반적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는 3대 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로 국민연금 개혁을 들고나왔습니다. 국민연금과 저출산 문제가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은 조금만 들여다본 사람들은 다 알 겁니다. 쉽게 얘기해 볼까요. 고령화로 국민연금이 고갈되는 시기가 빨라지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국민연금을 더 내고 덜 받거나, 받는 시기를 늦추는 게 개혁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저출산 문제가 튀어나옵니다. 국민연금 고갈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출산율입니다. 출산율이 조금만 높아져도 고갈 시기가 늦춰집니다. 이 동전의 양면을 무시한 채 국민연금 개혁만을 외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국민연금에 대한 MZ세대들의 반발을 다뤘습니다. 그들이 왜 국민연금을 불신하는지가 주요 내용입니다.

국민연금의 원리는 세대 간 부양입니다. 젊은 세대가 나이든 세대를 부양하는 것이죠. 하지만 현재 한국의 젊은 세대는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입니다. 그럼에도 부양해야 할 인구는 훨씬 많아집니다. 그런 젊은이들은 “내가 받아야 할 때 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오늘을 희생하면 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맞닥뜨립니다.

또 하나의 현실은 오늘의 힘든 삶입니다. 2020년 기준 20대의 평균 월급은 229만원, 30대는 344만원이었습니다. 이 수준에서 국민연금 몇 만원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30~40년 후 받게 될 국민연금 때문에 오늘을 희생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더 정제된 정책과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입니다. 최대 1800조원까지 쌓이게 되는 국민연금이 고갈될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활용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애를 낳을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이 돈을 안전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젊은이들도 젊고 힘들었던 시절 국가(앞 세대)로부터 무언가 받은 게 있어야 그 세대를 위해 연금을 내는 데 거부감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세대 간 국민연금 전쟁’을 막기 위한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한 당파가 투쟁해 얻은 전리품이 아니고 정치적 기획의 대상도 아닙니다. 시대의 도전에 맞서 힘겹게 일궈 온 결과물이자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넘겨 줘야 할 자산입니다. 인구 감소, 국가 소멸이라는 시계가 째깍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정치꾼이 아니라 정책가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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