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브랜드가 마음을 파고드는가 [놓치지 말아야할 한경비즈니스-9]

‘진심·혁신·기업가정신·선행’, 위기 극복할 주요 키워드

[스페셜 리포트]

한경비즈니스는 1년에 두 번 합본호를 냅니다. 설날과 추석 2주치를 한꺼번에 낸다는 말입니다. 기자들은 이때 약간은 숨을 돌릴 여유를 갖습니다. 물론 온라인 기사도 써야 하기 때문에 마냥 맘이 편할수 만은 없지만요. 이 정도로는 좀 아쉽다는 독자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한경비즈니스 편집진은 올해 썼던 기사 가운데 ‘시간의 간섭’을 받지 않는 기사들을 추려봤습니다. 공부해두거나 읽어두면 상식이 되거나, 트렌드를 이해할 수 있는 12개의 기사입니다. 이를 한곳에 정리했습니다. 연휴 기간 영상에서 벗어나 활자의 세계로 눈을 돌린 독자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편집자 주>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 판교 아지트 모습. 사진=허문찬 한국경제 기자

카카오의 이미지 추락은 극적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카카오에는 친근한 국민 기업의 이미지가 있었다. 많은 회사들이 카카오와 협업을 원했다. 무한한 사업 기회가 주어진 것은 그 결과였다. 사업 확장도 무난한 듯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카카오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이 등장했다. 카카오 택시에 대한 운전사들과 승객들의 불만이 그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골목 상권 침해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국민이 좋아했던 기업이 밉상이 되기 시작한 순간이다. 이용자(소비자)들의 마음이 식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용률은 여전히 높았다. 이를 기반으로 카카오뱅크 등 4개 자회사를 동시에 상장했다. 시장은 카카오의 탐욕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카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다. 그리고 금리 인상에 카카오와 상장 계열사의 주가가 급락하며 주주들의 마음도 떠났다. 여기에 최근 일어난 데이터센터 화재는 치명적이었다.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예상할 수 없는 사고”라는 아마추어같은 발언은 카카오에 대한 실망을 더했다.

마음이 떠난 이용자들은 카카오뱅크에서 돈을 빼고 다른 메신저를 깔고 다른 택시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카카오는 메신저 시장에서 마켓 셰어 1위다. 하지만 마인드 셰어를 급속히 잃어 가고 있다. 평판의 추락, 위기의 시작이다.

이상한 현상이다. 착한 기업,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열풍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 와중에 감동을 주는 기업은 새로 등장하지 않고 소비자들의 마음을 잃는 기업만 늘고 있다. 주주와 소비자 직원을 중시하지 않고 자신들의 뱃속만 채우는 탐욕, 이로 인해 발생한 각종 사고, 사고 발생 후 경영진이 보여준 무책임한 대응 등이 ‘밉상 기업’을 양산하며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그 리스트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명확하다.

한경비즈니스는 창간 27주년을 맞아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은 기업들을 다시 살펴보는 기획을 준비했다. 경제 위기에 이런 기업들이 더 잘 견뎌내고 때로는 위기 속에 새로운 스타 기업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키워드는 진심·혁신·기업가 정신·선행·위기 대응 등이다. 파타고니아와 타다 감동을 주는 기업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최근 세계적으로 큰 뉴스가 된 미국 의류 업체 파타고니아가 대표적 케이스다. 환경에 대한 집착으로 유명해진 미국 2위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최근 일가가 보유한 약 30억 달러의 회사 지분을 기후 위기 관련 비영리 재단(98%)과 신탁 회사(2%)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이제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가 됐다’고 적었다. 찬사가 쏟아졌다. 환경 보호와 새로운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파타고니아란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더 커지는 분위기다.

한국에서는 최근 다시 화제가 된 기업으로 타다를 꼽을 수 있다. 택시업계를 혁신하려고 나섰던 차량 공유 앱 서비스 ‘타다’는 2018년 등장했다. 하지만 택시업계의 반발에 2019년부터 지금까지 3년간 멈춰 섰다.

당시 여론은 갈렸다. 하지만 타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준 타다 편이었다. 한 회사의 영업 정지에 안타까워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혁신 기업에 대한 사망 선고’라며 타다를 강력 옹호했다. 택시를 이용하며 쌓여 온 불만이 타다를 통해 해결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이후 토스에 인수된 타다는 최근 부활을 꿈꾸고 있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타다 경영진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다시 사업의 불씨를 지필 수 있게 됐다.

토스 경영진은 타다를 인수하기 전 직원들에게 지나가는 듯 물었다고 한다. “타다 서비스에 대해 어떤 경험을 갖고 있는지요.” 긍정적 반응이 많았음은 물론이다. 토스가 타다 인수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 사건은 아닐지라도 경영진의 확신에 힘을 더해 줬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타다란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높은 점유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뢰성 높은 브랜드 살 확률 5.4배 마음을 파고드는 기업, 브랜드의 다양한 유형을 구분하기 위해 미국 사회 심리학자 수전 피스크의 매트릭스를 일부 활용했다. 그는 책 ‘어떤 브랜드가 마음을 파고드는가’에서 브랜드 매트릭스를 사분면으로 제시한다. 따뜻함과 차가움, 유능함과 무능함이 두 축이다. 따뜻하고 유능한 브랜드, 차갑지만 유능한 브랜드, 따뜻하지만 무능한 브랜드, 차갑고 무능한 브랜드 등이다. 피스크는 진화심리학을 들어 왜 브랜드 매트릭스가 중요한지 설명한다.

“악어의 가죽도 사자의 이빨도 없는 인간은 살아남았다. 원시 시대부터 생존에 필요한 감각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두 가지 감각이 가장 중요하다. 첫째는 무언가 다가오면 의도(따뜻함과 차가움)를 파악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유능과 무능)를 재빨리 간파하는 능력이다. 이 감각은 현대에 와서 브랜드에도 적용된다. 브랜드가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브랜드에 대한 감정도 인간에 대한 감정과 비슷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따뜻하고 유능한 브랜드에 대해서는 존경과 유대감을 느낀다. 유능하고 차가운 브랜드에 대해서는 질투와 시기감을, 따뜻하고 무능한 브랜드에 대해서는 동정과 연민을, 차갑고 무능한 브랜드에 대해서는 경멸감과 거부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피스크는 “사람들이 브랜드와 상호 관계를 맺는 시대가 왔다”며 “사람들과 심리적으로 교감하는 ‘사람 냄새’ 나는 브랜드에 소비자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가 인격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소비자들은 스스로 왜 이 회사 제품을 사야 하는지, 또 사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소셜 미디어가 없었던 시기에는 개인의 의사가 영향력을 갖지 않았지만 소셜 미디어가 활발하게 운용되고 있는 시기에 브랜드에 대한 평판은 예전처럼 잠깐 입소문으로 퍼지고 마는 것이 아니다.

그 평판이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이것이 실제적인 재무 손실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평판이 곧 돈인 시대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인 딜로이트가 2021년 10월 고객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해당 브랜드의 신뢰성을 높이 평가하는 고객은 다른 브랜드보다 해당 브랜드 제품을 선택할 확률이 5.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돈쭐’과 ‘까방권’의 뜻 한국에서는 몇 년 전 착한 기업 바람이 분 적이 있다. ‘갓뚜기’로 불린 오뚜기, ‘바보 LG’로 화제를 모은 LG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시장 점유율에선 2위이지만 신뢰도 평가에선 항상 경쟁사를 앞서는 결과를 받는다. 2019년 한국경제신문이 세계적 여론 조사 기관인 입소스, 한국 최대 온라인 패널 조사 기업인 피앰아이와 공동으로 조사한 소셜 임팩트 평가에서 LG전자는 가전 전 부문에서 경쟁사를 큰 격차로 따돌렸다. 라면 시장에서도 점유율 2위인 오뚜기가 소셜 임팩트 신뢰도에선 1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마인드 셰어는 특정한 계기가 주어지면 마켓 셰어로 언제든지 전환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자산”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기업들에 대해 누리꾼들은 제품을 구매해 ‘돈쭐(돈으로 혼쭐 낸다의 인터넷 용어)’을 내거나 흔히 ‘까방권(까임방지권)’ 등을 사용하며 브랜드에 대한 호감을 나타낸다.

대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마포구 인근의 작은 파스타 가게인 ‘진짜 파스타’는 한때 소비자들이 돈쭐내는 가게로 유명세를 탔다. 이 식당이 꿈나무카드를 소지한 청소년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겠다는 캠페인이 알려지면서 ‘착한 가게’를 돕자는 운동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이 식당은 원래도 줄 서는 맛집이었지만 2019년부터는 선한 영향력을 전국에 전파하는 가게로 유명세를 타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세계적인 마케터 제레미 D. 홀든은 “팬덤이야말로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고 작은 아이디어로 시장의 흐름을 단번에 뒤엎을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인물도 마찬가지다. ‘국민 MC’ 유재석 씨는 까방권의 대표 주자다. 무명 연예인을 챙겨준 보이지 않는 선행이나 수년간 지속된 기부 등으로 오랜 기간 방송인 브랜드 평판에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유재석 씨가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을 ‘믿고 보는’ 시청자들도 상당수다.위기를 기회로 만든 유능함과 따뜻함다시 첫째 질문으로 돌아가자. “한국의 모든 기업들이 ESG를 외치고 착한 기업 찾기에 나서는 소비자들이 있는데 왜 감동을 주는 기업들은 사라졌을까.”

전문가들은 표면적 변화를 지적한다. 한 컨설턴트는 “최근 전쟁 등으로 인해 환경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더 큰 요인은 한국 기업들이 ESG를 숫자로 인식하고 이 기준을 맞추는 것에 집착하고 있어 소비자의 인식 변화에는 근접도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마케팅에서 벗어나 브랜드와 사람과의 상호 관계성에 주목하는 심리학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인터넷과 SNS, 이동통신의 발달로 사람들이 브랜드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관계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졌기에 더욱 그러하다.

한경비즈니스는 평판이 곧 돈인 시대, 어떤 브랜드가 마음을 파고드는지에 대해 조사했다. 유능하면서(시장점유율 기준) 따뜻한 LG형, 덜 유능하지만 따뜻한 파타고니아형, 유능하지만 다소 차가운 애플형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했다. 위기의 상황에서 ‘따뜻함’으로 기회를 만든 브랜드, 도미노피자형이다.


도미노피자는 2009년 위기를 겪었다. 소비자들은 도미노피자가 맛이 없다고 항의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장 직원이 피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치즈를 코에 넣는 충격적인 장면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회사는 절치부심 1년 만에 맛있는 피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대중의 기대가 없었다. 도미노피자는 반전을 꾀했다.

“그동안 맛없는 피자를 제공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최고경영자(CEO)와 대표 주방장이 출연해 공식 사과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맹세했다. 도미노피자 경영진의 진심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고 진솔했다. 광고 효과는 탁월했다. 당시 도미노피자는 패스트푸드업계 역사상 가장 높은 단일 분기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도미노피자의 진정성을 소비자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패트릭 도일 전 도미노 피자 CEO는 위기 극복에 성공한 뒤 파이낸셜타임스와 가진 회견에서 “미국에서 우리는 신속한 배달과 적당한 가격으로 고객들에게 매우 실용적인 브랜드였지만 우리 브랜드에는 감정적인 애착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 환경은 나날이 불확실해지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마음을 파고드는 브랜드의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피스크는 “오늘날 고객들은 기업과 브랜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평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됐고 그 힘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브랜드가 마음을 파고드는가.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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