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안 해도 축하금 준다…‘비혼 복지’ 늘리는 기업들

비혼 확산에 사내 복지도 변화
LG유플러스에선 40대 男직원이 첫 비혼 선언

[비즈니스 포커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나는 비혼합니다.”

2023년 1월 2일 LG유플러스의 사내 경조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40대 남성 직원 A 씨의 비혼 선언 글이었다.

LG유플러스가 올해 1월 1일부터 비혼 선언을 한 직원에게 결혼 축하금과 동일한 기본급 100%와 유급 휴가 5일을 제공하는 ‘비혼 선언 지원 제도’를 도입한 가운데 1호 수혜자가 나온 것이다. 해당 게시글에는 ‘축하한다’, ‘응원한다’는 동료들의 댓글이 달렸다.

최근 결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 등의 이유로 비혼이 증가하고 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통상적으로 ‘미혼’으로 지칭해 왔지만 최근 자발적으로 혼인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포괄하는 가치 중립적 단어인 ‘비혼’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유튜브에는 40대 비혼자의 일상을 보여주는 ‘비혼 브이로그’ 채널이 40개가 넘는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비혼식 문화도 확산하고 있다.

기혼자만 받는 혜택 역차별…이젠 모두에게 준다

비혼 풍조가 확산하며 기업들의 사내 복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LG유플러스가 주요 그룹 계열사 중에선 처음으로 비혼자에 대한 복지 제도를 도입한 데 이어 SK증권도 비혼 선언 직원에게 결혼할 때 제공하던 축하금 100만원과 유급 휴가 5일을 동일하게 주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노사가 잠정 합의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결혼할 때 지원금을 주는 것처럼 비혼자를 위한 복리 후생 제도도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가 내부적으로 나왔었다”며 “‘비혼 선언 지원 제도’는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동등한 복지 혜택을 주기 위한 취지로 사내 게시판을 통해 비혼 선언(지원금 신청)을 한 직원에게도 동일한 혜택을 주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비혼자에 대한 복지 제도가 생겼다는 것 자체에 긍정적인 반응이 많고 시행 한 달 만에 6명이 신청했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대부분 사내 복지 제도가 배우자와 자녀로 이뤄진 4인 가족 중심에 치우쳐 비혼 직원들 사이에선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었다. 비혼 직원들은 기혼 직원들에 비해 복지 혜택이 거의 없어 ‘복지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커머스 업체에 다니는 직장인 B(33·여) 씨는 “비혼이 늘고 있고 결혼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도 생각보다 많은데 사내 복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혜택을 주는 게 대부분이라 역차별로 느껴졌다”면서 “혼인·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직원이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복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요 기업들은 비혼·1인 가구 증가 등 인구 구조와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발맞춰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직원에게 복지 혜택이 동등하게 돌아가도록 복지 제도를 손보고 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결혼하지 않는 비혼과 결혼했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사내 복지는 여전히 결혼·출산·육아기에 맞춘 선물이나 출산 장려금, 배우자 건강검진, 직장 어린이집, 자녀 학자금 지원 등 기혼자에 맞춰 설계돼 있었다.


그래픽=송영 기자

1인 가구·비혼 증가세…결혼 기피로 혼인 건수도 급감

기업들이 비혼 복지를 도입하는 이유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1인 가구는 이미 보편적인 가구 형태가 됐다. 통계청의 ‘2022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2021년 1인 가구는 716만6000가구로 전체의 33.4%를 차지했다.

1인 가구 비율은 2005년만 해도 20.0%에 불과했지만 2020년 처음으로 30%를 돌파하며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2050년에는 1인 가구 비율이 39.6%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연령별로 보면 29세 이하가 19.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1인 가구 가운데 절반(50.3%)은 2020년 기준으로 비혼이었다.

비혼 증가는 각종 통계로도 확인된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로 비혼·만혼이 증가하고 있고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결혼 지연과 기피 현상도 심화돼 혼인 건수는 나날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의 ‘2021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혼인 건수는 19만3000건으로 전년 대비 9.8% 줄었다.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51년 만에 최저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은 3.8건으로 1년 새 0.4건 줄며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혼인 건수의 감소는 출산율 감소로 이어졌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2021년 기준 0.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부동의 꼴찌다. 2022년 합계 출산율은 0.7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됐다.

결혼도 늦어지고 있다. 과거엔 20대를 결혼 적령기로 봤지만 점점 결혼이 늦어지면서 평균 초혼 연령도 남녀 모두 30세를 넘어섰다. 30년 전만 해도 평균 초혼 연령이 여성은 24.8세, 남성은 27.9세였는데 2021년에는 여자 31.1세, 남자 33.4세로 각각 6.3세, 5.5세 높아졌다.

가치관·가족 형태 변화 등 달라진 현실 반영

가족관도 변화했다.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해체 등 가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도 기업들이 비혼 복지 제도 도입을 고려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이미 한국에서도 비혼 출산 등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늘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낳은 방송인 사유리 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비혼 출산이 이슈가 되면서 초기에는 전통적인 가족 규범에 위배된다는 시각이 일부 있었지만 개인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국리서치의 ‘여론 속의 여론’이 2020년 12월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비혼 출산에 대해 설문한 결과 ‘결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견이 60%로 가장 높았는데 ‘자녀는 있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52%로 나타났다. 결혼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적인 태도지만 자녀의 필요성은 긍정하는 인식으로 조사됐다.

사유리 씨 사례와 같은 비혼 출산에 대해서는 반대(43%)보다 찬성(57%)이 높게 나왔다. 18~29세의 찬성 비율이 72%로 가장 높게 나타나 연령대가 낮을수록 찬성 응답 비율이 높았다.

비혼 출산을 찬성하는 이유로는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66%)’가 가장 높았고 ‘결혼하지 않아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48%)’,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39%)’가 뒤를 이었다.

‘결혼하지 않아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여성(58%)이 남성(36%)보다 높았는데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정상 가정’에 대한 규범이 여성보다 남성에게 강하게 작용하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달라진 가치관을 반영해 비혼자에 대한 복지를 도입하거나 기존 혜택을 늘리는 기업들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은 2020년부터 나이와 상관없이 미혼인 직원에게 ‘욜로(YOLO) 지원금’을 10만원씩 주고 있다. 기혼 직원의 결혼 기념일 축하금과 같은 액수다.

롯데백화점은 2022년 9월부터 비혼 선언을 한 40세 이상 직원에게 경조금과 유급 휴가 5일을 지급하는 ‘미혼자 경조’를 도입해 주목받았다. 현재까지 30명이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NH투자증권은 2021년 7월부터 만 45세 이상 비혼 직원에게 결혼 축하금과 같은 기본급 100%를 지급하고 있다. KB증권도 2022년 7월부터 비혼 선언을 한 만 40세 이상의 직원에게 100만원을 지급하는 비혼자 복지 제도를 시행 중이다. 대상은 결혼하지 않은 직원들을 위해 가족 종합건강검진 대상자 혜택 기준을 기존 배우자에서 직계 가족으로 확대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