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린 산업 리포트
[ESG 리뷰]“수소연료는 에너지 저장 수단으로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짓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022년 5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수소 에너지의 미래 비전에 대한 화상 인터뷰에서 “수소는 나쁜 선택”이라며 단호히 일갈했다. 수소의 생산과 저장에 많은 비용과 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수소의 경제성은 에너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꾸준한 논쟁거리다. 수소는 생산 방법에 따라 크게 그레이 수소, 블루 수소, 그린 수소 그리고 레드 수소(혹은 핑크 수소)로 나뉜다.
현재 대부분의 수소 생산을 담당하는 그레이 수소는 천연가스(주로 메탄)에서 수소를 분리해 생산하고 이산화탄소를 부산물로 배출한다. 상대적으로 경제적이지만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점에서 넷 제로 목표에 부합하는 생산 방식은 아니다.
같은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따로 포집해 저류층으로 저장하면 이를 그레이 수소와 구분해 블루 수소로 분류한다. 완전한 탈탄소 에너지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탄소 중립을 위한 목표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물론 추가 공정에 따른 비용은 여전히 문제다. 궁극적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전기 분해한 뒤 생산하는 것이다. 전기 분해에 사용되는 전기를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면 그린 수소로, 원자력을 쓰면 레드 수소로 분류한다. 수전해의 문제는 만들어지는 수소의 에너지 양보다 더 많은 전기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점이다.
머스크 CEO가 비판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머스크 CEO는 전기를 직접 사용하는 것보다 에너지 손실이 훨씬 큰 수소로의 전환을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에너지는 전환할수록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해 가용 에너지가 줄어드는 열역학 법칙의 대전제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의 대표적 교통·환경 비정부 기구인 ‘교통과 환경’에서 발표한 도표는 같은 양의 전기 에너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종 효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능하면 전기를 직접 사용하는 것이 수소로 전환하는 것보다 효율 면에서 이득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수소 에너지는 머스크 CEO가 지적한 생산 비용과 비효율적 에너지 전환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천연 수소에 대한 가능성
하지만 가장 이상적인 그린 수소조차 완전한 재생에너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태양광을 전기로 변환하려면 많은 천연자원이 필요하고 전기를 수전해하려면 전해조(electrolyzer)와 그 구성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천연자원과 전략적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 관심을 받지 못한 또 다른 수소 생산 옵션이 있다. 바로 지질학적 과정에서 생성되는 천연 수소(Natural Hydrogen or Native Hydrogen)다. 화이트 수소(백색 수소)로 분류된 천연 수소는 석유나 천연가스처럼 지층에 수소 기체로 저장된 에너지원이다. 에너지 전문가 이사벨 모레티의 논문에 따르면 실제로 지구 곳곳에서 천연 수소 방출이 관찰됐고 수소의 지하 축적과 직접 추출은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수소 공급원으로 진지하게 고려되기 시작했다.
“천연 수소는 지질학적 측면에서 무시돼 왔다.”
글로벌 천연 수소의 누적과 영향에 관한 2005년의 연구에서 영국 나이젤 스미스 박사 연구팀이 지적한 말이다. 또 지질학자들과 석유물리학자들이 천연 수소 탐사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약 17년이 지났음에도 천연 수소에 대한 탐사와 생산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최근의 천연 수소 생산 성공 사례는 새롭게 에너지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말리의 천연 수소 생산 실험
1987년 아프리카 말리에서 새로운 청정 수소가 생산됐다. 물을 찾기 위해 우물을 파는 과정에서 발견된 새로운 에너지원이었다. 물을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 대신 수소를 찾아낸 것이다. 페트로마(현 하이드로마)는 새로운 탄소 없는 에너지의 가능성을 봤고 천연 수소를 상업적으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2011년 천연 수소 생산정은 작은 마을의 전기를 생산하는 시험용으로 사용됐다. 생산된 순도 96% 이상의 천연 수소는 가스 터빈 발전기에서 직접 연소돼 전기를 생산한다. 2018년부터 하이드로마는 석유와 가스 매장량을 평가하는 것과 유사하게 천연 수소 매장량의 크기를 결정하고 암모니아 생산 공장의 공급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수소 흐름을 늘리기 위해 주변의 우물을 시추했다.
프린츠호퍼 연구팀이 논문을 통해 발표한 결과는 놀랍기만 하다. 시추한 모든 우물에서 상업적으로 천연 수소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기존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결과다.
초기 유정은 약 4바(bar)의 초기 기준선에서 압력 감소 없이 4년 동안 생산돼 왔고 이는 지하에서 수소 저류층을 지속적으로 재충전하는 움직임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상에서 측정한 수소 센서의 누출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예상과 반대로 천연 수소 그 자체로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봉인 암석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수소가 기체 상태로 저류층에 남아 있다는 것은 수소 분자의 크기와 화학적 재결합 능력을 감안할 때 매우 놀라운 발견인 셈이다. 특히 말리의 수소 생산정은 천연 수소가 kg당 1달러 미만에 생산될 수 있기 때문에 상업적 타당성이 확보된 거의 최초의 천연 수소 생산정이었다.
말리의 복잡한 지상 정치 및 안보 상황으로 인해 과학계의 후속 작업은 본질적으로 중단됐지만 저탄소 에너지원 탐색과 함께 수년간의 생산 데이터는 이 주제에 대한 관심에 전 세계적 불씨를 지폈다. 2018년부터 다양한 연구·탐사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수소 전용 탐사 회사(NH2E)를 설립해 2019년 말 캔자스에서 첫째 수소 생산정을 시추했다. 프랑스의 45-8은 지하에 있는 헬륨과 수소를 함께 탐사 중이다. 헬륨 가스의 전략적 중요성과 시장 가격 때문에 수소보다 우선시됐지만 천연 수소에 대한 상업적 가능성은 수소에 대한 전략적 탐사를 확대하는 데 일조했다.
그렇다면 천연 수소는 넷 제로 시대에 새로운 석유가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여러 면에서 천연 수소에 대한 현재 탐색 상태는 석유 탐사 시작과 비슷하다. 지금의 우리는 석유와 가스가 어떻게 생산되고 어디에 분포하는지 많은 부분을 과학적·공학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1859년 최초의 오일 러시 시대에 에드윈 드레이크 대령의 선구적 작업 이전에 석유는 주로 지표면의 스며나온 곳에서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에너지업계는 상업적으로 생산 가능한 천연 수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패러다임은 분명히 퇴적 분지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얻기 위해 뚫은 수백만 개의 유정에서 천연 수소를 확인하지 못한 경험에 근거해 왔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의 학술 연구는 비생물학적 메탄과 함께 천연 수소의 누출에 대한 상당수 관찰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2가지 주요 지질 환경이 관련돼 있다. 선캄브리아기 결정 방패(precambrian crystalline shields)와 중앙 해령 및 오피올라이트-페리도타이트 단층 지괴의 초고철질 암석(serpentinized ultramafic rocks at mid-ocean ridges and within land-based ophiolite-peridotite massifs)이 그것이다. 이 두 환경은 석유가스 산업에서 관심 있는 지질 환경이 아니었기에 석유 지역을 탐사하고 시추하는 동안 중요한 수소 저장고가 우연히 발견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천연 수소가 품은 가능성
천연 수소가 돈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천연 수소를 찾거나 저류층에서 수소를 샘플링(실제 생산하는 가스를 포집해 랩에서 기체 구성비를 분석하는 작업)하는 과정도 이뤄지지 않았다. 가스 감지 시스템이 설계되는 방식에서도 수소를 목표 물질로 보거나 감지하지 않았다. 가스 크로마토그래피에 대한 표준 분석법은 수소를 주로 목표 물질이 아닌 운반 가스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스 샘플에 수소가 있어도 수소가 감지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자연과학에서 사용하는 극소수의 현대식 휴대용 가스 분석기만이 디자인에 수소 센서를 포함하고 있다. 적절한 검출 기술이 없기에 얼마나 많은 천연가스가 존재하고 분포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2020년 ‘지구과학리뷰’ 저널에 실린 지고니크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기체 상태로 농도 10% 이상의 수소가 검출된 169개 이상의 필드가 학계에 보고됐다. 상업적 탐색이 아니라 주로 우연히 발견된 숫자만이다. 산업적 탐색과 생산이 이뤄진다면 이 숫자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과연 천연 수소가 새로운 시대의 석유가스가 될 수 있을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지만 미래 자원으로서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확실하다.
위키피디아는 천연 수소에 대해 “순수한 수소는 지구상에서 대량으로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2012년 천연 수소 추출이 기록된 동시베리아 또는 서아프리카 최초의 생산정에서 시작된 하루 최대 10만 큐빅미터의 수소 생산 기록으로 반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원이라고 하면 우리는 매장량을 생각한다. 현재 상태로는 지구에서 매일 얼마나 많은 천연 수소가 생산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 축적되는지,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 불확실하다. 다만 역사를 되짚어볼 수는 있다. 석유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150년 이상의 시추 후에도 매장량이 계속 유지돼 왔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처음 50년 동안 우리는 근원 암석이나 석유 시스템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지만 이 에너지 시스템을 기반으로 인류가 번영을 누린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리뉴어블매터’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이사벨 모레티 박사는 천연 수소의 미래를 전망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다행히 우리 조상들은 철기 시대로 넘어가기 전 세계 철 매장량을 계산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았다. 천연 수소는 화석연료지만 거의 무한하다.”
휴스턴(미국)=정철균 SLB AI팀 팀장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421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