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시대의 수혜자, 인도를 주목하라

비동맹 다자주의 노선으로 전략적 자율성 챙겨
유가 민감성과 무더운 몬순 기후가 약점

[스페셜 리포트 : 인도의 시간이 온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22년 8월 15일 인도 델리의 레드 포트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축하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근 인터뷰에서 2023년은 2022년보다 ‘더 힘든 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의 주제는 ‘파편화된 세계에서의 협력’이었다.

세계 경제가 최근 들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글로벌 위기에 세계 주요국들이 협력하는 시대는 이제 추억이 됐다. 이럴 때 상대적으로 불리한 나라는 대외 의존도가 높으면서 파편과 파편 사이에 낀, 한국 같은 나라다. 하지만 반대의 조건을 갖고 있다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인도가 그렇다.

젊은 인구 구조가 성장 동력

오는 3월 말로 끝나는 2022~2023 회계연도 인도 경제성장률 추정치는 7%다. 2022년 말까지만 해도 인도 중앙은행(RBI) 추정치는 6.8%였지만 1월 통계청이 신년 예산 발표를 앞두고 이를 높였다. 중국 성장률의 두 배 이상이다.

2월 1일 예산안 발표와 함께 인도 정부는 2023년 성장률을 6~6.5%로, 산업계와 중앙은행은 6.5%를 예측했다. IMF의 전망치보다 0.4%포인트 높다. 이는 인도 경제가 구조적으로 외풍에 강하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지출 항목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거의 60%이고 투자와 정부 지출이 각각 32%와 12% 미만이다. 순수출(수입 25%, 수출 21%)은 마이너스 4% 정도여서 소비와 투자만 견조하면 성장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이런 경제 구조와 중위 연령(인구를 나이 순서로 나열할 때 딱 한가운데 위치하는 사람의 나이)이 28세에 불과한 인구 구조는 인도를 외풍 속에서도 순항할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평형수’와 같다.

그렇다고 모든 외풍에 인도가 강한 것은 아니다. 국제 유가와 몬순 기후는 인도 경제에 가장 강력한 복병이다. 농업 생산이 GDP의 14% 정도지만 농촌 인구 비율이 아직 58%다. 직간접적으로 농업 생산에 의존하는 인구 비율을 65% 정도로 추정한다. 농업 생산이 증가해야 65% 인구의 구매력이 높아지고 이는 전반적인 수요 증가로 나타나 경기가 좋아진다는 의미다.

인도에서 농업 생산을 결정하는 것은 몬순 기후다. 뭄바이 증권가의 보너스가 몬순 강수에 달려 있다는 옛말이 여전히 유효하다. 아직도 곡물 경작지의 천수답(빗물에만 의존하는 논) 비율이 40%에 달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까지 농업 생산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신(神)의 영역이지만 올해도 전망은 나쁘지 않다.

국제 유가는 인도 경제에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원유 자급률이 20%에 불과하고 이미 휘발유·디젤유에 대한 보조금이 철폐돼 국제 유가가 오르면 연료부터 거의 모든 공산품 가격이 일제히 상승한다.

물가 상승과 구매력 약화, 무역 적자 확대가 상호 작용해 경기를 더욱 악화시킨다. 한국이 2022년 사상 최대의 무역 적자를 기록한 것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발된 국제 유가 급등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는 오히려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러 원유 수입, 인플레 무풍지대 만들어

미국과 서방의 제재 대상인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2021~2022 회계연도에 25억 달러에 불과했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규모가 지난 회계연도 8개월 동안에만 192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인도의 원유 수입국 1위인 이라크보다 적고 2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하며 3위인 아랍에미리트UAE)보다 큰 수치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2022년 11월 러시아산 원유의 도입 단가는 배럴당 49달러로, 이는 인도가 주로 수입해 온 두바이유 가격보다 최소 30달러 이상 저렴하다. 그 덕분에 물가상승률도 2022년 10월부터 지속 둔화해 중앙은행 목표치인 6%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나라가 고유가와 인플레이션의 파고를 힘들게 돌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도는 평상시보다 더 잔잔한 호수를 건너고 있는 셈이다.

인도가 이렇게 미국이나 서방은 물론 러시아·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도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독립 이후 지금까지 일관되게 추구해 온 비동맹·다자주의 노선을 바탕으로 양 진영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키워 왔기 때문이다.

냉전 시기의 인도가 특정 진영에 포함되거나 참여하는 것을 지양했다면 냉전 종식 이후 인도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1990년대 이전 서방이 인도에 관심을 두기 전까지 인도는 러시아·중국과의 관계를 지속 강화해 왔다. 1990년대 개혁·개방 정책 추진 이후 인도는 자연스럽게 미국·유럽·일본 등 서방과의 관계를 강화해 왔다.

서방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동쪽 진영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유지해 왔다. 그 결과 인도는 오늘날 ‘파편화된 세계’에서 가장 유리하고 폭넓은 전략적 입지를 갖춘 나라가 됐다.

인도가 상하이협력기구(SCO)·브릭스(BRICS)·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에 러시아·중국 등과 참여하는 동시에 미국·일본·호주와 4자 안보 회담(쿼드) 등에 참여할 수 있는 이유다.

인도태평양경제협의체(IPEF)에서는 무역 부문만 제외하고 참여하고 있다. 오는 6월과 9월 인도에서 열리는 SCO와 G20 정상 회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 의사를 표시했고 이를 계기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보도가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 세계가 인도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22년 9월 16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 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한·인도 CEPA, 신흥 거대 시장 선점 기회

여기에 더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리더십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차이나 플러스 원(+1)’으로서 인도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차이나+1은 중국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중국 이외의 국가로 투자를 늘리는 전략을 말한다.

2022년 12월 인도 현지에서 생산된 아이폰의 수출이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21년 휴대전화의 전체 수출액은 58억 달러에 불과했다. 인도 현지에서 생산된 에어팟 부품도 중국과 베트남으로 수출이 시작됐다. 현재 6~7%로 추정되는 애플 제품의 인도 생산 비율이 2027년까지 50%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미 애플의 위탁 생산 업체인 폭스콘은 인도 노동자 기숙사를 3배로 증축하고 대만 정부와 함께 기술자 교육센터를 설치하고 있다. 현지 재벌인 타타(TATA)는 폭스콘 생산부문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의 전경련인 인도산업연합(CII)과 언스트앤영(EY)의 공동 설문 조사에서 인도의 가장 큰 지정학적 장점으로 ‘거대 민주주의 국가’와 ‘차이나+1’이 뽑혔다.

현재 세계 제조업 생산의 약 30%를 중국이 담당하고 있고 인도는 아직 3%에 불과하다. 이 비율이 높아지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는 2023년이 한국·인도 수교 50주년이다. 양국 간 경제 협력을 심화하기 위한 기반 구축이 완료된 상태다.

2015년에는 인도가 주요 7개국(G7) 이외에 최초로 한국에 공적 개발 원조(ODA)를 허용했다. 자유무역협정(FTA)보다 포괄적인 한국·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선 협상이 2023년 안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경제 무역은 물론 과학기술·방산·우주항공·교육·관광 등 거의 모든 부문에 협력 기반이 구축돼 있다. 이제는 행동에 나서 구체적인 사업을 추진할 때다. 기업들은 단독 직접 투자 외 합작·M&A·재무적 투자 등 투자 방식을 보다 다양화해 선점의 이익을 최대화해야 한다. 2023년이 한국과 인도의 경제 협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퀀텀 점프의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용어 설명]

▶상하이협력기구(SCO) : 중국·러시아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정치·경제·안보 협의체로, 중국·러시아를 포함해 8개국이 가입

▶브릭스(BRICS) :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개국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인도네시아에서 제시한 국제 금융기구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위한 은행

▶쿼드(Quad) : 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의 안보 협의체

▶인도태평양경제협의체(IPEF) :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다자 경제협력체


조충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델리 사무소장. 사진=KIEP 제공



조충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델리 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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