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돌아온 지마켓 창업자 구영배…티몬 이어 인터파크 쇼핑 부문 인수도 저울질
[비즈니스 포커스]최근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큐텐의 행보다. 지난해 티몬을 인수한 큐텐은 올해 인터파크 쇼핑부문 인수까지 저울질하며 한국에서 몸집을 키우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긴장감을 안겨주는 존재로 급부상했다. 도대체 큐텐은 어떤 기업이기에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올랐을까.
큐텐은 ‘싱가포르의 아마존’이라고도 불리는 이커머스 기업이다. 특히 싱가포르 현지에서 중국의 빅테크 기업 텐센트가 투자한 ‘쇼피’, 알리바바가 투자한 ‘라자다’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싱가포르의 이커머스 거래액이나 시장점유율은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지 않은데 업계에 따르면 큐텐의 현지 시장점유율은 30%를 넘으며 1위를 기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에서 이커머스 점유율 1위
큐텐은 지마켓 창업자로도 잘 알려진 구영배 사장이 설립했다. 그는 2003년 지마켓을 만들어 창업 5년 차에 거래액 4조원에 달하는 회사로 만든 인물이다. 그러다 2009년 이베이에 지마켓을 매각한 뒤 2010년 싱가포르로 넘어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가 싱가포르로 간 이유는 명확했다. 당시 싱가포르는 경제적 수준 대비 이커머스 발전이 더뎠다. 싱가포르의 지리적·산업적 특성이 한국과 비슷하다는 것도 결정적인 계기였다. 수출입을 위한 기반이 잘 갖춰져 있었고 서울과 비슷한 면적으로 어디든 차량으로 1시간 거리에 닿을 수 있었다.
이미 지마켓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는 그는 싱가포르에 한국에서의 성공 모델을 이식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렇게 2010년 싱가포르로 넘어가 지오시스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고 이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해 왔다. 2012년에는 사이트를 전격 개편하며 지금의 오픈 마켓 ‘큐텐’의 탄생을 알렸다.
큐텐의 사업 초창기 경쟁자는 중화권 자본의 영향력이 큰 싱가포르 현지의 온라인 쇼핑몰이었다. 이들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상품 또한 중국을 생산지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싱가포르는 화교가 전체 인구의 80%에 가까워 중국산 제품에 특별한 거부감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국산 제품은 이미 높은 소비력과 그에 맞는 취향을 가진 싱가포르인들을 만족시키는 데 점차 한계를 보이는 실정이었다.
큐텐은 이런 소비자 니즈를 공략했다. 중국발 온라인 상품에 만족하지 못하는 싱가포르의 소비자들을 제조업 강국 한국의 제품으로 사로잡았다.
운도 따랐다. 당시 싱가포르는 인근 국가의 화전 농업으로부터 비롯되는 연무 ‘헤이즈(haze)’의 피해를 겪고 있었다. 소비자들은 이에 대비하기 위해 공기청정기·마스크·물티슈 등이 필요했는데 대부분 품질이 떨어지는 중국산이었다.
큐텐은 중국산 제품의 대안으로 높은 품질 기준과 기술력을 갖춘 한국산을 팔기 시작했다. 소득 수준이 높은 싱가포르에서 고품질의 한국 상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큐텐은 그렇게 싱가포르 이커머스 시장의 최강자가 됐다.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물류 전문 계열사인 큐익프레스의 역량도 큐텐의 싱가포르 1위 이커머스 플랫폼으로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데 힘을 더했다.
기존 2~3일에 달하던 온라인 상품 배송을 큐익스프레스를 바탕으로 당일 또는 익일로 줄이며 싱가포르에서의 온라인 배송 기준을 바꿔 놓았다.
큐텐은 상품의 품질과 배송 서비스에서 소비 시장에 큰 변화를 일으키며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이 됐다. 한국에서의 성공 모델을 가지고 싱가포르 이머커스 시장의 표준이 된 것이다.
싱가포르의 이커머스 시장은 아직도 큐텐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따라가는 중이다. 쇼피와 라자다 등 중화권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플랫폼들은 큐텐의 뒤를 이어 한국 셀러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고 싱가포르의 우체국인 싱포스트는 큐익스프레스가 올려 놓은 배송 경쟁력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서비스 혁신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겸업 금지 조건 끝나자 한국 진출
큐텐은 싱가포르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아시아 시장으로 확장해 나갔다. 인접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로 사업을 확장한 데 이어 2013년부터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도 직접 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에는 인도의 샵클루스를 인수하며 서남아시아에도 커머스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현지 언어와 해외 배송 지원으로 큐텐에서 상품 구매와 상품 수령이 가능한 국가까지 따지면 큐텐이 커머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의 수는 더 많아진다.
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주요 국가와 한국·일본·대만을 포함한 동북아·유럽·미주·아랍권을 포함해 현재 11개 언어로 24개국에서 큐텐을 만나볼 수 있다. 이들 국가의 인구수를 합치면 2022년 기준 약 45억5000만 명이다. 한국계 커머스 플랫폼으로는 최대 규모다.
국경을 넘나드는 커머스 운영으로 얻은 물류 노하우를 통해 글로벌 셀러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노력은 계열사인 큐익스프레스를 통해 이어 갔다.
큐익스프레스는 사업 중심지인 아시아는 물론 미주와 유럽을 포함해 전 세계 15개국에 인프라를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이커머스 셀러에 빠른 현지 배송과 효율적인 재고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마침내 티몬 인수를 통해 한국에까지 손을 뻗쳤다. 한국 진출이 다소 늦었던 것은 구 사장이 이베이에 지마켓을 매각할 당시 약속했던 계약 조건 때문이었다. 10년간 한국에서의 겸업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은 것.
겸업 금지 조건이 끝난 2022년 9월 구 사장은 티몬을 인수하며 한국에서 직접 사업 기반을 갖추게 됐다.
큐텐을 모기업으로 맞게 된 이후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던 티몬도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난 변화는 티몬의 해외 직구 부문이다. 티몬은 큐텐에 인수되자마자 크로스보더 플랫폼인 큐텐의 상품력과 큐익스프레스의 인프라를 활용해 직구 서비스 전반의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11월 선보인 직구 전문관이 그 결과물이다. 해당 카테고리에서 큐텐의 인기 판매 상품들을 큐레이션해 제공하고 있는데 고객의 반응이 뜨겁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큐텐과의 직구 기획전이 시작된 11월 티몬의 해외 직구 판매액은 매월 30% 이상씩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큐익스프레스의 글로벌 풀필먼트 역량으로 해외 직구의 장벽인 배송 기간을 1주일 이내로 줄이며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큐텐과의 직구 상품 시너지를 더하기 위해 웹사이트 내 신규 페이지인 ‘티몬월드’를 개설했다. 티몬 관계자는 “큐텐의 상품과 서비스를 연동해 판매하는 형태”라며 “운영을 통해 점차 완성도를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큐텐의 계열사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티몬에 입점한 한국 셀러의 해외 진출에 대한 밑그림도 본격적으로 그려 나갈 예정이다. 티몬은 올해 1월부터 큐익스프레스와 함께 입점 파트너들을 대상으로 통합 풀필먼트 서비스 ‘Qx프라임’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Qx프라임은 상품 등록·주문·포장·배송에 이르는 물류 모든 과정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종합 풀필먼트 서비스다. Qx프라임은 서비 사용을 위해 티몬 파트너 계정 연동으로 큐익스프레스의 배송 플랫폼에 가입하게 구성했다.
즉 티몬의 셀러 대상 서비스를 큐익스프레스가 제공함으로써 티몬 입점 파트너가 큐익스프레스의 파트너로 자동 유입되는 형태로 이어진다. 티몬 셀러에게 해외 직접 수출 길이 단번에 열리게 된 셈이다. 이런 강점을 앞세워 추후 해외 진출을 계획 중인 많은 셀러들이 티몬에 입점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인터파크 쇼핑부문 인수도 초미의 관심사다. 야놀자의 자회사로 인수된 인터파크는 3월 1일부터 투어와 티켓 사업부문과 쇼핑 및 도서 사업부문의 물적 분할을 단행하기로 한 상태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큐텐이 인터파크 쇼핑 부문 인수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해외에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큐텐이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이목이 쏠린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