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올 게 왔다’ 애플페이 상륙에 따른 관련 업계 기상도

3월 공식 출시 예상…현대카드 ‘독점은 안 되지만 유리한 고지 선점’

[비즈니스 포커스]

애플과 현대카드가 애플사의 비접촉식 간편결제 시스템인 애플페이의 국내 출시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힌 8일 경기도 성남시 애플페이 도입을 준비 중인 식당 키오스크에 관련 안내가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애플페이의 한국 출시가 비로소 공식화됐다. 현대카드는 2월 8일 “애플과 협업해 애플페이를 한국에서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서비스 개시일을 3월 초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의 간편 결제 사업자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51개사다. 은행·카드사들과 함께 정보기술(IT)·유통·제조업체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간편 결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애플페이 출시가 코앞에 다가오면서 간편 결제업계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애플페이는 글로벌 시장점유율 2위의 간편 결제 서비스다. 이미 전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증명한 만큼 한국의 오프라인부터 온라인 결제 시장에 변화를 가져 올 것은 당연하다. 애플페이의 한국 도입사인 현대카드부터 ‘라이벌’ 격인 삼성페이까지 각 업계에 미칠 영향을 짚어 봤다.
현대카드 : 일단은 맑음
최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개인 인스타그램 피드는 ‘사과’로 가득하다. 현대카드는 아이폰과 애플워치를 구매하는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애플페이 출시에 발맞춰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사내에서도 그만큼 애플페이 제휴에 대해 큰 기대를 안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현대카드의 초기 계획은 다소 어그러졌다. 우선 현대카드의 ‘독점’은 무산됐다. 당초 현대카드는 애플페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근거리 무선통신(NFC) 단말기를 한국의 가맹점에 무상으로 제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현대카드가 애플과의 배타적 거래를 목적으로 NFC 단말기를 한국 가맹점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리베이트(부당 보상금)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현대카드는 배타적 사용권을 포기하고 애플페이를 출시하기로 했다.

현재 GS25·CU·이마트24 등 전국 편의점과 코스트코·이마트·롯데마트·이디야·스타벅스·메가커피·신세계백화점·롯데백화점 등 대형 가맹점은 NFC 단말기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에게 NFC 단말기는 아직까지 ‘먼 나라의 이야기’다. NFC 단말기의 보급률은 애플페이의 성패와도 좌우된다. 현대카드가 독점으로 애플페이를 들여올 때 NFC 단말기를 지원하려고 했던 이유다.

현대카드는 독점은 포기했지만 초기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당분간 애플페이는 현대카드로만 이용할 수 있다. 법령상으로 현대카드가 애플페이의 배타적 사용권을 갖지는 않지만 애플과 계약을 제일 먼저 했기 때문이다.

또 현대카드는 애플페이의 도입에 따른 브랜드 상승 효과도 덤으로 얻었다. ‘통일보다 어렵다’는 애플페이 출시를 이뤄냄으로써 아이폰 유저들의 지지와 트렌디한 카드사라는 이미지를 동시에 가질 수 있게 됐다. 타 카드사들이 애플과 계약을 준비하는 동안 시간을 벌었다는 것도 장점이다. 2019년 현대카드는 코스트코와 제휴 관계를 맺고 다양한 카드를 출시하며 업계 3위로 발돋움한 이력이 있다. 이번 애플페이 우선 출시에 따라 또 한 번의 점유율 상승을 이룰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카드업계 : 흐림
한국의 카드 보급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각종 간편 결제 서비스의 출시로 ‘절대 강자’였던 카드업계는 저성장의 벽에 부딪쳤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결제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간편 결제 비율은 더욱 높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간편 결제의 카드 연결 비율이 높아 빅테크와 카드사가 상생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빅테크들은 수수료 부담이 적은 선불 충전이나 계좌 결제를 유도하고 있다. 실제로 간편 결제의 카드 연결 비율은 2016년 96.3%에서 2019년 89.2%, 2021년 82.3%로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간편 결제 시장에서 카드의 영향력이 점차 줄고 있는 것이다.

카드사의 절대적 비율이 높았던 오프라인 결제는 이미 삼성페이의 도입으로 한 차례 꺾인 바 있다. 하나금융경제연구소는 “애플페이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NFC 인프라 확대와 함께 삼성페이와의 경쟁이 심화되는 한편 오프라인 결제 시장에서 카드사의 위상이 더욱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카드사들이 강점 분야인 오프라인 결제까지 위협받게 된다면 다양한 결제 수단과 타사 카드까지 포괄하고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방형 종합 생활 플랫폼으로 경쟁을 차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익성 역시 ‘미지수’다. 삼성페이와 달리 카드사에 수수료를 요구하는 애플페이와 제휴하는 카드사의 수익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카드사가 애플페이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연동을 통한 선점인데 이조차 다른 카드사들엔 요원해졌다.
삼성페이 : 안개
2021년 기준으로 애플페이는 글로벌 간편 결제 시장에서 비자 다음으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일찌감치 삼성페이가 오프라인 간편 결제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고 결제해야 하는 앱 기반의 간편 결제와 달리 삼성페이는 단말기에 갖다 대기만 해도 결제가 된다. 이와 같은 간편함을 무기로 삼성페이는 한국의 간편 결제 시장을 집어삼켰다. 유일한 라이벌로 꼽혔던 LG페이는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철수로 힘을 잃었다. 업계에서는 삼성페이가 간편 결제 시장에서 80%의 점유율을 차지한다고 추측한다.

그럼에도 애플페이의 상륙으로 가장 긴장하는 것은 삼성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페이 역시 삼성페이처럼 오프라인에서 활용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양 사의 페이 전쟁은 스마트폰 점유율의 등락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삼성 갤럭시 유저들이 갤럭시의 강점으로 꼽는 두 가지가 ‘통화 녹음 기능’과 ‘삼성페이’였는데 이 중 페이 기능은 애플 아이폰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애플페이가 삼성페이의 위상을 넘기 힘들 것이란 분석도 있다. 시장 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지난 1월 “이미 보편화된 결제 수단이 있는 상황에서 애플페이 도입이 스마트폰을 바꾸기 위한 큰 동기 부여가 되기는 어렵고 현대카드를 발급받으면서까지 애플페이를 사용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NFC 단말기의 보급률이 양 사의 희비를 가를 것으로 예상된다. MST(마그네틱) 방식으로 인프라를 구축한 삼성페이와 달리 애플페이의 사용 범위가 넓지 않기 때문이다. 또 애플은 교통카드 기능을 더하기 위해 티머니·캐시비 등 교통카드 사업자들과 별도의 계약도 해야 한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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