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이 기존 시장을 파먹는 ‘혁신의 모순’, 해결책은?[박찬희의 경영 전략]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정답…기존 사업의 연장선 아닌 새 사업 시장 진입으로 봐야

[경영 전략]



아무리 훌륭한 회사도 늘 하던 방식으로 기존의 사업에만 매달리면 망한다. 세상은 늘 변하고 회사 내부의 사정도 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혁신을 내걸며 요란하게 바꾸려고 든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애써 새로운 제품과 기술을 알리고 부품 조달과 유통 등의 체제를 갖춰 놓았더니 후발 주자들의 판만 깔아 주는 ‘선구자의 불행(pioneering cost)’이 발생하고 혁신의 성과가 기존 사업을 잠식하는 ‘제 살 깎아 먹기(cannibalization)’가 되는 경우도 있다.

새로운 사업에 힘을 쏟다 보면 기존의 사업 기반과 역량이 허물어지는 현상(capability self-destruction)도 벌어진다. 남 잘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자칫 잘못되면 책임만 뒤집어쓸까 걱정되니 조용히 누리며 살자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시도’는 꼴 보기 싫은 일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혁신적 사업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성공하면 팔자가 바뀌는 시장의 기회와 함께 가진 것을 움켜쥐고 버티다가는 하루아침에 쪽박 차는 경쟁 압력이 경영자와 투자자의 영혼을 두들겨 깨웠기 때문이다(대충 누리며 버티려는 경영자는 제품 시장에서 박살이 나거나 그전에 늘 새로운 기회를 찾는 투자자들에게 쫓겨난다).

경영학 책에는 이런 성공한 혁신이 영웅담으로 포장돼 나오는데 솔직히 홍보물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실패한 후발 주자에게 판만 깔아 주고 자기 사업만 망가뜨린 실패한 혁신도 많은데 망한 회사는 물어볼 곳이 없고 심란한 사연도 숨기기 바빠 제대로 알 수 없다. “훌륭한 경영자가 핵심 역량에 기반해 혁신했다”는 뻔한 소리 말고 실전에 쓸모 있는 전략을 생각해 보자.버텨봐야 어차피 빼앗긴다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기존의 사업 기반을 잠식할 수 있다고 가진 것만 지킬 수는 없다. 어차피 지금의 시장 입지는 다른 경쟁자에 의해 잠식당할 수밖에 없는데 빼앗기는 것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편이 낫다. 애플이 맥북이나 데스크톱을 걱정해 아이패드를 내놓지 않는다고 태블릿 시장이 영원히 애플을 기다려 주지는 않는다.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다 보면 기존의 제품과 기술에 대한 역량이 약해지는 경우가 있다. 빠른 공을 던지는 프로야구 투수가 여러 가지 변화구를 시도하다가 밸런스와 감각을 잃고 그저 그런 선수가 되는 것과 비슷한데 이것도 어차피 빠른 공만으론 버틸 수 없다면 프로 수준에 맞게 진화하지 못한 실패 사례일 뿐이다.

얼치기 경영학 책에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압도적 경쟁 우위’를 갖추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른바 핵심 역량에 집중하라는 얘기인데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파괴적 혁신’의 시대에 한 우물만 파다가 옆에 저수지가 생기면 헛수고가 된다. 성문 닫아걸고 지켜 이긴 전쟁은 없다.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믿을수록 성 안의 군사는 해이해지고 바깥 사정을 모르니 변화에 무뎌진다. 아군의 배신을 의심하다가 적의 공세에 놀라 무너진다.

히데요시 사후 오사카 성의 몰락이 대표적인 예다. 세계 최고의 타자기를 자랑해 봐야 컴퓨터가 보급되면 골동품이 된다.

신제품이나 신기술이 후발 주자들에게 판만 깔아 준다면 억울한 일이지만 여건이 갖춰졌을 때 타이밍 맞춰 들어가려고 한들 될 일이 아니다. 유능하고 용감한 경쟁자는 한 발 앞서 자리 잡고 핵심 소재·부품·판로의 길목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죽기 살기로 새로운 제품과 기술에 도전하면서 관련된 사업 생태계의 동향을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기업의 시도들은 실험의 성격을 갖고 있고 돈 주고 컨설팅을 받는 것보다 낫다. 하다 보면 실력이 늘고 경영진도 걱정하고 야단치다가 공부하게 된다. 관련된 법과 제도 역시 사람들이 원하면 바뀐다. 안 되는 일은 수요자나 협력업체, 투자자들의 싸늘한 반응으로 알 수 있는데 미리 안 되는 이유만 찾으면 되는 일이 없다.

모바일의 시대, 스마트폰이 등장할 것은 대부분 예상하고 있었다. 일단 뭐라도 해 보자고 나선 회사는 소재·부품이나 액세서리, 관련 서비스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소수의 선도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는 사업에서 완제품 개발과 생산은 어려워도 게임·미디어·쇼핑·금융 분야의 기회는 찾을 수 있었고 배터리의 미래가 희토류 광물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확실히 다르게 새로운 틀에서‘새로움’에 대한 판단은 시장의 몫이다. 소비자가 기존 제품과 별 차이를 못 느끼는데 새롭다고 우기면 회사의 한정된 사업 역량만 소모하고 전형적인 ‘제 살 깎아 먹기’가 되고 만다.

다르고 새롭다면 그 차이를 확실하게 인정받아야 한다. 정말 혁신적인 차이가 있는데 소비자가 못 느낀다면 기존 제품의 개선으로 자리매김하는 편이 낫다. 혁신적 기술이라면 사업 생태계 안에서 다르고 새로움을 확인 받아야 한다.

정말로 새롭고 다른 제품이나 기술이라면 별도의 틀을 갖춰야 효과적이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싼 차’라는 정체성을 벗어나기 위해 별도의 브랜드와 유통 경로를 개척한 사례가 대표적인데, 비슷한 전략은 옷이나 호텔 서비스 등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확실하게 달라야 자기 시장 깎아 먹는 효과가 줄어들고 회사 안팎의 엇갈리는 이해관계도 피할 수 있다.

변화에 따라 입지를 잃는 사람들의 불만과 저항을 관리하지 못하면 혁신은 실패한다. 회식비만 줄여도 별의별 소문이 돌고 우왕좌왕하는 월급쟁이들에게 같은 회사, 그것도 같은 사업부에서 신제품 때문에 부서가 쪼그라들고 관련 업체들의 일감이 준다고 알려지면 ‘혁신의 주범’은 공적이 된다. 남 잘되는 것도 싫은데 잘못되면 같이 책임진다는 생각까지 더해지면 어떨까.

새롭고 다른 사업은 기존의 투자자와 이해관계인들에게도 반갑지 않을 수 있다. KT가 안정적 수입이 보장되는 통신 회사여서 투자한 사람들은 KT가 영화나 웹툰 같은 콘텐츠 사업을 하는 데는 부정적이다.

좋은 사업이고 자신 있으면 새로 투자자를 모집해 별도의 법인으로 하라고 주문한다. 투자자들은 콘텐츠 사업을 KT보다 더 잘하는 회사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업 기반의 확대와 시너지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기존 사업들과 밀접한 협력이 필요하다면 한 사업 단위에 섞지 말고 독립적으로 설정된 사업 단위들 사이의 관계로 푸는 것이 낫다. 그래야 만들고 파는 본연의 기능이 복잡한 사연과 관계에 엉켜 복잡해지지 않는다.

에어컨 회사에서 냉장고를 개발하다가 에어컨 사업이 줄어들까 걱정하고 어느 줄에 설까 눈치 보지 않게 별도의 사업부나 회사로 진행하지만 핵심 냉각 기술이나 부품·자재 구매처는 공유하자는 얘기다.

아마존은 온라인 쇼핑에서 클라우드와 데이터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했는데 사업들을 고유의 아키텍처로 통합해 전사적 사업 기반을 확대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2006년 인터넷 서비스 기업으로의 전환에 역풍을 맞은 후 방향을 전환, 기존 윈도-오피스의 서비스 모델을 바꾸고 애저(Azure)로 대표되는 클라우드 사업으로 새로운 틀을 만들고 있다.

바이오·에너지 등 신사업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직접 별도의 사업 체제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확실히 다른 사업은 새로운 틀에서 전사적 시너지가 가능한 사업은 공통의 기반을 확충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사업을 억지로 품에 안고 쩔쩔매면서 제 살 깎아 먹는 짓들, 알고 보면 새로 시장과 투자자를 설득할 자신이 없거나 기존의 이권 구조에 넣어 단물을 뽑으려는 경우가 많다. 단물 다 빠지면 슬쩍 떼어내고…. 이제 세상이 다 아니 그만들 하시라.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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