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코오롱·태광이 꽂힌 슈퍼 섬유 ‘아라미드’의 비밀

고성능 통신 케이블·타이어 소재로 매년 12% 성장…적극 투자 나서는 섬유 기업들

[비즈니스 포커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구미공장 전경.(사진=코오롱인더스트리)

섬유업계를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기간 동안 웃게 했던 ‘타이어코드’는 지난해 수요 부진과 판가 하락, 여기에 환율 부진까지 더해져 이익이 크게 줄었다. 타이어코드가 잠시 부진한 사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이른바 ‘슈퍼 섬유’로 불리는 ‘아라미드’다.

IBK투자증권은 글로벌 시장에서 아라미드 수요가 2026년까지 매년 12%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는 전쟁으로 방탄과 방호용 수요가 증가하고 전 세계가 5세대 이동통신(5G) 통신망 전환에 나서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적 섬유 기업인 효성첨단소재와 코오롱인더스트리의 매출액에서 아라미드가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까지 한 자릿수대다. 하지만 고부가 가치 제품인 아라미드는 매출액에 비에 높은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향후 ‘기대주’로 떠올랐다.
전기차 생산에 필수적인 아라미드
아라미드 섬유는 아마드기(CO-NH) 기반의 고분자 폴리아마이드 섬유를 말한다. 5mm의 굵기로도 2톤에 달하는 자동차를 들어 올릴 만큼 고강도와 높은 인장 강도를 지녀 이른바 ‘마법의 실’이라는 별명을 지닌 꿈의 첨단 소재다.

이 소재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아라미드 섬유의 쓰임새 때문이다. 전 세계 아라미드 시장은 5G 통신 인프라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함에 따라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라미드 섬유는 가벼우면서도 높은 강도와 뛰어난 인장력을 지녀 5G용 광케이블을 내부에서 지지해 주는 보강재 역할을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언택트(비대면)’로 인한 온라인 데이터 사용량 증가로 광케이블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아라미드 시장 확대의 주요 원인이다.

최근 전기자동차의 급속한 보급 추세도 글로벌 아라미드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전기자동차는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무거우면서도 높은 순간 가속력을 지닌다. 이 때문에 초고성능 프리미엄 타이어인 UHP(Ultra High Performance) 타이어가 장착되는데 전기차 생산량이 늘면서 타이어의 수요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고 있다.

향후 자동차 시장이 전기자동차와 같은 고성능 자동차로 재편된다면 UHP 타이어에 적용하기 위한 아라미드 타이어코드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효성첨단소재와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코로나19 시기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아라미드 수요를 늘리는 데 집중해 왔다.

효성은 2003년 자체 기술로 아라미드를 개발해 2009년 상업화에 성공했다. 2020년에는 울산 아라미드 공장에 총 613억원을 투자해 2021년 증설을 완료했다. 이에 따라 연산 1200톤 규모였던 생산 규모는 3700톤으로 확대됐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21년 경북 구미의 아라미드 생산 라인을 연 7500톤에서 두 배 수준인 1만5000톤으로 증설하는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 프로젝트의 완공 시기가 올해인 2023년이다. 이번 증설은 3년 만에 생산량을 ‘더블 업(double up)’하는 대규모 투자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아라미드의 수요가 늘어날 것을 전망하고 3년 단위로 연달아 증설을 추진했다. 1979년 파라계 아라미드 기초 연구를 시작한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05년 전 세계에서 셋째로 생산 시설을 구축하고 ‘헤라크론’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아라미드 사업에 진출했다. 2017년부터 생산 라인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글로벌 고객사를 대상으로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방 산업이 침체를 겪을 때도 우수한 품질 경쟁력을 바탕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는 후문이다.

광케이블을 이루는, 노란색을 띠는 아라미드 섬유 다발이 하얀색 광섬유를 감싸고 있다.(사진=한국경제신문)

주요 섬유사 모두 한국에 생산 기지 마련
지난해 주요국의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로 전방 산업이 부진했지만 섬유업계는 아라미드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아라미드에 대한 가능성을 본 것이라는 분석이다.

태광그룹의 섬유·석유화학 계열사 태광산업은 지난해 아라미드 공장 증설을 전격 결정했다. 태광산업은 울산 화섬공장에 1450억원을 투자해 2025년까지 연산 3500톤을 증설해 총 5000톤까지 생산 능력을 확대한다.

태광산업은 2010년 아라미드 제품 착수 후 2014년 연산 1000톤 규모의 상업화 설비 구축을 시작해 2015년 상업 생산을 개시했다. 지난해 500톤 증설 이후 둘째 증설 투자다.

태광산업은 파라아라미드 원사 상업 생산 이후 지속적인 제품 개발을 통해 연사품·단섬유·방적사·직물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 생산 기술을 확보했다. 여러 산업 분야의 수요별·용도별 특화된 제품 형태로 공급함으로써 고객사의 수요를 적극 충족시키고 있다.

태광산업이 생산하는 아라미드 고유 브랜드인 ‘에이스파라(ACEPARA)’는 파라아라미드 섬유다. 중량은 강철의 20%에 불과하다. 하지만 강도는 5배 이상이고 내열성이 우수한 슈퍼 섬유로 꼽힌다. 방위 산업뿐만 아니라 소방·안전 분야, 산업용 보강재(광케이블, 고무호스·벨트, 타이어코드 등), 우주 산업 등 산업 전반에 다양하게 활용된다.

이번 증설로 태광산업은 다양한 상품 구성을 통한 제품 경쟁력과 고생산성 설비를 활용한 원가 경쟁력 강화를 통해 지속적인 손익 개선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판매 확대를 통한 시장점유율 제고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눈여겨볼 점은 세 회사 모두 한국에 아라미드 생산 기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아라미드 증설을 결정할 당시 효성은 베트남에 공장을 짓는 방안을 고민했지만 핵심 소재의 생산 기지를 전략적으로 한국에 둬야 한다는 조현준 효성 회장과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울산을 생산 기지로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오롱인더스트리 관계자는 “아라미드 제조 공정은 기술적 장벽이 높아 해외에 공장을 신설하면 보안 등 신경 쓸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해외에 공장을 신설한다면 지역 시장 생산 거점 확보, 인건비 절감, 고객사의 해외 생산 거점 이동에 따른 동반 이동 등의 요인이 있다. 하지만 아라미드 사업은 위에 해당하는 사항이 없어 한국에 사업장을 뒀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증설이 완료되는 올해 4분기를 본격적인 경쟁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섬유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통신 인프라 구축으로 광케이블 성장과 UHP 타이어 등 프리미엄군 상품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아라미드 시장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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