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은 왜 440억원을 주고 공사를 포기했을까…멈춰 선 부동산 PF 현장

1000억원 손해 예상돼 440억원 물어준 대우건설의 사상 초유 결정, 업계는 ‘지금은 합리적 선택’

극심한 자금 경색 등으로 공사가 지연되거나 아예 사업이 중단된 PF 현장이 작년 말 기준 전국에 최소 32곳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대우건설은 지난 2월 초 울산 동구 사업장 시공권을 포기했다. 최근 분양 시장이 악화되고 금리가 급등하면서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이 시공권을 포기하는 대신 변제한 금액은 440억원이다. 공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볼 것이란 예상에 막대한 금액을 물어 주고 공사를 포기한 것이다.

#서울 강남 한복판 ‘금싸라기 땅’도 공매로 넘어왔다가 구사일생했다. 하이엔드 주거 시설 ‘루시아 청담 514 더 테라스’ 사업 부지 및 사업 인허가권은 2월 13일 공매 물건으로 나왔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주단이 지난해 12월 20일 대출해 줬던 시행사 루시아홀딩스에 기한 이익 상실(EOD)을 통보하며 본PF로 넘어가기 전 상환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매에 나온 다음 날 시행사가 대주단 전원 소집 후 연장 동의안에 대해 논의하고 브리지 연장에 대한 의견을 모으면서 정상화에 돌입했다.

#부산에서 주택 사업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중견 A 건설사는 최근 부산 지역 자체 사업장 한 곳을 포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자체 사업은 건설사가 시공만 맡는 도급 공사나 정비 사업과 달리 토지 매입부터 분양·시공까지 건설사가 모두 담당한다. 건설사가 보유한 땅이기 때문에 시행 이익이 포함돼 수익성이 뛰어나지만 용지 구입과 공사비 투입에 따른 자금 소요가 크고 분양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자체 사업장은 분양 시기를 조절하는 방법을 택하는데 PF 대출 이자가 10%에 가까워 건설사는 땅을 계속 가지고 있더라도 이자 비용만 더 커진다”고 말했다.

부동산 PF 사업장이 멈춰 서고 있다.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분양 시장은 죽었고 공사 원가는 올랐는데 금리는 치솟아 사업성이 없다. 업계에서는 개발 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사실상 제로 수준이라고 말한다. PF와 브리지론 대출이 축소된 것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금리가 급등하면서 금융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건비·원자재 값 등의 상승으로 공사비가 높아지면서 시공사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1년 만에 이자 2배, 수수료 10배 늘었다“1000억원 손실을 440억원으로 막은 합리적 판단이다.”
한 증권사 PF 관계자가 대우건설의 울산사업장 중도 하차를 두고 내린 평가다.

대우건설은 2월 초 울산 동구 일산동 내 주상 복합 건축 사업을 위한 브리지론에서 손을 뗐다. 대우건설이 연대 보증을 섰던 후순위 브리지론은 440억원이었다. 한마디로 시행사가 후순위 채권자들에게 돈을 갚지 못하면 대우건설이 대신 갚겠다는 약속이다.

대우건설은 이 약속을 지켰다. 다만 공사에 착수하지는 않았다. 대우건설은 브리지론에서 본PF로 넘어가기 전 시공권을 포기하면서 후순위 채권자들에게 440억원을 자체 자금으로 상환했다. 대우건설이 440억원을 물어 주면서까지 ‘손절’에 나서자 건설업계는 물론 금융권마저 술렁였다. 브리지론 단계에서 시공사가 연대 보증을 섰던 일은 드물었고 1군 건설사가 신용 공여가 된 상태에서 손을 들고나온 일은 유례가 없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손해를 감수한 시공사의 중도 하차는 상징적이다. 향후 몇 년간은 분양 시장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담겨 있고 공사 원가와 금융 이자가 급등하면서 주택 사업의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이 울산사업장 수주를 할 때만 하더라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대우건설이 울산 주상 복합 아파트 개발 사업을 최초 검토한 시점은 2021년 말이었다. 그야말로 부동산 시장의 활황기였다. 사업장 입지는 울산 현대중공업 바로 앞이다. 2021년은 부동산뿐만 아니라 조선업도 간만에 호황기를 맞이했을 때다.

이 때문에 분양을 받쳐 줄 수요자들의 자금 사정도 탄탄하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대우건설이 당시 추산한 시공 영업이익은 7.5% 수준이었다. 대우건설이 이례적으로 브리지론 단계에서 연대 지급 보증을 선 이유다.

다음해 4월 대우건설은 도급 계약을 체결한다. 계약 체결 당시 시행사와 검토했던 금융 조건은 PF 금액 1000억원, 금리 5.7%, 취급 수수료 1%였다. 하지만 1%대였던 기준금리는 가파르게 올랐고 본PF를 앞둔 2022년 말 4%에 육박했다.

이 시기 대우건설이 금융사에서 다시 받은 조건은 전체 금액 1200억~1300억원, 금리 10%, 취급 수수료 11%다. 1년 만에 금리는 2배 올랐고 수수료는 10배 뛰었다. 최초 도급 계약 때보다 금융비용으로만 300억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증가 금액을 반영하면 가구당 수천만원의 분양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울산은 전국에서 미분양이 가장 심각한 지역 중 하나다. 분양가가 상승하면 이를 받아 줄 수요가 전혀 없는 셈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울산 지역의 초기 분양률은 3.4%로 모든 지역을 통틀어 가장 낮았다. 전국(58.7%) 평균에 한참 못 미쳤고 미분양 무덤으로 불리는 대구(26.4%), 높은 분양가로 고배를 마셨던 서울(20.8%)보다 낮았다.

대우건설은 올해 1월 기준으로 착공과 분양에 나선다면 공사 미수금 금액이 1000억원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소 손실이 1000억원이고 공사 원가가 20~30% 상승한 상황에서 미분양이 장기화하면 건설사는 상환 부담이 전이되고 공사비와 사업비 회수가 지연되면서 대규모 대손을 반영해야 하는 위험이 커진다.

결국 대우건설은 자금 회수 대신 연대 보증을 섰던 후순위 브리지론 440억원을 물어 주는 쪽을 택한다. 주식회사로선 막대한 손실이 뻔한 사업을 끌고 가 주주들에게 피해를 주느니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판단이다. 본PF로 넘어가기 전에 사업에서 빠졌기 때문에 책임 준공 의무도 없었다. 후순위채를 대우건설이 대신 변제했기 때문에 금융 시장 리스크 확산도 막았다. 대주단은 대우건설이 연대 보증을 서지 않은 선순위채를 3개월 연장하고 새 시공사를 찾고 있다. 3개월 동안 새 시공사를 찾지 못하면 토지 공매에 나서야 한다.

한 증권사 PF 관계자는 “사실상 신규 PF 사업장 중 진행이 되고 있는 곳은 1%도 안 된다”며 “대우건설 울산 사업장처럼 건설사가 지급 보증을 선 곳들은 오히려 다행이지만 그런 곳은 거의 없어 시행사들의 PF 채무 불이행 사태가 다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 PF 보증액, 20조원으로 확대

이렇게 공매에 넘어온 사업장은 전국적으로 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가 파악한 바로는 극심한 자금 경색 등으로 공사가 지연되거나 아예 사업이 중단된 PF 현장이 작년 말 기준 전국에 최소 32곳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 회원사들이 시공에 참여 중인 PF 사업장 231곳에 대한 조사였는데 이마저도 응답률이 낮아 공사가 지연되거나 중단된 현장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분양 실적이 악화하고 PF 사업장이 멈춰 서면 건설사와 금융 시장이 동시에 타격을 입는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각 건설 업체의 PF 차입금 최종 상환 부담의 전이 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미착공이나 분양 실적이 부진한 사업장을 둘러싼 PF 우발 채무의 현실화 가능성이 높다.

한신평에 따르면 PF 보증 1000억원 이상인 합산 보증액은 2018년 11조원에서 지난해 9월 20조원으로 확대됐다. 이 가운데 아직 분양이 진행되지 않은 미착공 사업장에 대한 PF 보증은 63%인 약 13조원에 달한다. 미착공 사업장은 아직 분양이 진행되지 않았지만 집값이 떨어지거나 공사 원가 금융비용이 오르며 사업성 저하됨에 따라 착공이 지연된 곳이다. 이런 사업장에 시공사가 보증을 제공했다면 이를 대위 변제하면서 우발 채무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신평은 “최근 미착공 사업장과 관련한 착공 지연이나 분양 실적 부진으로 건설 업체에 우발 채무 부담이 전이될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에는 사업성을 고려해 건설 업체가 시공권을 포기하고 PF 차입금을 대위 변제하는 곳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PF 사업장에 얽힌 건설사·시행사·신탁사들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워 주기 위해 정부도 나섰다. 금융 당국은 1분기 중 PF 대주단 협약 개정 및 협의회 출범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주단 협의회에는 금융사 200여 곳이 참여해 부실 PF 사업장의 자율적인 정리를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대주단협의회가 운영됐었다. 당시 대주단 협의회처럼 건설사의 자구 노력을 전제로 금융회사들은 건설사 채권 만기를 연장하고 필요하다면 신규 자금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잠깐! 부동산 PF 이해하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 과정은 복잡하다. 쉽게 풀어보면 땅을 사고 땅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리고 돈을 빌리기 위해 보증을 서고 땅에 건물을 지어 이익을 얻고 빌린 돈을 상환하는 과정이다. 부동산을 개발할 때는 대규모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먼저 땅을 사는 데 큰돈이 든다. 땅을 사 개발 사업을 주도하는 업자를 ‘시행사’라고 부른다. 건설사는 보통 공사만 맡아 하고 도급액을 받는 ‘시공사’다. 시행사는 땅을 살 때 미래 수익성을 담보로 돈을 빌린다. “이 땅에 집을 지을 것인데 분양 이익이 이 정도 날 것 같다”고 사업성을 어필해야 한다. 이때 돈을 빌려 주는 복수의 금융회사를 ‘대주단’이라고 한다. 대주단에서 땅에 대한 대출을 받는 것을 ‘브리지론’이라고 한다. 브리지론은 만기가 짧은 단기 대출인 만큼 금리가 높다. 위험성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일반적으로 제1금융권보다 제2금융권이 브리지론의 대주가 된다.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공사에 들어가면 시행사는 다시 ‘본PF’를 일으켜 시공과 개발에 대한 자금을 조달한다. 통상 본PF 대출을 통해 고금리의 브리지론 자금을 갚는 사례가 일반적이다. 만약 본PF 대출이 막히면 시행사는 브리지론을 연장하며 버텨야 한다. 시행사의 사업성만으로는 대출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건설사가 지급 보증을 서기도 한다.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시행사가 돈을 갚지 못하면 건설사가 대신 갚겠다는 약속이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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