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포 세대, 고임금으로 몰려…조직의 재정 안정성보다 직원 복지, 포용성과 다양성 우선
[비즈니스 포커스]“고된 직업의 대명사, 환경미화원의 인기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14명을 채용한 대구 수성구의 채용 과정에 149명이 응시했고 이 가운데 전문대졸 이상이 90명에 달했습니다. 30대 지원자가 74명으로 가장 많았고 지원자 대부분이 20대부터…. (2013년 11월 13일자 연합뉴스TV 중에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 신조어가 탄생했다. 바로 ‘환경미화원 고시’다. 당시 경기 불황과 저조한 취업률에 ‘공무원’ 몸값이 상승하면서 대표적인 기피 직업으로 손꼽히던 환경미화원도 덩달아 경쟁이 불붙었다. 젊은이들은 정년 보장과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에 매료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환경미화원 고시는 더욱 치열했다. 2016년에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출신과 한국 명문대 석박사 출신도 체력 심사를 위해 20kg짜리 모래 포대 10개를 이고 지며 환경미화원 고시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10년 뒤인 2023년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9급 공무원 공개 경쟁 채용 시험(이하 공채)의 경쟁률은 2013년 74.8 대 1에서 2022년 29.2 대 1로 떨어졌다. 30년 만에 가장 낮은 기록이다. 단순하게 풀이하면 희망자 75명 중 46명은 공무원이 아닌 다른 업으로 눈길을 돌렸다는 얘기다.
또 다른 눈에 띄는 변화는 입시생들이 돌고 돌아 다시 의대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갔지만 의대를 가기 위해 반수를 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고 있다. 한때 창업을 권했던 사회적 분위기는 코로나19 사태 3년이 지나고 가라앉는 분위기다. 어떤 요인이 직업의 지형도를 바꿔 놓았을까. 신의 직장 공무원
74 대 1에서 29 대 1로2023년의 직업 지형도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10년의 트렌드도 우습다. 3년, 2년, 1년. 직업 트렌드는 전문가들도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가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자료를 토대로 고등학생의 희망 직업군의 변천사를 조사한 결과 공무원은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디지털 전환에 따른 신산업 직업군(인공지능 전문가, 정보 보안 전문가 등)의 희망 순위는 점점 상승하고 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원은 순위권 안에서 아예 자취를 감췄다. 공무원은 2021년 6위, 2020년 10위, 2019년 9위, 2018년 10위로 순위 변동은 있었지만 상위 10위에 자리했다. 그런데 2022년은 순위권 밖이다. 남학생 사이에서는 8위를 했지만 여학생들의 희망 직업에서는 톱10 밖으로 밀렸다.
현장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9급 공무원 경쟁률은 30년 만에 최하위를 기록했다. 2019년만 해도 39 대 1을 기록했지만 3년 새 10명이 또 떨어져 나갔다. 7급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43년 만에 42.7 대 1로 최저를 기록했다.
들어가도 문제다. 재직 기간이 5년 미만인 공직 퇴직자 1만693명 중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80%를 넘어섰다. 퇴직자 수 자체도 2017년 5181명에서 두 배 급증했다.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젊은 공무원들이 안정을 포기하고 제 발로 걸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의 인기는 소위 ‘철밥통’이란 인식에서 비롯됐다. 급여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60세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평생직장. 그것이 공무원의 인기 비결이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대거 구조 조정 칼날을 맞은 뒤 공무원 경쟁률은 하늘을 치솟았다.
2010년대 어떤 이들은 젊은이들이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며 현실을 개탄했고 공무원 준비생들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분노했다. 88만원 세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 일자리·차·집이 없는 ‘3무 세대’라는 신조어들이 생길 무렵 취업 준비생들에게 안정적인 평생직장 공무원은 그야말로 ‘꿈의 직장’이었다.
그런데 힘겹게 얻어낸 철밥통을 걷어차는 사람들이 늘면서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조기 퇴직의 가장 큰 원인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으로 꼽힌다. 2015년 공무원연금법 개정으로 경제적 측면에서 유인이 거의 사라졌다는 평가다. 올해 일반직 9급 공무원(1호봉)의 월급은 177만800원으로,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2년간 실질 임금의 약 4.7%가 삭감됐다는 게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의 주장이다.
서울시에서 근무하는 30대 9급 공무원 A 씨는 “2022년부터 체감상 퇴사율이 높아졌다”며 “기존보다 높아진 퇴사율에 내부 경각심도 높아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의 직업적 장점이 사라진 가장 큰 원인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이라는 의견이 대세”라며 “특히 MZ세대들은 연금 메리트도 낮아졌는데 경직된 조직 문화, 보수적인 관행에 질려 퇴사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MZ세대의 퇴직률이 가팔라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변화를 앞당긴 것은 세대별 직업 인식의 차이에 있다. 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46~1964년생인 베이비부머 세대는 직업을 선택할 때 윤리적 리더십, 직원 복지, 조직의 재정 안정성을 우선순위로 삼았다. 1965~1979년생인 엑스(X)세대도 동일하다. 베이비부머가 “철이 없다”고 혀를 찬 X세대도 윤리적 리더십, 직원 복지, 조직의 재정 안정성이 중요했다.
그런데 1989년생에서 2001년생을 뜻하는 MZ세대는 다르다. 이들에게는 조직의 재정 안정성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조직의 재정 안정성은 순위 내에서 사라지고 그 대신 포용성과 다양성이 자리했다. 또한 윤리적 리더십은 1순위에서 한 단계 하락했다. MZ세대가 꼽은 1순위는 직원 복지다. 이들에게 더 이상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평생직장이 인기 비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송합니다’…이과 선호 두드러져
9700만 개의 신직업, 개발자의 세분화공무원을 걷어차고 나온 이들은 어디로 향할까. 최근 인적자원(HR) 테크 기업인 인크루트에서 재미있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직업을 변경하시겠습니까.” 직장인 88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4.3%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희망 직업 1위는 응답자의 26.0%를 차지한 개발자(26.0%)다. 이어 유튜버(9.4%)와 의사(7.4%) 순이다. 응답자가 100% 공무원일 리는 만무하지만 개발자에 대한 수요를 보여주는 설문 조사다.
고등학생들의 희망 직업 톱10에도 개발자가 들어선 지 오래다. 2017년 컴퓨터 공학자 프로그래머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란 이름으로 등장한 이 직업에 대한 선호도는 매년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7년 8위에서 2019년 4위, 2022년 현재 5위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만 해도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회적 문제였다. 외환 위기 때 연구·개발(R&D) 인력이 대거 구조 조정 칼날을 맞으면서 ‘내 자식은 절대 이공계에 보내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개발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아이폰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스마트폰에 들어갈 애플리케이션(앱)을 향한 무제한 경쟁이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네·카·라·쿠·배)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성장이 가속화됐다. 초기만 해도 개발자는 곧 야근으로 상징화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임금·복지·성장이란 키워드를 장악했다.
2015년에는 ‘문송합니다’란 신조어가 유행처럼 번졌다. 이른바 문과여서 죄송하다는 뜻이다. 자기 비하가 담겼지만 그 안에는 취업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이 가득했다. 2015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인문·사회 계열 졸업생 가운데 3명 중 1명은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삼성·LG 등 대기업이 70~80%를 이공계에서 뽑고 현대자동차는 공채에서 인문계를 배제하는 등 인문계 채용을 확 줄여 나갔다. 인문계의 극심한 취업난은 이듬해 문과 기피, 이과 선호를 불러왔다.
이과 선호 현상은 더 심해졌다. 모든 업종에 ‘기술(테크)’이 더해지면서 전통적으로 문과생이 강세를 보였던 금융·유통·광고 업종 내 기업들조차 IT 역량을 갖춘 인력을 더 선호하고 있다. 문과생들은 살기 위해 프로그래밍 동아리에 참여하거나 컴퓨터공학을 복수 전공한다. 거리마다 코딩 학원 간판을 찾는 일도 어렵지 않게 됐다. 어떤 대학에서는 이미 모든 입학생이 졸업하려면 코딩 과목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통계청의 ‘전공 계열별 경제 활동 인구’ 자료에 따르면 12개 주요 전공 분야 가운데 지난해 1분기 취업자 수가 2019년 1반기보다 줄어든 분야는 인문학뿐이었다. 정보통신기술(ICT)의 취업자 수가 12만9000명 늘어난 사이 인문학 취업자 수는 1만4000명 감소했다. 경제 활동 참가율도 꼴찌다. 공학, 제조·건설 85.9%, ICT 82.8%, 보건 79.6%로 상위를 차지했다면 인문학은 69.2%로 12등에 자리했다.
이공계 선호 현상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데이터·인공지능(AI) 등 유망 직업군은 2020년 기준 전 세계 신규 일자리 1만 개당 506개를 차지하고 있다. 신기술의 보급으로 2025년까지 8500만 개의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고 97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변화는 새로운 직업의 등장과 함께 기존 직업의 특정 직무가 세분화되거나 융합되는 등의 변화를 보여 결국 직업 세계의 구조적인 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원이 정의한 신직업은 사물인터넷(네트워크)·AI·클라우드·빅데이터·가상현실 등 관련 기술에 대한 지식과 이해에 바탕해 디지털 전환을 선도하거나 기존과 차별화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다. 신직업의 재직자를 대상으로 신규 입사자가 해당 직업의 직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학과를 조사한 결과 컴퓨터·통신(전산·컴퓨터공학, 응용소프트웨어공학, 정보·통신공학 등) 학과와 전기·전자(전기공학, 전자공학, 제어계측공학 등) 학과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들이 새로 개설하는 전공도 이공계에 집중돼 있다.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 등 서울 주요 대학은 AI 관련 학부·학과를 신설한 것은 물론 반도체·배터리 등 계약학과(기업과 손잡고 교육 과정 등을 공동으로 만들어 취업이 보장되는 학과)를 개설하고 있다.세월을 타지 않는다 신의 직장 의사
개발자보다 의사, 코로나19 사태로 더 강해졌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도 있다. 강산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선망의 대상, 바로 ‘의사’다.
2월 17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최근 끝난 2023학년도 정시 모집에서 연세대·고려대·서강대·한양대 등 주요 4개 대학 중 대기업 취업 연계가 가능한 반도체학과 등록 포기율은 모집 인원 대비 155.3%로 집계됐다. 이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자연 계열 전체 등록 포기율(33.0%)의 4.7배 수준이다. 올해 대학 정시 모집에서 서울 주요대 반도체학과에 합격한 학생들 상당수가 등록을 포기한 것이다.
대기업 취업 연계가 가능한 반도체학과는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취업이 보장되기 때문에 상위권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들이 등록을 포기했다. 타 대학 의약학 계열과 중복 합격한 경우가 많아 대규모 이탈자가 발생한 것이다. 종로학원은 “정부 정책과 대기업 연계 등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관련 학과는 의약학 계열, 서울대 이공계 등에 밀리는 구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학원가의 중심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는 요즘 수능을 ‘메디컬 고사’라고 칭할 정도다.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진학 전문반이 따로 있다. 상위권 학생들은 SKY가 아닌 의치한약수를 목표로 공부한다.
의사를 직업으로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소득에 있다. ‘고소득’으로 오랜 기간 선망의 직업이었던 변호사·회계사·한의사 등 이른바 사(士)자 직업이 과포화 상태에 빠져 인기가 시들해졌을 때도 의사는 꿋꿋이 선두를 지켰다. 의사 면허증은 따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고소득이 보장됨은 물론 독점권이 보장된다.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는 의료계의 반발 하에 의대 정원은 18년째 동결이다.
이렇다 보니 소득 수준이 높은 직업은 치과 의사·한의사·변호사·대학교수·전문 의사·일반 의사·항공기 조종사·증권 및 외환 딜러 등의 순이지만 종사자들의 소득 수준에 대한 만족도를 물어 보면 톱3가 전부 의사다. 전문 의사·치과 의사·한의사 순이다. 고소득으로 직업 선호도가 높은 편인 개발자는 톱15 순위에도 없다.
의사에 대한 선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의료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 컸다. 고등학생들의 희망 직업 순위에서도 이 현상이 잘 나타난다.
한순간도 톱10 지위를 잃지 않았던 직업 의사는 2018년과 2019년에 톱10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2020년 의사가 다시 순위권에 들어섰다. 특히 2020년에는 의사, 간호사, 생명·자연과학자, 연구원의 순위가 전년보다 상승했다. 의사는 2019년 11위였던 희망 직업 순위가 5위로 껑충 뛰었다. 2022년 현재는 7위다. 교육부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뉴스에서 의사·간호사를 자주 접하고 백신 개발이 이슈가 되면서 생명·자연과학자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고 말했다.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과 호주 등 글로벌에서도 의사 선호 현상이 커지고 있다. 링크트인에 따르면 미국의 2021년 일자리 트렌드는 의료 분야 구인 증가, 디지털 전환에 따른 다양한 전문 분야 일자리, 원격 근무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호주의 2021년 유망 직업 보고서에서도 의료·보건 분야 직업들의 전망이 밝다는 점이 대두됐다. 의사 역시 AI와 데이터 등 신기술 발전과 밀접한 분야이기 때문에 기존 직업의 특정 직무가 세분화되거나 융합되는 등의 변화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