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충격에도 두 달 새 시총 13조 증가…車에 미래 건 LG그룹
입력 2023-03-01 07:04:01
수정 2023-03-01 07:04:01
포트폴리오 재편 덕 보는 LG그룹 주가...LG전자 올해 전장 수주잔고 100조 예상
몇 년 전 “LG그룹의 주력 계열사는 LG생활건강”이라는 말이 있었다. LG생활건강이 매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한 반면 과거 주력이었던 LG전자와 LG화학 등이 맥을 못 추던 때였다. 그 이전에는 그룹 실적이 LG전자 휴대전화 사업부 실적에 좌우되던 때도 있었다.
작년 4분기 실적도 변변치 않았다. 배터리 사업을 하는 LG에너지솔루션을 제외하면 LG그룹 계열사 대부분의 영업이익이 급감하거나 적자 전환하는 등 어닝 쇼크가 이어졌다. 하지만 올해 시장의 평가는 다르다. LG그룹이 계열사들이 집중해 온 새로운 성장 동력이 자리 잡으며 안정 궤도에 들어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들어 LG그룹 계열사 주가가 일제히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배경이다.
핵심인 LG전자에서는 전장 사업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18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전장 사업은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8조6496억원)을 기록하며 성장 궤도에 올랐다.
지난해 4분기 전장 사업 영업이익률은 이미 다른 사업부를 뛰어넘었다. LG전자가 올해 전장 분야 고부가·고수익 제품 수주를 공략하며 수익성을 끌어올리겠다고 예고한 만큼 전장 사업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소재·부품 계열사들의 매출도 급등했다. LG디스플레이는 전 세계 차량용 디스플레이 분야 선두를 차지하고 있고 LG이노텍은 지난해 매출액 19조5894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썼다. 그룹 내 시가 총액 1위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중국 시장을 제외한 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LG 특유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계열사들의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 구축으로 이어졌다.'나 홀로 성장'한 전장 사업
지난해 LG전자 4개 사업부에서 성장한 사업은 전장 사업(VS사업본부)이 유일하다. LG전자는 지난해 매출 83조4673억원, 영업이익 3조5510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과 비교하면 매출은 12.9%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2.6% 감소했다.
전장 사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부가 역성장했다. TV를 담당하는 HE사업본부가 벌어들인 지난해 영업이익은 54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1분기(1872억원)를 제외하고 2~4분기 내내 영업 손실을 낸 영향이다. 냉장고·세탁기 등 생활 가전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의 지난해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2조2093억원)의 절반 수준인 1조1296억원에 그쳤다.
전장 사업을 담당하는 VS사업본부는 유일하게 웃었다. 지난해 169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2015년 이후 7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전체 매출에서 전장 사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처음 10%를 넘겼다.
가전·디스플레이가 핵심이던 LG가 배터리와 전장 사업을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사업 역량을 집중한 것은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다. 구 회장 취임 한 달 후인 2018년 8월 LG전자는 오스트리아의 차량용 헤드램프 기업인 ZKW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1조4392억원이었다.
2021년 7월에는 글로벌 3위 자동차 부품 업체인 캐나다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함께 약 1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파워트레인(동력 전달 장치) 분야의 합작법인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설립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스위스 소프트웨어 업체 룩소프트와 손잡고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조인트벤처(JV) ‘알루토’도 출범했다.
이를 바탕으로 LG전자는 인포테인먼트(VS사업부), 파워트레인(마그나 JV), 램프(ZKW)를 3대 축으로 전장 사업에 속도를 냈다. LG전자는 전기차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과 함께 텔레매틱스·인포테인먼트·자율주행장치·엔지니어링·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자동차 부품을 모두 개발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에 모든 부품을 한 번에 공급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완성된 셈이다.
LG전자의 전장 사업 수주 잔액은 올해 말 1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KB증권은 “LG전자의 전장 사업 수주 잔액이 연평균 20조원씩 증가하고 있다”며 “LG마그나이파워트레인이 북미 전기차 업체들로부터 모터를 비롯한 구동계 수주가 예상을 웃돌고 있고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가동률 상승으로 차량용 램프(LED) 수주가 회복되며 차량 고품목화로 인포테인먼트 탑재율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LG이노텍 매출, 2년 만에 10조 증가LG의 다른 전자 계열사 역시 매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LG이노텍이 대표적이다. 2020년 9조원 수준이던 LG이노텍의 매출은 지난해 19조원을 넘어섰다. 4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 중이다. 지난해 전 사업부가 고루 성장하면서 사업 규모가 급격하게 커졌다.
특히 애플 신모델에 대한 부품 공급이 본격화하면서 스마트폰용 멀티플 카메라 모듈, 3D 센싱 모듈 등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광학 솔루션 사업이 매출을 이끌었다. 여기에 자동차용 전장 부품 사업도 빠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전장사업부는 지난 4분기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한 421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LG이노텍 역시 LG전자와 마찬가지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다. 2020년 11년 넘게 적자를 이어 오던 LED사업부문을 철수하며 누적 영업 적자를 9000억원 수준에서 정리했고 전장 부품 사업에 집중했다.
그룹 내 배터리 사업을 이끄는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유럽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하며 성장을 이어 가고 있다. 2020년 12월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매출 약 25조6000억원에 영업이익 약 1조2000억원을 거뒀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은 LG 특유의 ‘합작 DNA’를 가장 잘 이어 가고 있는 회사로 꼽힌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포드·테슬라·제너럴모터스(GM), 유럽은 스텔란티스, 일본은 혼다와 손잡고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단독·합작 형태로 한국·북미·중국·폴란드·인도네시아 등 5개 국가에서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한 세계 유일의 배터리 업체로 꼽힌다. 올해 시설 투자를 전년보다 50% 이상 늘려 글로벌 생산 능력을 300GWh까지 키울 계획이다. 300GWh는 순수 고성능 전기차 43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LG에너지솔루션을 자회사로 둔 LG화학은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51조원을 돌파했다. LG에너지솔루션 실적이 연결 매출로 잡혔고 LG에너지솔루션 수주량이 증가하면서 LG화학의 배터리 소재 사업이 성장했다. LG화학 사업 부문에서 양극재를 포함한 첨단 소재 부문의 매출은 약 8조원으로 전년 대비 67%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9230억원으로 291% 정도 급등했다. LG화학은 올해 양극재 생산량을 지난해 대비 50% 정도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 업황 악화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 든 LG디스플레이도 올해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선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이어지고 있는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은 출구 전략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그 대신 지난해 유일하게 우상향 곡선을 그린 차량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을 필두로 투명·게이밍 OLED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키울 계획이다.
LG그룹에 대한 기대감은 주가로도 나타난다. 지난해 12월 28일 218조2189억원이던 LG그룹 계열사 시가 총액은 2월 21일 230조9609억원을 기록했다. 두 달 새 시총이 13조원 가까이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는 이 기간 20% 가까이 뛰었고 LG전자는 27.5% 올랐다. 지난해 4분기에 어닝 쇼크를 기록한 LG이노텍(16%)과 LG디스플레이(30.8%) 역시 수익성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