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인플레이션의 공습…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입력 2023-02-25 06:00:24
수정 2023-03-14 10:21:04
[EDITOR's LETTER]
일주일에 한 번쯤 몸무게를 달기 위해 저울에 올라갑니다. 그 결과를 확인할 때마다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납니다. 오늘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구나. 올라야 할 주가는 안 오르고 몸무게만….
겨울을 지내며 잠시 정신줄을 놓은 사이 위장이 늘어난 결과입니다. 위장은 계속 뭘 넣어 달라고 데모하는 듯합니다. 위장이 원하는 것을 해결해 주려다 둘째 서프라이즈한 숫자를 발견했습니다. 물가입니다.
물가는 몸무게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앞자리가 달라지면 큰 충격이 온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앞자리라면 더더욱….
대표적인 게 빅맥과 소주입니다. 브레이크 없이 앞자리가 바뀐 품목들을 잠깐 살펴 볼까요. 빅맥(5200원)과 소주(5000원)에는 5자가 찍혔습니다. 곧 소주에는 6자가 찍힐 듯 합니다. 이미 강남 어디에서는 1만원이 등장했다고 하니 이게 소주가 맞나 싶습니다.
비빔밥(1만원)에는 1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자장면(7000원)은 7, 카페라테(5800원)는 6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편의점에도 생소한 숫자들이 널려 있습니다. 코카콜라 캔 2000원, 삼다수 1100원, 담배 4800원, 바나나 우유 1700원 등입니다.
이건 양호합니다. 가스요금은 느낌에 딱 두 배쯤 오른 것 같습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스요금 하소연이 그치지 않습니다. 하루를 버텨내고 친구들과 한잔하고 지친 몸을 택시에 맡기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기본 요금은 오르고 기준 거리는 짧아지고 야간 할증률은 높아져 체감은 두 배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정부가 공공 요금 인상을 하반기로 미룬다고 하지만 서너 달 후에는 또 오를 예정입니다. 메가인플레이션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재료비 상승으로 김밥천국에서 김밥 판매를 중단하고 난방비가 올라 숙박 업소에서 숙박 서비스를 없앴다”는 얘기가 돌아다닙니다. 김밥천국에서 김밥이 없으면 그냥 천국이겠네요.
숫자 얘기를 했으니 조금만 더 해보지요. 합계 출산율은 앞자리가 바뀐 지 오래입니다. 1에서 0으로. 최근 소수점 첫째 자리도 달라졌습니다. 0.8대에서 0.7로. 왜 아이 낳을 생각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젊은이가 한 대답이 귓전을 맴돕니다. “둥지가 있어야 알을 낳지요.”
앞자리가 바뀐 게 또 있습니다. 무역 적자입니다. 1월 무역 적자는 사상 처음 10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2월에도 비슷한 추세입니다. 사실은 가장 두려운 문제입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무역 적자 확대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습니다. 원화 가치 하락은 불가피하고 이는 다시 물가를 자극해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주요국 가운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진 나라는 한국과 영국 딱 두 나라밖에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다시 물가 얘기입니다. 이런 물가 상승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경비즈니스는 청년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부모의 카드를 쓰지 않고 서울 경기 원룸에서 취업과 생존을 위해 버티며 사는 청년들. 물가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습니다.
기업들은 ‘페인 포인트(pain point)’라는 단어를 자주 씁니다. 고객이 고통을 느끼는 포인트를 찾아 이를 개선해 주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얘기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본 것도 그것입니다. “노래 한 곡을 들으려고 앨범을 통째로 사는 것은 합리적일까. 전문 작가도 아닌데 멋진 샷을 찍겠다고 손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은 정상일까.” 아이폰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그에게 최상의 마케팅은 고객의 불편함을 해결해 준 것입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은 국민입니다. 국민의 불편을 해결해 주는 것, 이것이 정치 리더십의 최고의 연료가 아닐까 합니다.
‘국부론’으로 자본주의 이론을 정립한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이란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본래 이기적 존재라고 하더라도 그 천성에는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갖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밖에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물가 상승으로 가장 고통받는 젊은이와 자영업자들을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일주일에 한 번쯤 몸무게를 달기 위해 저울에 올라갑니다. 그 결과를 확인할 때마다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납니다. 오늘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구나. 올라야 할 주가는 안 오르고 몸무게만….
겨울을 지내며 잠시 정신줄을 놓은 사이 위장이 늘어난 결과입니다. 위장은 계속 뭘 넣어 달라고 데모하는 듯합니다. 위장이 원하는 것을 해결해 주려다 둘째 서프라이즈한 숫자를 발견했습니다. 물가입니다.
물가는 몸무게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앞자리가 달라지면 큰 충격이 온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앞자리라면 더더욱….
대표적인 게 빅맥과 소주입니다. 브레이크 없이 앞자리가 바뀐 품목들을 잠깐 살펴 볼까요. 빅맥(5200원)과 소주(5000원)에는 5자가 찍혔습니다. 곧 소주에는 6자가 찍힐 듯 합니다. 이미 강남 어디에서는 1만원이 등장했다고 하니 이게 소주가 맞나 싶습니다.
비빔밥(1만원)에는 1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자장면(7000원)은 7, 카페라테(5800원)는 6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편의점에도 생소한 숫자들이 널려 있습니다. 코카콜라 캔 2000원, 삼다수 1100원, 담배 4800원, 바나나 우유 1700원 등입니다.
이건 양호합니다. 가스요금은 느낌에 딱 두 배쯤 오른 것 같습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스요금 하소연이 그치지 않습니다. 하루를 버텨내고 친구들과 한잔하고 지친 몸을 택시에 맡기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기본 요금은 오르고 기준 거리는 짧아지고 야간 할증률은 높아져 체감은 두 배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정부가 공공 요금 인상을 하반기로 미룬다고 하지만 서너 달 후에는 또 오를 예정입니다. 메가인플레이션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재료비 상승으로 김밥천국에서 김밥 판매를 중단하고 난방비가 올라 숙박 업소에서 숙박 서비스를 없앴다”는 얘기가 돌아다닙니다. 김밥천국에서 김밥이 없으면 그냥 천국이겠네요.
숫자 얘기를 했으니 조금만 더 해보지요. 합계 출산율은 앞자리가 바뀐 지 오래입니다. 1에서 0으로. 최근 소수점 첫째 자리도 달라졌습니다. 0.8대에서 0.7로. 왜 아이 낳을 생각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젊은이가 한 대답이 귓전을 맴돕니다. “둥지가 있어야 알을 낳지요.”
앞자리가 바뀐 게 또 있습니다. 무역 적자입니다. 1월 무역 적자는 사상 처음 10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2월에도 비슷한 추세입니다. 사실은 가장 두려운 문제입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무역 적자 확대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습니다. 원화 가치 하락은 불가피하고 이는 다시 물가를 자극해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주요국 가운데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진 나라는 한국과 영국 딱 두 나라밖에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다시 물가 얘기입니다. 이런 물가 상승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경비즈니스는 청년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부모의 카드를 쓰지 않고 서울 경기 원룸에서 취업과 생존을 위해 버티며 사는 청년들. 물가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습니다.
기업들은 ‘페인 포인트(pain point)’라는 단어를 자주 씁니다. 고객이 고통을 느끼는 포인트를 찾아 이를 개선해 주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얘기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본 것도 그것입니다. “노래 한 곡을 들으려고 앨범을 통째로 사는 것은 합리적일까. 전문 작가도 아닌데 멋진 샷을 찍겠다고 손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은 정상일까.” 아이폰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그에게 최상의 마케팅은 고객의 불편함을 해결해 준 것입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은 국민입니다. 국민의 불편을 해결해 주는 것, 이것이 정치 리더십의 최고의 연료가 아닐까 합니다.
‘국부론’으로 자본주의 이론을 정립한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이란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본래 이기적 존재라고 하더라도 그 천성에는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갖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밖에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물가 상승으로 가장 고통받는 젊은이와 자영업자들을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